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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경주 Mar 02. 2020

#3. 마이와 재회하다.

[르포 소설] 중독

 해가 중천을 넘은 오후 3시, 시장에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이 구역은 새벽에 사람이 가장 많다. 까이랑은 메콩강 하류 지역에 있어서 베트남과 캄보디아, 태국, 미얀마를 잇는 수상 무역이 활발한 지역이다. 강가에는 수상 가옥들이 있고 사람들은 나룻배와 목재선박을 이용해 다양한 물건을 사고판다. 모든 거래는 새벽에 이뤄지기 때문에 오전 10시 정도가 되면 가게 문을 닫는다. 새벽부터 장사를 시작하는 노점상들은 이 시간이면 점심을 먹으러 집으로 가기 때문에 자리를 비우는 것이 보통이다. 섭씨 38도를 웃도는 뜨거운 햇빛을 막기 위해 노점상들은 일찍이 영업용 양산을 펴 그늘을 만들었다.      



 배낭을 멘 등에 땀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까이랑 시장 중앙에 도달하자 진한 향냄새가 코를 찔렀다. 베트남 전통 밀짚모자 ‘논라 Nón lá ’를 쓴 마이가 눈에 띄었다. 청바지에 분홍색 셔츠를 입은 마이가 절 앞 노점에 앉아 전통과자 '반짱 Banh Trang'을 팔고 있었다. 마이의 엄마는 보이지 않았다.  

 “한 봉지 주세요.” 

 마이 앞에 서서 내가 말했다. 마이는 위도 쳐다보지 않은 채 반짱을 비닐봉지에 담더니, 나를 향해 봉지를 내밀고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삼백 동입니다.”

 나는 주머니에서 삼백 동을 꺼내 마이의 손에 쥐어주었다. 

 “마이!” 

 마이가 크고 깊은 눈을 깜빡이면서 나를 쳐다봤다. 나는 앞니를 살짝 드러내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민!”

 마이가 바로 나를 알아보았다. 단짝 친구는 활짝 웃으며 벌떡 일어나더니 나를 버럭 안았다.      



 나는 많이 놀랐다. 마이는 원래 본인 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는 성격이었다. 마이가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기에 8년 만에 만나는 나를 이렇게 뜨겁게 대해주는지 궁금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친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마이와 가장 친한 친구는 나였다. 나는 마이의 차분하고 조용한 성격이 좋았다. 같이 놀 때 주로 대화를 주도하는 사람은 나였다. 나보다 3살 더 많은 오빠로부터 구박을 받고 나면 나는 곧장 마이를 찾아갔다. 마이는 자신의 이야기를 잘하지 않았다. 어쩌면 나는 마이의 이야기를 들을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물었던 적도 없었으니까.      

 마이는 나와 함께 가볼 곳이 있다면서 장사를 접었다. 

 “너희 엄마는?”

 “몸이 좋지 않아서 병원에 약 받으러 갔어.”

 “네가 고생이 많겠어.”

 “고생은 무슨. 엄마한테는 나 밖에 없잖아.”

 마이가 차분하게 대나무 바구니에 물건을 차곡차곡 담더니, 뒤에 세워 두었던 자전거에 실었다.

 “이 자전거 얼마 전에 샀어. 새것은 아니지만 쓸 만해. 집에서부터 바구니를 들고 시장까지 걸어오는 거 너무 힘들어.”

 하노이나 호찌민 같은 큰 도시에서는 사람들이 오토바이를 탄다. 아오자이를 입고 논라를 쓴 채 자전거를 타는 모습은 이제 영화 속에만 존재한다. 오늘 까이랑에 도착해서 오토바이를 탄 사람을 보기는 했다. 그러나 자전거를 탄 사람이 더 많이 보였다.

 마이의 신장은 내 어깨 높이보다 작았다. 훌쩍 자라 버린 나와는 달리 마이의 키는 예전과 별 차이가 없었다. 매일 무거운 짐을 들고 시장까지 오갔으니 자랄 틈이 없었으리라.      



 우리는 시장을 나와 강 쪽으로 나란히 걸어갔다. 마이는 예전과 똑 같이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었다.

 “왜 하필이면 까이랑이야, 더 멋진 도시도 많이 있잖아”

 마이는 내가 왜 생에 첫 번째 영화의 소재로 까이랑을 선택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영화를 만든다면, 호찌민이나 하노이 같이 큰 도시의 삶을 담았으면 좋겠다고 내게 충고했다. 

 나는 대학 졸업 후에 사이공 델타로 돌아올 계획이라고 말했다. 마이는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했다.

 “민, 나는 이곳이 지긋지긋해. 그런데 너는 이곳이 그리운 거야?”

 강가에 도착하자 우리는 자전거 옆에 나란히 앉았다.        


글/ 사진: 박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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