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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성용 Aug 29. 2019

아침 같은 글

1

이른 아침에 일어나는 일이 많아졌다. 새로운 가구를 주문했기 때문이다. 침대와 옷장, 거실에 놓을 탁자와 소파였다. 기사님들은 주로 아침 6시쯤 도착하기 때문에, 나는 30분 정도 일찍 일어나 맞이할 준비를 했다.


나는 잠이 많다. 일찍 자고 늦게 일어나는 편이다. 다행히 출근 시간이 자유롭다. 나는 점심 전에 출근하고 늦은 저녁에 퇴근하는 생활이 자연스러워졌다. 그러니 이런 시간에 깨어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내게는 새로운 일상처럼 느껴졌다. 이를테면 아침 6시에도 해가 떠있으며, 그때의 세상은 필름 사진처럼 푸른빛으로 물들어 있다는 걸 나는 여태껏 잊은 채 살고 있었다.


2

무라카미 하루키는 새벽 4시에 일어나 글을 쓴다고 한다. 스티븐 킹도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글을 쓴다고 했다. 작가들이 이른 아침에 글을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래도 자고 일어나면 아무런 잡념이 없는 상태이기 때문일 테다.


나는 언제나 퇴근 후 글쓰기를 지향해왔다. 그래서 어떨 때는 이미 소진되어서 멈춰버린 생산성의 뺨을 때리는 일부터 시작했다. 주로 새로운(불편한) 장소를 찾거나 맥주 한 캔을 들이키는 식이었다. 그때서야 나는 바닥에 남은 여력으로 감정을 뱉어낼 수 있었다. 글을 쓰고 나면 각성 상태가 된다. 몸은 달아오르고 시야는 뚜렷해지고 감각은 예민해진다. 밤에는 잠에 들지 못했다. 자다가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나 고치고 싶은 문장이 생기면 눈을 뜨고 휴대폰 메모장에 적어두었다. 가끔은 나의 기억을 믿고 잠들었다가 아침이면 '어젯밤 무언가 신선한 문장을 떠올렸었는데'라는 감각만 마주하게 되었다. 그렇게 사라진 문장을 모은다면 단편 소설 한 편을 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3

나의 아버지는 아침에 대한 완고한 철학이 있다. 그것은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는 사람은 성공한다.'라는 신념이었다. 아버지는 아침에 일어나 성공한 사람들의 이름을 꽤 긴 시간 동안 읊을 수 있었다. 그 철학이 사실이라면, 우리 가족은 성공을 바라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주말이면 오전 11시쯤 일어나서 LA 다저스의 메이저리그 경기를 보고 아침 겸 점심을 먹는 것이 우리 부자(父子)의 루틴이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아버지의 철학 뒷 문장에는 '그러나 꼭 성공하는 삶을 살지 않아도 괜찮다'가 생략되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무언가를 할 때보다 알고도 하지 않을 때에 나는 더 적극적인 마음이 되는 것 같다.


지금은 아침 7시 반이다. 가구 설치도 어느 정도 끝이 난 것 같다. 출근을 준비할 시간이다. 밤에 쓰던 글을 아침에 쓰니, 아침 같은 글이 되었다. 월요일 아침 9시에 보내기 어울리는 글이다. 그러나 나는 앞으로도 밤에 글을 쓸 것만 같다. 적어도 새로운 가구가 오거나 성공적인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전까지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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