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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ora Oct 02. 2020

예지몽

꿈을 현실에서 만날 때

미래의 사건을 예견하는 꿈은 특별하게 여겨져 왔다. 그리고 이러한 꿈의 예지적 성격 때문에 고대부터 꿈의 메시지를 해석하려 했던 전통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성경의 창세기에서 이집트 파라오의 꿈을 해석하여 기근을 예언한 요셉의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꿈의 해석을 다룬 가장 오래된 기록은 체스터 비티 파피루스(Chester Beatty papyri III)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 이는 이집트 중왕국 시대 제12왕조 시기 (기원전 1991-1786년)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칼 융은 그의 자서전을 통해 세계대전과 냉전을 예견하는 일련의 꿈을 소개한 바가 있다. 이러한 경우처럼 꿈은 사회적 사건을 예견하는 경우도 있는데, 재미난 점은 어떠한 큰 사회적 사건이 있을 때 사람들의 꿈이 집단적으로 반응한다고 많은 꿈 연구가들이 보고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꿈을 30년 넘게 연구해온 커트 포러 (Kurt Forrer)에 의하면 예지몽은 사실보다 미시적인 일상에서도 아주 흔히 일어난다고 알려주고 있다. 꿈속에서 등장한 사물, 인물, 사건과 연관된 어떠한 상황을 다음날 맞닥뜨리는 경우도 매우 흔해서 그는 꿈을' 깨어있는 삶의 청사진' (blueprint of waking)이라고 묘사하며, 꿈이 마치 미래를 보여주는 프로그램과 같다고 해서 'pre-gram'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예지몽을 더 잘 꾸는 사람도 있을까


커트 포러는 꿈의 사건을 현실에서 만나는 경험을 가장 많이 하는 것은 10대 청소년들이라고 한다. 이유는 청소년만큼 꿈과 현실을 예민하게 관찰하는 연령대도 없기 때문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일반인들의 꿈도 예지적 요소가 많지만, 꿈, 현실, 그리고 그 둘의 대응 관계 자체에 큰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에 잘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꿈 기억이 잠복 상태로 있어서 현실에서 드러나더라도 그것이 지난밤 꿈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모른다는 것이다. 그리고 오랜 시간 꿈을 세심하게 기록하고 조사한 후에야 꿈과 현실의 은밀한 연결들이 수면 위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포러는 그만큼 꿈이 현실에 깊은 영향을 준다고 보았다. 그래서 마치  프로그램 코드가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통해 우리가 읽을 수 있는 언어와 이미지로 모니터에 출력되듯, 꿈이 현실 뒤에 항상 숨어있다고 본 것이다. 


그러니, 예지몽도 관심을 갖는 만큼 보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이는 한국과 서양 사회에서의 태몽에 대한 경험을 비교해봐도 알 수 있다.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예지몽 중 하나가 태몽이다. 주변에서 흔히 들어봤을 것이다. 그런데 서구 사회에서 이는 흔한 현상이 아니다. 서양인들에게는 태몽을 꾸는 한국인들이 다 심령술사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역시 어쩌면 태몽을 둘러싼 관심과 기대의 차이 때문이 아닐까? 그러니깐, 서양인들이 태몽을 꾸지 않는다기 보다, 태몽이라는 주제 자체가 우리 사회에서만큼 흔히 회자되고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지 않기 때문에 임신을 기대하는 커플 주위에서 꿈에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이 원인일 수 있겠다. 


그럼, 예지몽이 문제 해결을 위한 도움을 줄 수도 있을까


우리가 어떤 꿈이 예지몽이었다고 확실히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은 현실에서 꿈과 일치하는 경험을 한 이후의 시점이다. 어떤 꿈 때문에 질병을 조기에 발견하여 치료하게 된 사례들과 같이 꿈 때문에 어떤 더 큰 사건을 방지할 수도 있지만, 그럴 수 없다고 느껴지는 꿈도 있다. 하지만, 그룹꿈투사를 창시한 제레미 테일러 선생님은 그럴 때조차도 꿈은 우리의 심리사회적 성숙을 도와준다고 보았다. 예를 들어, 나의 경우 할머니의 임종 꿈을 생생하게 꾼 경험이 있는데, 죽음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지만, 죽음의 의미를 새기고, 그것을 위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죽음조차 아름다운 하나의 기억으로 남을 수 있도록 꿈이 큰 도움을 주었다. 


내 꿈에서 어떤 여자가  '하늘 높이 가 닿는' 고성의 첨탑과 같은 지붕이 있는 스튜디오에서 '이사 나가는'데, 검은 '새'가 앉아 있는 온통 '흰색'의 스튜디오 문을 열자, 그 안에서 수십 년 동안 지내던 늙은 원숭이가 인간의 모양으로 바뀌면서 자유의 몸이 되어 나가는 꿈이었다. (당시 마리아 김부타스의 <여신의 언어> 책을 읽고 있을 때인데, 책에 언급되어 있던 상징들이 그대로 반영되었던 것 같다. 재생의 상징으로 구석기시대 무덤 위에 그려졌던 '새' 여신, 뼈의 색깔과 같다고 해서 죽음의 색으로 여겨졌던 '흰색' 등) 원숭이 띠였던 나의 할머니는 꿈속에서 '이사 나가는 여자'로 또, '늙은 원숭이'라는 상징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이것은 내게 죽음이라는 것 자체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변환이라는 것을 마음 깊이 새겨주며 위로해주는 꿈이었다. 그리고 할머니의 죽음을 추억할 때 항상 옆에 있는 아름다운 미술 작품 같은 꿈이기도 하다. 



참고자료: 

American Journal of Biomedical Science & Research 2019년 1월 호 

Kurt Forrer (2012) Tomorrow in your Drea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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