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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경주 Mar 06. 2020

#4. 목걸이

[르포 소설] 중독

 새벽 장사를 마친 나룻배들이 나무 그늘에 정박해 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반대편에 보이는 수상 가옥에서 젊은 엄마가 어린 딸을 씻기고 있었다. 엄마는 긴 대나무 가지 끝에 동여맨 플라스틱 바가지로 강물을 퍼서, 아이의 머리에 남은 비누 거품을 씻어냈다. 아이는 잠이 덜 깬 얼굴로 자신의 몸을 엄마에게 맡기고 있었다.

 얼룩무늬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면서 우리에게 다가왔다. 강아지는 마이 옆에 엎드려 마이의 손을 핥았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이 모습을 바라보았다. 나는 마이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았지만 꾹 참았다.

 오토바이 한 대가 굉음 소리를 내며 우리 옆을 지나갔다. 20대 중반의 젊은 가장이 가족을 태워 시장 쪽으로 가고 있었다. 아내는 큰 가방을 등에 맨 채 어린 여자 아이를 가슴에 안느라, 남편의 허리를 잡을 손이 없었다. 동생보다 몇 살 많아 보이는 사내아이는 의자 앞 발판을 밟고 위태롭게 서 있었다.

 우리 가족이 까이랑에 살 때, 아버지는 자전거에 물건을 싣고 시장에 내다 팔았다. 아버지는 그때 빚을 내 자전거를 샀었다. 물건이 많을 때면 엄마가 일을 도왔다. 오빠와 나를 맞길 곳이 없었던 부모님은 우리를 데리고 장사를 해야 했다.

 세월이 흘렀지만, 까이랑은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뭘 좀 먹을까?”

 마이가 먼저 말을 걸었고 나는 갑자기 배가 고팠다.

 호찌민에서 버스를 갈아탈 때 간단하게 반미 Bánh mì 만 먹은 후,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마이를 만난다는 생각에 배고픔도 잊었었다.      



 “이 집 쌀국수가 맛있어”

 마이가 국숫집 앞에서 자전거를 세우며 말했다.

 국숫집 옆 좁은 길에는 큰 파파야 나무 한그루가 있었다. 나무 주변으로는 잡풀들이 사람의 무릎 높이만큼 자라 있었다. 마이는 파파야 나무 옆에 자전거를 세워놓았다. 그리고 앞장서서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국숫집은 강과 육지에 각각 절반씩 공간이 나눠져 있었다. 강 쪽으로 난 공간은 식당으로, 육지 쪽 공간은 가정집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식당 쪽에 파란색과 빨간색 플라스틱으로 만든 낮은 식탁과 의자가 보였다. 닳고 닳은 겉면에 군데군데 회색 얼룩이 보였다.

 작은 체구의 주인 여자가 주문을 받으러 왔다. 우리는 닭고기를 얹은 쌀국수 두 그릇을 주문했다. 여자가 음료수를 주문할 건지 물었다. 나는 마이에게 묻지도 않고 타이거 맥주 두 잔을 주문했다.

 주문을 받은 여자가 식당 부엌 쪽으로 가면서 집에 있는 남편을 불렀다. 윗옷은 홀딱 벗은 남편이 반바지만 입고 나왔다. 그는 익숙한 듯 냉장고에서 얼음을 꺼내 큰 컵에 담은 후, 맥주 캔과 함께 우리에게 가져왔다.

 우리는 동시에 잔을 들어 서로에게 부딪혔다.

 “우리의 우정을 위해!”

 분위기를 정화하기 위해 내가 마이를 보며 외쳤다. 마이가 활짝 웃었다.



 “내일 한국 남자랑 맞선 보러 가는데, 혹시 같이 갈 수 있어?”

 맥주 반 컵을 비우고 나서 마이가 본격적으로 화제를 돌렸다.

 마이의 이모 말이 맞았던 거다. 나는 속으로는 말리고 싶었지만 그 말을 입 밖으로 내지 못했다.

 “한국에 가서 돈을 벌어보고 싶은데, 다른 방법이 없어.”

 내 침묵의 의미를 눈치챈 듯 마이의 목소리가 가느다랗게 늘어졌다.

 나는 사랑도 없는 상태에서 외국 사람과 중매결혼을 하는 건 잘못된 선택이라고, 베트남에서 더 열심히 돈 벌어 보라고,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마이의 얼굴이 서서히 굳어졌고 귀까지 빨개졌다. 마침내 마이가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너도 알다시피 여기 남부에서는 모든 게 힘들어! 아마 너는 절대 이해 못 할 거야!”

 갑작스럽게 높아진 마이의 목소리에 분위기가 싸늘해졌을 때 주문한 쌀국수가 나왔다.

 마이가 무표정한 얼굴로 먼저 젓가락을 들고 먹기 시작했다. 나는 미안한 마음에 국수를 먹고 있는 마이의 모습만 물끄러미 쳐다봤다.

 “국제결혼 중개업자 김 사장을 따라갔었어. 그 사람 동업자는 베트남 사람 ‘풍’이야. 그자가 숙박비랑 식대라고 하면서 내 금목걸이를 가져갔어.”

 마이가 내 마음을 읽었는지 수구라든 목소리로 차분하게 설명했다.      


 마이는 집에서 봤던 사진 속 금목걸이에 대해 이야기했다. 마이의 엄마가 약값을 아껴서 모은 돈으로 구입한 생일 선물이었다. 마이의 20살 생일에 맞추기 위해 엄마는 5년 동안 그 돈을 모았다. 그 목걸이는 마이에게 결혼예물처럼 소중했다.

 마이가 중매업자를 따라갔을 때 그들은 마이를 차에 태워 호찌민까지 갔다고 한다. 맞선 볼 때까지 며칠을 기다리려면 호텔방을 예약해야 했고 식비도 필요했다. 그런데 마이는 돈이 없었다. 할 수 없이 집으로 돌아오려고 했지만 버스비조차 마련하기 어려웠다.

 그때 풍이 호텔비와 식사비라면서 목걸이를 가져갔다. 돈을 갚아야 목걸이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오늘 목걸이를 돌려받으려고 했는데 가지 못 했어.”

 마이는 혼자서 가기 무섭다고 했다. 나는 마이와 함께 가기로 마음먹었다.

 “내일 한번 만이야. 그 목걸이 돌려받으면 다시는 가지 않았으면 좋겠어.”

 마이의 얼굴이 한결 밝아졌다.

 우리는 다정하게 국수 그릇을 비웠다.        


글/ 사진: 박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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