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끌든지, 따르든지, 비키든지'에 대한 소회
갓 취직했을 때 얘기다. 다른 스타트업의 임원과 점심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다. 대화를 하던 중 그가 말했다. "이제부터, 매월 가장 성과가 좋은 팀원을 선정하여 보상을 주려고 합니다." 성과에 따라서 차별적인, 그리고 금전적인 보상을 하여 동기를 부여하겠다는 말이었다. 나와 동료는 우려했다. 성과주의는 업무에 대한 내재적 동기를 떨어뜨리고, 차별적 보상은 구성원 사이에 분란을 만든다는 이유였다. 나는 조직의 성과를 올리는 방법으로 효율적일지는 몰라도, 장기적으로 효과적이지는 않을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때 그 임원이 말했다. "피드백은 항상 해결책을 함께 제시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은 피드백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불만과 지적으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결국 어떻게 하라는 건가요?" 나와 동료는 입을 열지 못했다. 우리는 해결책을 생각해내지 못했다. 그렇게 점심식사가 끝났다.
그 임원은 이렇게 얘기한 것이다. '이끌든지, 따르든지, 비키든지'하라고. 나는 다른 소속이었기에 상관없었지만, 함께한 동료는 그 임원 회사의 소속이었다. 그는 이끌 수도 없었고, 비키고 싶지도 않았기에, 입을 다물고 따르는 것을 선택했다.
Ted Turner의 말은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줬다. 특히 변화와 결과를 빠르게 만들어야 하는 IT스타트업에서 주목받았다. '배달의 민족'을 시작으로 몇몇 기업들이 이 문구를 포스터로 만들어 붙였다. 도전과 혁신을 위해, 무엇이든 하도록 구성원들을 독려하고자 했다. 모든 조직 구성원이 이런 태도(Attitude)를 갖춘다면, 커뮤니케이션 비용을 줄이고, 결과/성과 관점에서 효율적으로 업무 할 수 있었다.
나 또한 많은 영향을 받았다. 항상 대안없는 '비난'이 아닌, 결과를 만드는 '피드백'을 하려고 노력했다. 내가 이끄는 것에는 책임감을 가졌고, 대안을 제시할만한 역량이 없다면 따르기를 택했다. 비효율적인 의사과정은 강박적으로 피하려고 했다.
막 2년 차가 됐을 무렵이었다. 고향 친구들과 술자리가 갖게 됐다. 다들 술이 취했을 무렵, 이 얘기를 꺼냈다. 대안 없는 지적은 변화를 만들어낼 수 없다, 그것은 단지 '불만'일뿐이다, 혁신과 변화를 만들려면 '이끌든지, 따르든지, 비키든지'해야 한다, 라고. 그러자 한 친구가 말했다.
"그래도 말할 수 있어야 돼."
나는 당황했다. 그 친구는 말했다. 언제든 문제를 제기할 수 있어야 하며, 문제를 제기하는 것 자체도 의미가 있다고. 대안을 모른다고 해서 이의를 제기하지 못한다면, 동의하지 않더라도 따르는 상황이 오게 된다고. 오히려 문제를 말하는 것은 함께 대안을 찾을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것이었다. 종종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 대안 찾기에 몰두했던 적이 있다. 적절한 대안을 찾지 못해 혼자서 끙끙대다가, No라고 말할 수 있는 타이밍을 놓치기도 했다. 혹은 문제가 있음을 말했다가, '그래서 어떻게 하라는 건데'라는 말에 꼬리를 내리기도 했다.
어느새 '효율적 사고'에 학습되어 있었다. 우리는 '효과'와 '효율을 구분해야 한다. 효과는 '목적에 대한 결과'이며, 효율은 '들인 노력과 얻은 결과의 비율'이다. 어쩌면 나는 '좋은 결과물을 내는 것' 대신 '들이는 노력에 비해 좋은 결과물을 얻는 것'을 택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목적이 좋은 결과를 내는 것이라면, 대안이 없어도 문제를 말하고 논의할 수 있어야 한다.
스타트업 주니어에게, 그리고 예전의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문제가 있다면 언제든 말하자. 모두가 문제에 공감한다면, 대안은 함께 찾을 수 있다. 우리는 이끌거나 따르지 않는다고, 비키지도 않을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