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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르바 Apr 18. 2021

오늘 하루 수영을 마스터할거야

수영 2주 차에 깨달은 교훈

아침반 수영에 나간 지 벌써 2주째. 수업을 받기 전까진 수영은 '만만한' 운동이었다. 자유형 배우는데 두세 달이 걸린다는 말을 얼핏 들은 적이 있다. '하루 날 잡고 호흡법이랑 물에 뜨는 원리만 배우면 되는 것을 두 달 씩이나 배워야 할 일인가?'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었다. 나름 어릴 적부터 축구부와 육상부 대표 선수였던 만큼 운동신경은 어디 내놔도 자신 있었으니까.


2년 전쯤이다. 친구를 데리고 수영장에 '일일 과외'를 받은 적이 있었다. 해병대 출신에 '수상인명구조 자격증'까지 보유한 친구였다. "하루면 자유형 마스터 가능 하제?" 내가 묻었다. 친구는 "니 운동신경만 괜찮으면 하루면 할 수 있을끼다."라고 답했다. 자신감에 가득 차 있던 나는 곧바로 수영장 입구의 가게에서 수영복과 수경을 맞추고 특훈을 받았다.


"호흡은 음~파~ 하면 되고, 발차기는 다리 쭉 뻗고, 몸에 힘 뺀 상태로 펄 저으면 된다."


인명구조사이자 해병대라는 타이틀을 가진 친구의 폭풍 같은 설명은 믿음직스러웠다. 곧바로 물에 들어가 시킨 대로 시도했다. 하지만 호흡 때마다 물이 입안으로 한가득 들어왔다. 몸에는 힘이 잔뜩 들어갔는지 돌처럼 가라앉기만 했다. 발차기를 쉴 새 없이 해도 물만 엄청 튈 뿐, 앞으로 나가 지지 않았다. 한 시간쯤 흘렀을까. 자기만 믿으라는 친구는 안 되겠다며 손사래를 쳤다. "하루 만에 택도 없네. 집에 가자."  그날 나는 해병대 친구의 강습 실력이 별로였다고 핑계 삼고는 한동안 수영과 이별을 고했다.




2년이 흘러 초급 수영반에 들어갔다. 첫 수업엔 발목을 까딱까딱 폈다 접는 연습이 전부였다. 강사님은 실제 물에서 발목이 접히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며 이 동작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두 번째 수업에서는 발차기를 배웠다. 아직까지도 물속으로 몸을 다 집어넣기는커녕 엉덩이는 수영장 밖에 걸친 채 진행됐다. 세 번째 수업에서야 '음파~' 호흡법을 배웠다. 네 번째 수업이 되자 드디어 몸 전체가 물 안으로 들어갔다. 여전히 보조 도구에 몸을 의지한 채 발차기를 한 시간 내내 했다.


2주 간 수업을 받아 보니 깨달았다. 수영은 절대 만만한 놈이 아니었다는 걸. 물에 떠 앞으로 나아가는 데는 어느 한 동작도 빼놓을 수 없었다. 하나라도 제대로 익히지 않으면 결국 물에 가라앉는다. 자유형 하나에도 작디작은 동작들이 쌓여 온몸이 하나로 작동해야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난 수십 가지 과정을 한두 시간 '속성 과외'로 끝낼 수 있다고 믿었다니. 일주일 세 번 아침 일찍 일어나고, 다리에 알이 배고, 물을 몇 리터 먹어가며 배우는 지난한 과정들은 머릿속에서 모두 생략했던 것이다. 오로지 햇살 좋은 여름날 풀빌라에서 우아하게 수영하며 호캉스를 즐기는 모습만을 떠올렸을 뿐.





수영을 대하던 마음은 다른 일을 대할 때도 비슷했던 것 같다. 노력 없이 '대박'을 바라는 마음이다.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한의 결과를 얻어 내겠다는 욕심. 겨우 한 두 번 해봐 놓고 안 된다고 무언가를 탓하는 비겁함. 헬스장에 등록만 해놓고 금방 복근이 생길 거라고 믿으며. 왜 두 달이 지났는데 안 생기냐며 스트레스받고, 종목 공부도 없이 남들이 사는 아무 주식이나 '묻지 마 투기'를 하고 왜 나는 부자가 되지 못하는지 한탄하는 식이다. 이런 마음들에는 늘 '꾸준히' 보다 '한 번에'라는 수식어가 앞에 따라다니곤 했다.


노력의 과정 없이 '대박'을 터트리면 정말 행복할까? 처음 기자 시험을 본격 준비도 전에 한 방송사 최종면접에 올라간 적이 있다. 마지막 관문에서 탈락했는데, 만약 그때 내가 합격했다면 정말 행복했을까? 주식을 시작하자마자 초심자의 행운으로 감당하기 어려울 큰돈을 한 번에 벌어본 적이 있다. 물론 신기루처럼 며칠 사이 사라졌지만, 내가 그 돈을 계속 가졌다면 나는 정말 행복했을까?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지금 나의 결론은 "아니다"이다.


언론사 지원서를 내고 떨어지고 일 년 넘게 반복한 기억은 지금 내가 하는 일이 내가 얼마나 값지게 꿈꿔오고 바랐던 일인지 잊지 않고 일을 할 수 있다. 나에 대해, 내가 왜 기자가 되고 싶은지 떨어지며 1년 동안 진지한 고민을 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나는 지금쯤 이곳을 떠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만약 그때 운 좋게 번 돈을 계속 가지고 있었다면? 돈의 소중함을 모른 채 흥청망청 쓰거나 아무 곳에 또다시 투자했다가 큰 좌절을 맛봤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지금처럼 열심히 경제 공부를 하며 '지키는 투자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고 투기성 투자만 했을 테니까. 정말 내가 꿈꿔온 것처럼 하루 만에 자유형을 마스터해서 별문제 없이 수영을 할 수 있었다면? 아마 난 수영에 별 다른 재미를 못 느끼고 며칠 안 돼 그만뒀을지 모르는 일이다. 돌아보니 무슨 일이었든 쉽게 얻은 건 쉽게 사라졌다. 결과적으로 늘 그랬다.


죽기 전에 가지고 갈 수 있는 기억들 몇 가지를 꼽으라 한다면, 그 기억 중 상당수는 미친 듯이 몰입하고 지루한 과정들을 버티며 해냈을 때 느낀 순간들이었다. 그 순간은 시간들이 겹겹이 쌓여 만들어졌기에 우리는 '대박'이라 부르지 않는다. 앞으로 수영은 대박보다는 죽기 전에 가져갈 기억 리스트에 추가됐으면 한다. 한 번에 박태환이 되길 바라기보다 지금 지난한 과정을 차근히 즐겨야 가능한 일 아닐까. 오르막의 긴 고통을 이겨낸 내리막이야말로 짜릿하고 황홀한 법이니까. 당장 내일 아침 7시 수업에서는 드디어 팔젓는 법을 배운다는데, 얼마나 또 물을 한가득 퍼 먹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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