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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성용 Oct 05. 2021

내가 산책하는 법


요즘은 산책을 자주 한다. 집 근처에 걷기 좋은 하천이 있는데, 매일 저녁을 먹고 나면 한 시간 정도 산책하고 돌아오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전에 나는 '산책을 해야겠다'는 의지를 갖고 걸어본 적이 없었다. 나에게 걷기란 목적지까지 가기 위해 이용하는 가장 값싼 이동 수단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 심경에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그저 '산책하고 싶다'는 작은 의욕이 생기고 있다. 특히 그날 밥을 무리해서 먹었다고 생각될 때 더욱 그렇다. 그럴 때면 나는 아내를 바라보며 "우리 한 바퀴 돌고 올까?"라고 슬쩍 묻는다.


나만의 산책을 즐기는 방법이 있다. 먼저 시간은 늦은 오후나 저녁이어야 한다. 햇볕이 내리쬐는 오전이나 정오는 조금만 걸어도 땀이 흐른다. 반대로 한밤 중에 산책을 하면 가로등이 듬성듬성 있는 어두운 길을 걷기가 무섭다. 또한 통풍이 잘되는 옷을 입어서 저녁 공기와 닿는 면적을 최대한 넓힌다. 함께 걷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걸을지를 미리 합의해두면 좋다. 이를테면, '오늘은 한 시간만 걷다가 돌아가자.'라든지, '저기 보이는 공원까지만 가보자.'라든지 어느 정도라도 산책할 범위를 의논해놓지 않으면 돌아갈 타이밍을 정하지 못해 난감해질 때가 있다. 걷는 속도는 안단테(Andante)다. 출근길 걸음보다 조금 느리게 걸어야 지나는 풍경도 마음에 담을 수 있으면서 지치지 않고 오래 걸을 수 있다.


나는 평화롭고 싶어서 산책을 한다. 산책을 하면서 화를 내거나 누군가와 싸우는 경우는 드물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화가 날 때 발을 멈추고 서로를 죽일 듯이 노려보거나 구석에 주저앉아 혼잣말로 답답함을 호소한다. 그러나 걷고 있을 때만큼은 (비록 그것이 일시적이더라도) 평온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산책에는 뚜렷한 목표가 없고, 발걸음이 같은 방향을 향해있으며, 걷는 중에는 어쩔 수 없이 나 자신이나 상대방에게 좀 더 집중하게 되기 때문이라고 개인적으로는 생각한다. 즉, 본질적으로 산책이란 나라는 이질적인 존재, 혹은 함께 걷는 이와 공존하며 살아가는 일에 분명한 도움이 된다.


나의 산책에는 목적의식이 없다. 그래서 즐겁다. 내가 존경하는 니체는 '진정 위대한 모든 생각은 걷기로부터 나온다.'라고 말했다지만, 나는 위대해지기보다는 좀 더 가볍게 살고 싶어서 걷는다. 나는 전봇대 전선처럼 복잡하게 엉켜있는 의미들을 걷어내고 삶에 여백을 만들기 위해 걷는다. 산책을 한 날이면 '오늘은 적어도 산책을 했으니 모든 것이 엉망인 날은 아니었다.'라고 안심하게 된다. 그것이 요즘 내가 산책하는 이유다.


오늘은 산책하는 저녁 공기가 서늘하다. 겨울이 오기 전에 부지런히 걸어 두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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