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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성용 Oct 17. 2021

겨울이 오고 있다


오늘 처음 마주한 공기가 시리도록 추웠다. 잠이 금방 깨었는데도 이불속에만 있고 싶었다. 일어나자마자 어슬어슬한 몸을 부둥켜안고 두꺼운 잠옷으로 갈아입는다. 창 밖에는 새벽 풍경이 파란색이다. 그 위로 주홍빛의 햇볕이 점점 내리고 있었지만 여전히 도시에는 푸르스름한 기운이 감돌고 있다. 분명 겨울이 오고 있었다.


내게 겨울을 알리는 표지는 입김이다. 겨울이면 나는 습관적으로 입김을 확인한다. 허어-하고 뜨끈한 숨을 내뱉으면 하늘을 향해 김이 퍼져 오른다. 고민이든 걱정이든 짜증이든 모두 한데 끌어모아 허어-하고 호흡을 내뱉으면 어디론가 공중에서 사라지는 것만 같. 그것은 묘한 위로가 된다. 평소에는 한숨이었던 것이 겨울에는 입김이 된다는 사실은 어떠한 의미도 없지만, 내 주위에 달라 점을 알아차리는 일은 늘 즐겁다.


겨울이 오면 떠나가는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푸른 잎사귀라든가 지저귀는 새소리, 운동장에서 축구하는 아이들, 자전거를 타거나 산책하는 사람들, 한강 공원에 펼쳐놓은 돗자리, 발가락 사이사이에 바람이 시원하게 드는 샌들, 옥탑방 마루에서 구워 먹는 삼겹살, 노상에서 마시는 차가운 생맥주 한 잔. 이런 것들이 벌써부터 그리워진다. 그러나 언젠가 다시 돌아온다는 걸 알기에, 봄과 여름과 가을을 더 누리지 못한 아쉬움은 이내 다짐이 된다.


만약 50년을 더 살게 된다면, 앞으로 내게는 50번의 겨울만이 주어진다는 의미다. 그렇게 생각하면 겨울 하나하나가 너무나 소중하게 생각된다. 마치 박스에서 귤을 하나씩 꺼내먹다가 문득 남은 귤이 50개라는  알았을 때처럼 말이다. 분명 많은 숫자이긴 한데 충분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유한한 것을 무한한 것이라고 착각한 사람이 으레 겪는 혼란스러움일까. 이제부터라도 한 알 한 알 음미한다거나, 매 겨울을 꺼내 먹을 때마다 지난겨울과 어떻게 다른지를 비교해가는 즐거움이 내게는 필요할 거라 생각해본다.


밖을 나서니 사람들의 옷이 두툼해졌다. 장터에서 가마솥 한가득 끓이는 곰국에서도, 붕어빵 아저씨의 반가운 동작에서도 흰 연기가 피어난다. 내게 남아있는 것들 중 가장 첫 번째 겨울이 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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