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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경주 Mar 13. 2020

#6. 하얀 연가

[르포 소설] 중독

 갑자기 비가 오기 시작했다.

 비포장도로는 차량 한 대가 겨우 지날 만큼 비좁았다. 우기로 인해 불어난 강이 도로 쪽으로 차올랐다. 군데군데 흙탕물이 고였다.

 십분 쯤 갔을 때, 차가 기우뚱하면서 흙탕물이 주변을 지나던 행인에게 튀었다. 국방색 비옷을 입은 40대 중반 남자였다. 남자는 화가 나서 차량 외부를 주먹으로 세게 두드렸다. 그는 운전석 옆에 앉은 마이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 차창 밖에서 차 안을 수색했다.

 결국 그는 란과 나를 발견하고 말았다. 남자는 비옷을 벗어 길바닥에 팽개쳤다.

 “당신들! 한국 남자랑 결혼시키려고 베트남 여자를 태우러 온 거 맞지!”

 남자가 비를 맞으며 창 너머 김 사장에게 따졌다. 운전석 옆 작은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습한 바람에서 보드카 냄새가 났다.

 풍이 차창으로 얼굴만 빼꼼히 내밀고 여행사에서 나왔다고 거짓말을 했다. 김 사장이 급하게 시동을 걸었다. 그때 남자가 두 손을 운전석 쪽으로 넣었다. 그는 김 사장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당신들이 처녀들 다 데려가서 이 동네에 여자들 씨가 다 말랐다고! 이 동네에 노총각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기나 해! ”

 풍이 남자의 손을 떼 창밖으로 힘껏 밀쳤다. 중심을 잃은 남자는 꼬꾸라졌다. 란이 이 모습을 지켜보며 키득키득 웃었다. 나는 그만 웃으라고 란의 등을 두드렸다.

 남자는 비에 젖은 생쥐처럼 흙탕물에 주저앉아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의 모습이 점점 멀어졌다.

    


 란은 풍의 옆자리로 가더니 우리가 탄 차량을 친구 집으로 안내했다. 그 사이 굵어진 빗줄기 때문에 거리는 텅 비어 있었다. 란은 까이랑 5동에 있는 구멍가게 앞에 차를 세우라고 했다. 차에서 내린 란이 두 손을 머리에 얹어 빗방울을 피하며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란이 30대 여자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삼촌, 친구들이 모여 있다는데, 아줌마랑 가볼게요.”

 란이 자신의 턱으로 여자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자가 풍에게 눈인사를 했다.

 “딸이 한국에 가면 좋잖습니까. 여자 아이들 많이 데리고 오십시오. 소개비도 주겠습니다.”

 풍의 말을 들은 여자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끄덕였다. 김 사장이 마이에게 같이 가라고 지시했다. 여자 셋은 큰 우산을 함께 쓰고 장대비가 퍼붓는 골목길로 뛰어갔다.     



 김 사장은 음악을 크게 틀었다. 풍은 비스듬히 앉아서 노래를 따라 불렀다.     


 네가 보고 싶을 때마다 난 이렇게 무너져버리고 마니까.

 아무리 잊으려고 애를 써도 잊을 수 없게 하니까.     


 ‘하얀 연가’. 한국 드라마 ‘겨울 연가’의 주제가였다. 베트남에서 ‘겨울연가’ 뿐만 아니라 ‘대장금’, ‘천국의 연인’ 등 한국 드라마들이 방영됐었다. 드라마를 본 여자는 모두 같은 꿈을 꾼다. 한국에 가서 드라마에 나오는 그런 집에서 호화롭게 살고 싶다는 꿈.

 김 사장이 창문을 살짝 열고 담배를 피웠다. 나는 담배 냄새가 싫어서 차량 맨 뒷좌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나는 맞선을 보기 위해 온 것이 아니다. 단지 단짝 친구와 함께 행복했던 어린 시절을 돌아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한숨이 나왔다. 차창 유리 위로 흘러내리는 굵은 빗줄기를 바라보면서 마이가 빨리 오기만을 기다렸다.      


글/ 사진: 박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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