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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성용 Oct 16. 2019

첫 퇴사는 시원섭섭한 맛이었다


퇴사를 했다. 첫 퇴사는 시원섭섭한 맛이었다. 마치 오래된 이별을 받아들인 사람 같았다. 사랑했다. 이 말이 어색한 줄은 알지만 다른 국어로는 설명할 수 없다. 첫 회사와 나의 관계는 분명 사랑이었다. 모자라고 서툴렀다. 잘하려고 애썼다. 대부분 버려질 생각 끊임없이 기록하고 전했다. 조금이나마 기여했을 적에는 큰 기쁨이었다.


회사를 떠나면 무기력해질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무섭게 적응했다. 나의 몸은 아무것도 아닌 상태를 빠르게 체화했다. 인간의 적응력에 다시금 감탄했다. 가까운 친구는 말했다. 네가 젊은 날에 맞이할 마지막 '백수 신분'이 될 거라고. 나는 이 짧은 시간을 더 헛되이 보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이직이 결정됐다. 싱숭생숭한 느낌이었다. 마치 전학을 가는 중학생 같았다. 떨어질 줄 알았던 면접에 붙었다. 나는 그들이 나를 잘못 보고 뽑은 것은 아닌지 불안했다. 기대하는 만큼 해낼 수 있을지도 확실치 않다. 그저 '세상은 내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라는 근거 없는 믿음으로 어색한 첫 출근을 기다리는 중이다.


새로운 회사에서, 새로운 직무로 일하게 됐다. 직업이 꿈이라고 믿던 시절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선택이다. 익숙한 환경을 버리고 새로운 어려움을 받아들이며 우리는 성장한다. 그건 알면서도 몸소 실천해내기는 어려운 일이다. 처음으로 돌아가, 바보 같고 서툴고 능력 없는 '나'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나는 두렵지 않다. 부족한 나를 공개하는 일을 지금껏 훈련해왔다. 그런 나도 괜찮다는 사실을 나는 회사에서, 글쓰기에서, 그리고 사랑에서 배워왔다. 아무것도 아닌 나를 인정해주고 응원해주고 위로해주는 이들이 있었다는 걸 나는 최근에서야 깨달았다. 그러니까 내가 추락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는 모두 당신들의 덕분다.


나는 그렇게, 퇴사와 이직 사이에서, 내가 그동안 사랑받고 있었음을 다시금 발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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