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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경주 May 13. 2020

#1.  사고소식을 전한 건 119 구급대였다.

[르포 소설] 가족

“좀 더 확신을 가질만한 다른 증거는 없습니까?”

 검찰청 조사실 안에서 여자 검사는 격앙된 목소리로 말을 쏟아냈다. 검사와 책상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민정은 당황했다. 고소장을 낼 때, 수사에 도움이 될 만한 자료를 모두 다 넘겨준 상태라 민정의 손에는 더 이상 새로운 증거가 없었다.

 휴~, 민정은 답답한 마음에 대답 대신 긴 날숨을 내쉬었다.

검사는 아무런 대구도 없는 민정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책상 위에는 사건과 관련된 자료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민정이 제출했던 자료들도 보였다. 검사는 그것 중 하나를 가볍게 집어 든 후 페이지를 펼쳤다.

 “그런데 직업이 뭡니까? 혹시 불법으로 흥신소 같은 거 하는 거 아니지요?”

 검사가 묘한 눈빛으로 민정을 흩어보며 물었다.

 민정은 검사의 물음에 마음이 상했지만  참았다.  자리에서 그녀와 싸운다면 진실이 멀리 달아날  같았다. 공소시효를   앞두고 가슴 조이며 준비해왔던 형사고소였다.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자료 취합하는데 갖은 어려움을 겪으며, 이를 악물고 참아온 지난  개월이었다.

 “흥신소라뇨!”

 민정도 격앙된 어조로 대응했다. 검사는 자료를 살펴보던 눈을 가느다랗게 만들어 민정을 쳐다봤다.

 “혼자서 이 자료를 다 준비했다는 겁니까? 이런 건 전문가 도움 없이는 힘든데.”

 “전문가 도움 없이 준비하느라 저도 고생이 많았어요. 이번에는 반드시 진실을 밝히고 싶어요.”

 “오래된 사건을 재 고소하기로 마음먹었을 때는, 뭔가 확실하고 새로운 증거가 있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만약 그렇다면 공소시효가 한 달이 아니라 일주일이 남았다고 해도 피의자를 반드시 기소할 겁니다.”

 여 검사가 왼손 집게손가락으로 책상을 툭툭 치면서 말했다.         

   



 


주란의 사고 소식을 민정에게 전해 준 사람은 구급대원이었다.      


 박주란 님이 사고를 당해 원주 한빛 병원으로 이송 중입니다.

 이 문자는 박주란 님의 요청으로 발송합니다.

 - 119 구급대 원주 북부지부     


 진동모드로 돌려놓은 휴대폰 알람 소리가 민정을 깨웠다. 문자를 확인한 민정의 가슴이 쿵하고 무너져 내렸다.

 2009년 1월 25일 일요일, 그날은 구정 전날 새벽이었고 민정은 일본 여행 중이었다. 일기예보에선 폭설이 내릴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주란이 결혼식 없이 혼인신고만 하고 남편과 합친 지 한 달이 채 안된 날이었다. 주란의 나이는 겨우 28세였다.

 민정은 주란에게 전화했다. 휴대폰이 꺼져 있었다. 구급대원에게 전화했다. 신호음은 갔지만 받지 않았다. 이동 중이라서 못 받는 거겠지, 생각하면서도 민정의 손이 바쁘게 짐을 싸기 시작했다. 주란에게 선물하려고 구입한 차기(茶器)가 침대 맡에 놓여 있는 게 보였다.

 “결혼선물로 주려고 산 건데…….”

  민정은 차기를 호텔 수건으로 조심스럽게 감싸서 여행 가방에 넣으며 혼잣말을 했다.

 공항으로 이동하면서, 민정은 주란의 남편인 하성재에게 수차례 연락했다. 전화를 받지 않았다.

 괜찮을 거야, 구급대원에게 내 연락처도 알려줬다고 하잖아, 정신이 온전하니까 가능한 일이잖아, 작은 사고가 난 거겠지, 민정은 불안한 마음을 추슬렀다. 설사 큰 사고가 났다 해도, 제발 주란의 숨이 붙어 있게 해 달라, 발을 동동 구르면서 기도했다.

 구정 전날 이른 아침, 민정은 오사카 공항에서 귀국하는 비행기 표를 구하느라 진땀을 뺐다.  폭설이 내려 비행기가 연착될까 봐 걱정이었다. 다행히 눈은 내리지 않았다.     



 주란은 고등학교 동창이다. 주란의 엄마는 고등학교 졸업 무렵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았다. 주란은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고향인 오산에 있는 화장품 공장에 취직했다. 그 사이 주란의 엄마는 병이 심해져 요양원에 갔다. 요양비를 주란 혼자서 감당하기 벅찼다. 주란은 엄마와 지내던 아파트에서 나와서 회사 근처 고시원으로 이사했다. 그리고 전세금을 모두 요양비로 선 입금했다. 주란의 월급은 사대 보험료를 제하고 나면 백만 원이 채 안됐다. 주란은 월급을 쪼개고 생활비를 아껴서, 통장에 적금을 부었다. 성격이 온순하고 모난 곳이 없던 주란은 한 직장에서 경리 보조 업무를 하면서 오랫동안 일했다.

 민정은 서울에 있는 대학에서 일본어를 전공했다. 입학한 이듬해 봄에 고시원 앞에서 주영을 만났을 때, 마른나무처럼 뾰족해진 주란을 보고 왈칵 눈물을 쏟았다. 졸업 후, 민정은 오산으로 돌아와서 일본어 강사로 학원에서 일했다. 주란과 민정은 더 자주 만났다. 민정은 비좁은 고시원에서 지내는 주란을 위해, 부모님 집에서 나와 방을 구해 함께 살았다. 26세의 주란과 민정은 그렇게 서로 늙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오랜 친구로 지낼 작정이었다.      

 주란은 미모가 뛰어났다. 반달눈에 오뚝한 콧날, 부드러운 입술. 순정만화에 나올 법한 아름다운 외모를 갖고 있었다. 거기에다 짙은 화장 없이 수수한 옷차림으로 묵묵히 자신의 몫을 책임지는 모습은 주변인의 호감을 얻었다. 회사 고객들은 주란을 마음에 들어했고, 그중 몇몇은 데이트도 신청했다. 그러나 주란 엄마의 병명을 듣고 나면, 모두 연락을 끊었다. 이런 일이 반복되자, 주란은 무턱대고 맞선을 보기 시작했다.

 민정은 그런 주란이 걱정됐다.

 “왜 그렇게 서둘러?”

 “난 좀 지쳤어.”

 주란은 요양원에 들어가는 비용이 벅찼다. 6년 전 선 입금했던 요양비가 거의 소진돼, 다음 해부터는 한 달에 40만 원 가까이 들어가는 비용을 매월 입금해야 했다. 주란은 차상위계층에 속하기 때문에 정부로부터 요양비 지원을 받을 수 없는 처지다. 만약 직장을 그만둔다면 요양비 대부분을 지원받을 수 있다. 그러나 주란은 한 참 일할 나이에 기초생활수급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네가 그렇게 힘들면, 방세 안내도 괜찮아, 그러니까 남편감은 좀 천천히 좋은 사람으로 구하면 좋겠어.”

 민정은 방세를 요구한 적이 없었다. 이사 온 첫 달, 필요 없다는 민정의 핸드백에 방세 십만 원을 몰래 넣은 건 주란이었다.

 “네 마음은 고맙지만, 내 인생의 짐을 너에게 떠넘기고 싶지 않아.”

 주란은 결혼해서 가정을 갖고, 남편의 도움도 받고 싶다고 했다.


글/사진: 박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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