[르포 소설] 중독
호찌민 중앙공원이 내려다보이는 한 호텔 앞에 차가 멈췄다. 김 사장과 풍은 호텔 식당 옆 작은 대기실로 우리를 안내했다.
대기실 중앙에 큰 테이블이 보였다. 의자 두 개가 테이블 양쪽에 서로 마주 보고 놓여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물 컵과 티슈가 놓여 있었다. 마이가 맞선녀들에게 벽 쪽으로 세워져 있는 작은 의자에 앉으라고 했다.
비좁은 차를 타고 비포장도로와 고속도로를 4시간 동안 달려왔더니, 나는 갈증이 났다. 풍이 커다란 번호표를 여자들에게 나눠주고 있는 게 보였다. 그에게 물을 달라고 부탁했다. 잠시 후 그가 생수 한 병을 들고 왔다. 그리고 내게 물 값으로 일천 동을 달라고 했다. 나는 돈을 꺼내 그에게 주었다. 내 돈을 받자마자, 풍은 갑자기 중개수수료 이만 동을 추가로 요구했다. 이만 동이라면 웬만한 베트남 근로자들의 한 달 치 봉급이다.
나는 절대 줄 수 없다고 했다. 풍이 옆에 서 있던 마이를 쳐다봤다. 나도 똑 같이 마이를 쳐다봤다. 오랜 침묵 끝에 마침내 마이가 입을 열었다.
“일단 돈을 풍에게 주면 좋겠어.”
나는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 하며 서 있었다. 그때 풍이 내 지갑을 빼앗더니, 멋대로 돈을 꺼내서 가져갔다.
풍이 내게 번호표를 한 개를 주었다. 숫자 8이 적혀 있었다.
“왜 번호표가 한 개죠?”
내가 번호표를 받으며 풍에게 물었다. 풍은 대답 대신 엷은 미소를 지으며 문 쪽으로 사라졌다. 나는 몸을 돌려 마이를 정면으로 쳐다보며 물었다.
“그 목걸이는 언제 돌려받을 거야?”
“잠깐만 기다려, 내가 지금 좀 바빠서 그래.”
마이는 핑계를 대듯 우물쭈물 말을 돌렸다.
마이가 총총걸음으로 풍이 서있는 쪽으로 가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1미터 정도 거리를 두고 마이를 따라갔다. 마이는 내가 자신을 따라오는지 모르는 눈치였다.
대기실 문 옆에 있던 풍이 만 동짜리 지폐 두 장을 꺼내 보여주며 마이에게 자랑하는 게 보였다. 마이가 그중 한 장을 날렵하게 가로챘다. 김 사장이 문을 반쯤 열고 풍을 불렀다. 풍이 나머지 한 장을 바지 뒷주머니에 구겨 넣더니 뛰어갔다.
내가 앞에 섰을 때, 마이는 한쪽 손으로 브래지어 속 깊숙이 지폐를 힘껏 쑤셔 넣고 있었다. 내 시선은 마이의 손끝에 고정됐다. 당황한 마이의 얼굴이 홍당무가 됐다. 나는 머릿속이 새 하얘져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갑자기 등 뒤에서 큰 웃음소리가 들렸다. 흐엉의 목소리였다.
“하하하, 식구들 먹여 살리려면 그렇게라도 해야지.”
흐엉이 우리를 쳐다보며 잇몸을 다 드러내며 크게 웃었다. 그녀는 왼쪽 가슴에 번호표 3을 달고 있었다. 마이는 아무 대구도 하지 않고 자리를 떴다.
글/ 사진: 박경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