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책을 좋아하게 된 계기는 다음과 같다. 초등학생이었다. 나이 차가 많이 나는 동네 누나가 있었다. 평소 책 읽기를 즐겨했는데 학교 성적도 상위권이었다. 엄마들 사이에서도 칭찬이 자자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단순한 시절이었다.
중학생이 되었다. 나는 원하는 책을 사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다. 그렇게 산 책들은 무엇보다도 소중한 물건이었다. 책장을 시원하게 펴지도 못했다. 밑줄은커녕 모서리를 접는 행위조차 용납되지 않았다. 그런 습관은 여전히 남아있다. 나는 지금도 책을 할아버지처럼 모신다.
2
나는 종이책을 선호한다. 책을 읽는 행위란 단순히 '텍스트를 읽는 것' 이상이라는 생각이다. 손으로는 종이의 질감과 무게를 느낀다. 편집자가 의도한 문장의 배열과 폰트를 해석한다. 가끔은 첫 장으로 돌아와 다시 읽어보기도 하고, 결국 못 참고 가장 뒷장을 슬쩍 펼쳐보기도 한다. 이 모든 행동이 책을 읽는 행위며, 전자책을 애용하지만 아쉬움을 느끼는 부분이기도 하다. 음악도 앨범을 사는 대신 스트리밍으로 듣는 세상이다. 그럼에도 앨범은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종이책도 마찬가지다. 내가 평생 지니고 살았으면 하는 책들이 있다. 그것은 나의 물리적인 공간을 기꺼이 차지했으면 한다. 전자책은 그러니까, 편리하지만 사랑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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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나를 읽는 순간이 있다. 분명 책을 읽고 있는데 책장이 넘어가지 않는다. 글자, 단어, 문장 하나하나를 읽을 때마다 관련된 기억이 떠오르는 것이다. 이를테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읽을 때였다. '작고 차가운 손'이라는 단어를 발견했다. 그러면 나는 어느새 그녀의 손을 떠올렸다. 그녀의 손은 너무나 차가웠었다. 처음 손 잡던 그 날이 유난히 추운 겨울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여자는 손이 차면 안 돼.’ 그래서 항상 두 손으로 감싸, 후후 뜨근한 입김을 불며 부벼주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남자 친구보다 선배의 모습이 더 익숙했던 그녀는 그만두어도 된다며 얼굴을 붉혔다. 내가 그녀의 모습을 떠올리려 하면, 얼굴은 그리 선명한 형태가 되지 못했다. 다만 그 갈색 머리칼만이 선명한 것은, 나의 손이 가장 많이 닿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기억을 떠올리다가 문득 정신을 차리면, 한 페이지도 넘기지 못한 채 몇 시간이 훌쩍 가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이런 순간을 위해 책을 읽는다. 책을 읽는 즐거움이란 잊고 있던 자신을 발견하는 즐거움과 동일하다는 생각이다. 하루키가 말했다. 아니, 그의 소설 속에서 와타나베가 말했다. ‘글이라는 불완전한 그릇에 담을 수 있는 것은 불완전한 기억이나 불완전한 상념밖에 없다.’라고. 슬픈 일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중요히 여겼던 것은 사라지고, 미처 신경 쓰지 못했던 작고 불완전한 것들만이 선명하게 남는다. 책을 읽으면서 마주하는 몇 개의 불완전한 단어들로 그것들을 떠올리곤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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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산다는 건 죽음을 훈련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매일 침대에서 태어나 아침을 맞이하고, 다시 침대로 돌아가 죽음 같은 잠에 든다. 책을 읽는다는 건 그 짧은 찰나를 밀도 있게 보내려는 우리의 애씀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