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소설] 중독
아침 일찍 마이의 집으로 갔다. 노란색으로 ‘김 여행사 Kim’s Travel Agency’ 로고가 크게 박힌 검은색 9인승 카니발이 정차해 있었다. 그 앞에서 마이의 이모가 나를 반겨 주었다.
“너도 같이 맞선 보러 간다면서. 잘 생각했다.”
호텔부터 뛰어오느라 차오른 숨을 헐떡이며, 나는 놀란 눈으로 이모를 쳐다봤다. 이모가 당황해하는 나를 차 쪽으로 밀쳤다. 두 명의 남자와 함께 차 안에 앉아 있는 마이가 보였다. 마이는 사진 속에 있던 노란 아오바바를 입고 머리를 단정하게 묶고 있었다.
남자 중 누가 김 사장이고, 누가 풍인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둘은 등에 ‘김 여행사 Kim’s Travel Agency’ 로고가 박힌 하얀 셔츠를 입고 있었다.
고개를 쇄골에 파묻고 있는 마이 대신 풍이 먼저 나를 발견했다. 그가 손가락으로 마이의 어깨를 쿡 찔렀다. 마이가 고개를 들어 창 너머로 나를 바라봤다. 풍이 손짓으로 내게 차에 타라고 했다.
나는 차에 올라 마이 옆에 앉았다. 웬일인지 나를 보는 마이의 얼굴이 유난히 굳어 보였다. 나와 눈이 마주친 마이는 얇은 입술을 가늘고 길게 늘이며 미소 지었다.
배가 불룩하게 나온 김 사장이 운전석에 앉았다. 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이가 창밖으로 손을 흔들었다. 우리를 배웅하는 이모 뒤편으로 나이 든 여성이 보였다. 마이의 엄마였다. 파란색 파자마에 숱 없는 머리카락을 곱게 말아 올려 비녀를 꽂고 있었다. 엄마는 현관문에 서서 근심스러운 눈으로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김 사장이 백미러로 나를 쳐다보며 베트남어로 말을 붙였다.
“너도 한국에 시집가고 싶다면서?”
“저는 마이를 도와주러 가는 건데요.”
나는 영문을 몰라 마이를 쳐다봤다. 마이는 물끄러미 나를 쳐다봤다. 마이의 표정을 왠지 읽기 어려웠다.
김 사장은 한 손을 백미러에 들어 보이며 못 알아듣는다는 시늉을 했다.
나는 영어로 노 아이엠 저스트 No, I’m just라고 말했다. 그러고 나서 한쪽 팔로 마이를 가리킨 후, 고잉 투 헬프 허 going to help her라고 또박또박 뱉어냈다.
내 말을 알아들은 김 사장이 풍을 앞좌석 쪽으로 부르는 게 보였다. 그는 풍에게 한국어로 무어라고 질책했다. 화를 낸 다기보다는 짜증이 더 섞인 말투였다. 풍이 나를 흘낏 돌아보는 것으로 보아 내 이야기를 하는 게 분명했다.
“마이, 저 사람들이 내가 맞선 보러 간다고 잘 못 알고 있어. 어떻게 된 거야?”
내가 물었지만, 마이는 겁을 잔뜩 먹은 표정으로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풍이 내 쪽으로 왔다. 그는 맞선을 볼 건지 말 건지 빨리 결정하라고 독촉했다. 나는 맞선 보기 싫다고 대답했다. 풍이 김 사장에게 차를 세우라고 했다. 김 사장이 차를 세웠다. 풍이 내 손을 강제로 끌면서 차문을 열었다.
나는 풍의 손을 뿌리쳤다. 차에서 내리자며 마이를 설득했다. 마이가 내 손등을 꼬집으며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부탁이야, 저 사람 화나게 하면 목걸이를 돌려받기 힘들어.”
마이는 목걸이 문제는 혼자서 해결할 테니 내게 내리라고 했다. 도저히 마이를 혼자 보낼 수 없었다. 나는 생각을 뒤집어 맞선을 보기로 했다.
풍이 눈꼬리를 내리며 화난 얼굴을 풀었다. 차가 다시 움직였다.
김 사장과 풍은 까이랑 1동부터 7동까지 샅샅이 뒤져 여자들을 모았다. 둘은 오랜 시간 이 일을 함께 했는지 손발이 척척 맞았다.
차가 작고 허름한 집들이 밀집해 있는 골목을 달려갈 때, 둘은 앳돼 보이는 여자를 발견했다. 김 사장이 차를 세웠고, 풍이 차창 밖으로 여자를 불러 세웠다.
18살이나 됐을까? 아니면 16살? 그녀는 여자가 아니라 소녀였다. 결혼 적령기가 한참 덜 돼 보였다. 산딸기 모양의 장식이 달린 끈으로 머리를 양 갈래로 묶었고, 토끼가 그려진 하얀색 민소매 상의에 짧은 청치마를 입고 있었다.
풍은 차량에서 점프하듯이 뛰어내렸다. 친한 조카라도 만난 듯 팔짱까지 했다. 풍이 친근감 있는 남부 억양으로 외모에 대해 칭찬했다. 소녀가 한 손으로 입술을 가리고 수줍게 웃었다.
“아가씨, 한국 드라마 좋아하지? 우리 따라가면, 한국 남자랑 결혼할 수 있어. 한국에 가서 한국 드라마 실컷 볼 수 있고”
한국이라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소녀의 눈망울이 커졌다. 마침내 소녀는 한국에 가고 싶다고 고백했다. 풍이 마이에게 문을 열어주라고 지시했다. 마이는 차문을 열어 소녀를 태웠다. 소녀가 내 앞자리에 앉았다. 마이가 내 옆에 앉으려 했다. 그러나 풍이 본격적으로 일을 도우라며 마이를 아예 운전석 옆자리로 보냈다.
“반가워요 언니, 제 이름은 란이에요!”
소녀가 신이 나서 내게 인사했다.
나는 부모님 허락을 먼저 받아야 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혹시 친구 없어? 한국에 친구랑 같이 가면 좋잖아. „
내 말을 무시하듯 풍이 란에게 물었다.
나는 순진한 란에게 집으로 돌아가라고 외치고 싶었다. 그러나 마이의 목걸이 때문에 잠자코 있어야 했다.
글/사진: 박경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