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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성용 Apr 07. 2021

봄비에 꽃이 지듯


1.

두 시간이면 사람은 고운 가루가 된다. 나를 입히고 씻기고 먹이던 주름진 손은 이제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렇게 당신의 고단한 삶과 역사가 처리됐다. 가족들은 기억할 준비를 했다. 볕이 따뜻한 날이었다. 땅 속에 유골이 담긴 작은 함을 넣었다. 큰아버지는 떨리는 목소리로 기도했다. 그리고 촉촉한 흙으로 꼭꼭 눌러 덮었다. 마치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존재 하나가 사라졌다. 이 일련의 과정을 수행하는데 십 분도 걸리지 않았다. 모든 것을 끝내고 돌아가는 길에 슬픔이 몰려왔다. 우리는 잊어야 살아갈 수 있으므로, 다시 찾을 수 있도록 모든 기억을 그곳에 두고 왔다. 갑작스럽게 비워진 마음에 공명이 일었다. 버스 창가에서 한숨 같은 울음이 터졌다.


2.

모든 감정이 그렇지만, 슬픔은 내가 이해하기 어려운 충동이다. 슬픔의 이유는 분명하다지만, 조금만 깊이 들어가면 그 근원을 제대로 설명해내기 어렵다. 구토를 하듯 울컥 튀어나오는 것이 슬픔이다. 모두 게워내기 전에는 개운해지지 않는다. 슬픔에는 주변 사람의 손길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다가와 얼굴을 살피고 등 두드려주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그간 슬픔의 구렁텅이에서 쉽게 나올 수 있었다. 납 덩어리를 지닌 것처럼 마음은 무겁지만, 어찌 됐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슬픔은 일상 속에서 풍화되듯 서서히 사라진다. 이토록 얄궂고 잔인한 순환을 우리는 계절처럼 반복하며 살아간다.


3.

봄비가 지나간 오후, 도림천을 따라 조용히 걸었다. 하얀 꽃잎들이 고인 빗물 위로 흩어져 있다. 벚나무 가지에는 새로 돋은 어린 푸른 잎만이 남아있었다. 우울할 때면 이런 사소한 지표들이 나를 위로했다. 쉬이 잊어도 괜찮다고. 다시 살아가도 괜찮다고. 무언가를 보내주는 일은 무언가를 피우는 일과 같다고. 나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내일을 살아가야 한다. 그러니 미안한 마음 없이 묻어두기도 한다. 봄비에 꽃이 지듯 그렇게 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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