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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성용 Feb 11. 2019

설마, 나도 꼰대의 길 위에

자기 확신을 넘어서, 내가 버리고 싶어 했던 나약함에 대한 반동


'모두가 너 같은 건 아니야'


누군가에 대해 안타까움과 답답함을 느끼는 순간이 많아졌다. 가 화가 치밀어 오를 때도 있다. 주변 사람뿐만 아니라, TV에 나오는 사연이나 내가 모르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때도 그랬다. 특히 수동적이고 무기력한 태도를 볼 때마다 필요 이상으로 속이 타들어갔다. 최근 들어 더욱 그랬다.

그런 감정이 문득 어색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었다. 지인과 대화를 하던 중이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의 고민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고민이 얼마나 비합리적인가에 대해 논리적으로 설명했다. 그러다 조금 흥분하기 시작했다.


"왜 사람들이 그렇게 수동적이고, 의존적으로 행동하는지 모르겠어. 그렇게 해서 달라지는 게 하나도 없잖아. 적어도 어른이라면, 자신의 삶에 대해서 개선하려고 노력하거나 더 나은 결정을 해야 하는 거 아니야?"

"모두가 너 같은 건 아니야."

"뭐라고?"

"그 사람도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는 거라고."


그제야 화를 가라앉혔다. 대신에 내가 왜 화가 났는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곧바로 부끄러움과 자괴감이 밀려왔다. 나도 어느새 꼰대가 돼버린 건 아닐까 해서였다.


photo by unsplash


한때는 내것이었던 나약함


나는 스스로 개선하려고 하지 않는 태도를 싫어한다. 누군가가 내 문제를 대신 해결해주기를 바라는 나약한 마음을 혐오한다. 그런데 단순히 싫어하는 감정을 넘어서, 혐오한다는 의미는 어쩌면 '이전에 내가 버리고 싶어 했던 나 자신의 나약함'에 대한 반동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상근 행정병으로 군 생활을 했다. 하지만 그리 행복하진 않았다. 중대장 때문이었다. 그는 숫기가 없고, 요령이 없는 나를 특히나 싫어했다. 그는 필요 이상으로 지적하고 다그치고 혼을 냈다. 그저 참고 버텼다. 그나마 인내심이 나의 유일한 장점이었다. 교육을 가장한 괴롭힘은 상병 때쯤 일이 능숙해지면서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 전역할 때였다. 그가 말했다. 예전에 자신의 모습이 떠올라서 싫었다고. 자신은 예전에 그걸 버리기 위해 노력했고 이미 버렸다고 여겼는데, 그것을 내가 가지고 있으니 자신도 모르게 화가 났다고.


나는 아직도 그를 미워한다. 그런데 어쩌면, 나도 그와 같은 행동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한때 내가 버리려고 했던 나의 나약함을, 다른 사람에게서 발견할 때마다 말이다. 마치 한번 데인 흉터에 열이 닿은 것처럼 화들짝 놀라서, 필요 이상으로 침을 튀겨가며 혐오하고 경멸하는 마음을 가진 것은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그런 내 의도를 과연 순수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자기 확신'과 '꼰대' 그 사이


별것도 아닌 내게, 그래도 꼴에 인생선배라고, 조언을 구하는 후배들이 몇몇 있다. 나는 되도록 그런 요청을 사양하고 조심스러워한다. 경험상 그런 조언이 크게 도움도 안 되었을뿐더러, 내 안에 있는 나약함이 드러날까 봐 더욱 피했던 측면이 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렇게 살아야 돼. 이렇게 살지 말아야 돼.'하고 경솔하게 얘기를 할까 봐서였다. 하지만 누군들 그런 말을 자신 있게 할 수 있을까.


어른이 된다는 건, 결국 '자신만의 사전'을 만드는 일이다. 경험을 자신만의 기준으로 나누고, 개념화하고, 그것을 기억한다. 그렇게 자신만의 경험을 기반으로 패턴이 만들어진다. 예를 들어, 무언가를 성취하는 경험을 했다면, 그 성공 요인은 무엇이었으며 조심해야 할 리스크는 무엇인지 나름대로 원칙을 정의하게 된다. 그런 경험이 쌓일 수도록 패턴은 단단해지고 자기확신이 생긴다. 더 나아가, 이것을 타인에게 공유해주거나 조언한다면 도움이 될 것이라는 믿음도 생긴다. 이런 자기확신이 강화되고 고착되면 결국 꼰대의 길을 걷게 된다.


내가 지금껏 써 온 이 그런 식으로 비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누군가 이런 지적을 했다. '자기가 그 자리에 있어본 적도 없으면서, 누가 누구를 혼내는가.' 요컨대 이런 말이었다. 내가 글 쓴 의도와 다르지만, 만약 실제로 그렇게 읽혔다면, 그것은 글을 쓰는 동안 내 안의 꼰대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조사와 어미와 서술어를 조작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이번 기회를 통해, 스스로 경계하려고 한다.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한 첫 번째는, 자신이 꼰대일 수도 있음을 의식해야 하는 일이라고 하더라. 그래서 타인이 그렇듯, 나 자신도 완벽하지 않다는 생각을 놓치지 않려고 한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뭐랄까. '나는 자기확신과 꼰대 사이, 그 어디쯤이 아닐까.'하고 스스로 위로하는 걸 보면, 조금 더 수행이 필요한 것 같다. 꼰대의 길 위에 발을 내딛지 않기... 그거 좀처럼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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