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생각 패턴이나 행동은 90%가 무의식적으로 행해질 만큼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은 무의식에 의해 좌우된다. 아이에게 잔소리를 그만해야지 매번 결심하면서도 어느새 다시 잔소리를 하고 있거나 건강하지 않은 파트너와의 관계를 겨우 청산한 후에 또 비슷한 종류의 사람을 만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가 있다. 나의 의지만으로는 쉽게 바뀌지 않는 이러한 패턴은 무의식적 에너지의 지배를 받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상황 속에서 '나도 내가 왜 그런지 모르겠다!'는 말이 맞기도 한 것이다. 이때 어떻게 하면 좋을지 하나의 단서를 주는 이야기가 있다. 그림 형제의 민담 중 룸펠슈틸츠헨 (Rumpelstilzchen)이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 속에서 하나의 해답을 찾아볼 수 있다. 이야기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어느 가난한 방앗간 주인이 왕에게 자신의 딸은 물레를 돌려 지푸라기를 금으로 만드는 재주가 있다고 괜한 자랑을 한다. 이로 인해 왕은 그 딸을 불러들이고 다음날 아침까지 방 안에 있는 짚을 금으로 만들지 못하면 그녀를 죽이겠다고 했다. 방에 혼자 남은 딸은 낙담하는데, 그때 어떤 난쟁이가 나타나 목걸이를 주면 자신이 물레를 돌려 짚을 모두 금으로 만들어주겠다고 제안한다. 그 처녀는 이를 약속하고 난쟁이는 짚으로 금을 만들어낸다. 다음날 아침 방을 찾은 왕은 놀라운 광경을 보고 짚을 더 많이 주면서 동일한 명령을 내린다. 이번에도 난쟁이가 딸을 도와주고 대신 반지를 받아낸다. 다음 날 아침 왕은 기뻐하며 또다시 같은 명령을 내리는데, 이번에는 이를 완수하면 그녀를 자신의 아내로 맞이하겠다고 얘기한다. 그날 밤에도 난쟁이는 딸을 찾아온다. 하지만 딸은 이제 더 이상 난장이게 줄 것이 없었다. 그러자 난쟁이는 하나의 제안을 한다. 자신이 짚을 금으로 만들어주는 대신, 그녀가 왕과 결혼하여 아이를 낳게 되면 그 아이를 달라고 말이다. 미래가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라 처녀는 난쟁이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이렇게 해서 방앗간 주인의 딸은 왕과 결혼하게 된다. 한 해가 지나자 그녀는 아이를 출산하게 되었다. 왕비는 난쟁이와의 약속을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어느 날 난쟁이가 찾아와서는 아이를 요구하는 것이다. 놀란 왕비는 원하는 모든 것을 주겠다며 아이만큼은 데려가지 말아 달라고 애원하였다. 난쟁이는 그럴 수 없다고 하며, 대신 3일의 기간을 줄 테니 그 기간 내에 자신의 이름이 무엇인지 알아내면 아이를 데려가지 않겠다고 이야기한다. 왕비는 밤을 새우며 살면서 들었던 모든 이름을 생각해내고, 또 전령사를 보내어 왕국에 있는 모든 이름을 조사해오도록 했다. 다음날 난쟁이가 찾아오자 왕비는 자신이 알고 있는 이름을 다 말했으나 그때마다 난쟁이는 자신의 이름이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두 번째 날이 되었고, 왕비는 이번에는 독특한 이름들을 대며 난쟁이의 이름을 맞추려 했으나 또 실패하고 만다. 세 번째 날이 되자 전령사가 돌아왔다. 왕비는 새로운 이름을 알아낸 것이 있는지 묻자 전령사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어떠한 새로운 이름도 찾아내지 못하다가, 여우와 토끼들이 잠드는 깊은 숲 속의 높은 산을 오르고 있을 때, 작은 오두막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특이하게 생긴 난쟁이가 그 집 앞에 불을 피워놓고 한쪽 발로 불 주위를 돌며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내 이름은 룸펠슈틸츠헨! 이걸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건 다행이야!"' 이를 들은 왕비는 무척 기뻐했다. 조만간 난쟁이가 도착했고, 왕비는 처음에는 쿤츠라는 이름을, 두 번째로는 하인츠라는 이름을 대며 맞는지 물었다. 그때마다 난쟁이는 아니라고 하였다. 마지막으로 왕비가 물었다 "혹시 당신 이름이 룸펠슈틸츠헨인지...?" 이를 들은 난쟁이는 놀라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난쟁이가 오른쪽 발을 세게 구르자, 바닥에 구멍이 생겼고 그곳에 빠진 그는 양손으로 왼쪽 발을 잡고 자신의 몸을 둘로 갈라버렸다.
'이름'이라는 것은 어떤 사람이나 사물을 구분하도록 도와준다. 이름을 안다는 것은 우리가 그 사람이나 사물에 대해 우리가 '의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의식하고 있을 때에는 그것을 다룰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나도 내가 왜 그러는지 모를 때에' 필요한 것은 내가 모르는 그 무의식적 에너지의 '이름'을 알아내는 것, 그러니깐, 무의식을 의식화해내는 작업이다. 우리가 무엇을 모르는지 모르면 그 이름 없는 힘의 지배 아래에 들어가게 된다. 우리의 주도권을 되찾기 위해서는 먼저 나 스스로가 어떠한 무의식적 힘에 의해 휘둘리고 있는지 그 이름을, 그 개념을, 그 특성을 알아야 한다. 룸펠슈틸츠헨의 이야기에서 방앗간의 딸도 처음에는 이 이름 없는 힘의 지배 아래에 있다. 자신의 손으로는 물레를 돌릴 수 없는 상태, 그러니깐, 자신의 손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상황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아빠의 거래와 왕의 시험에 무방비로 희생되기도 한 여성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서 이름 모를 난쟁이가 나타나 그녀 삶의 주도권을 잡기 시작한다. 그는 물레질을 해주며 이 가난한 여성의 소중한 보물들을 하나둘씩 가져가기 시작한다. 여성은 급기야 자신의 아이마저 희생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 그 난쟁이의 이름을 알아내지 못한다면 말이다. 이러한 다급한 상황이 되어서야 이 여성은 자신을 잡아 삼킨 이 힘의 이름이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 머리를 짜내기 시작한다. 모든 수단을 동원하면서 말이다. 우리의 삶 속에서도 이러한 상황을 맞이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종잡을 수 없는 세력에 휘둘리며 내 삶의 주도권을 내어주다가 그것이 아이로 상징되는 '희망'까지도 빼앗아가버리는 상황에 치달았을 때 정신이 번쩍 드는 경험.
그런데 이때 그 종잡을 수 없는 무의식적 힘의 이름은 어떻게 알아낼 수 있을까? 전령사가 룸펠슈틸츠헨의 이름을 알아낸 그 장소에 비밀이 있다. 전령사는 깊은 숲 속에서, 생각하지도 못한 위치에서 난쟁이의 이름을 알아낸다. 숲은 문명화된 장소와는 멀리 떨어져 있는 야생의 땅이다. 의식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의식의 경계 밖에 있는 무의식의 영역이다. 내 정신의 가장 어두운 부분에 빛을 드리워야 그 힘의 이름이 무엇인지 알아낼 수 있고, 이름을 알아낸 순간부터 그것은 우리를 지배하는 힘을 잃게 된다. 룸펠슈틸츠헨의 이름이 발설되자, 그가 자신의 몸을 찢어버린 것처럼 말이다.
꿈을 기록한다는 것은 무의식을 언어화하고 의식화하는 작업이다. 그룹꿈투사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룹꿈투사를 하면서 '아하!' 체험을 종종 하게 된다. 누군가가 나의 꿈에 대한 투사를 해줄 때, 기존에는 의식하지 못했던 내 정신의 영역에 빛을 비춰주는 깨달음의 순간이 오는 때이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는 무의식적으로 나를 지배해오던 그 힘을 다룰 수 있는 나만의 내적 근육이 자리 잡아가기 시작하면서 삶의 창조적 변이가 가능해진다.
달빛 아래에서 새겨온 꿈언어 습작 노트가 준 선물이 이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