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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성용 Apr 07. 2020

일과 실속


요즘은 일을 너무 많이 한다. 지난달부터 어느 회사의 일을 도와주고 있다. 출퇴근하는 지하철에서 틈틈이 책을 읽고 자료들을 찾는다. 매주 동료를 만나 책과 영화와 브랜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한 달에 한번 인터뷰이를 찾아 연락한다. 주중 저녁에는 녹취록을 쓰고 다듬으며, 주말에는 뉴스레터를 쓰기 위해 머리카락을 쥐어뜯는다. 이번 달부터는 일 년간 쓴 글을 엮어 책으로 내기 위한 작업도 (마음만) 시작했다.


바쁘고 괴롭고 행복하다. 무슨 해괴한 소리인가 싶겠지만 사실이다. 적어도 남이 시킨 일이 아니라 나를 위해 자발적으로 하는 일이다. '주인의식'을 가질 필요도 없이, 내가 주인인 일이기도 하다. 원체 일 벌이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이토록 꾸준히 해본 적도 없다. 나는 지금 내 모습을 좋아한다.


다만 실속이 없어 문제다. 어릴 적부터 실속 없는 일에만 관심을 가졌다. 남들이 찾지 않는 일, 인기가 없는 일, 돈을 못 버는 일만 쏙쏙 골라서 했다. 내 생각엔 타고난 기질이 아닌가 싶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가난할 운명이었던 게 아닐까. 하지만 적어도 마음만은 풍족하게 죽겠지. 나는 그렇게 위안을 삼는 합리화의 달인이다.


최근엔 너무 열심히 하지 말자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어깨에 힘이 들어가니까, 평소보다도 더 못해지는 것 같다. 잘하는 거나 계속 잘하지, 자꾸 못하는 걸 잘하려고 하니까 일을 그르칠 것만 같다. 스스로 올린 부담이 축적되니까, 자꾸만 내가 쌓아 올린 것들을 무너뜨리고 싶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럴 때면 내 뺨을 한 대 때리고서 말한다. "나하고 싶은 대로 할래." 가장 기본적인 것은 왜 쉽게 잊혀질까. 앞으로도 몇십 번은 더 뺨을 맞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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