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사피어-워프 가설을 아는가. 한 사람이 세계를 인지하고 이해하는 방법이 그 사람이 쓰는 언어 체계와 관련 있다는 가설이다. 즉, 언어가 사고에 영향을 준다는 뜻이다. 언어란 메시지를 전달하는 '도구'에 불과한 것이 아니었나.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워크플로위(Workflowy)'는 세상에서 가장 단순한 기록 도구다. 나는 워크플로위를 한 달 전부터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큰 변화가 일어났다. 언어가 사고를 바꾸듯, 이 단순한 기록 도구가 글쓰기를 확장시켰다. 그 변화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내면에서 파도처럼 일어났다. 이 모든 것이 작은 점에서 시작됐다.
이전에 다른 도구를 쓰고 있었다. 에버노트와 노션이었다. 크게 불만은 없었다. 다만 모바일 환경에서 불편함이 있었다. 전에 쓴 글을 활용하기도 쉽지 않았다. 그동안 그 문제가 해결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러다 서용마 님을 만나게 됐다. 브런치에서 활동하시는 작가님이다. 최근에는 <모든 기록은 워크플로위에서 시작한다> 쓰기도 했다. 그리고 몇 시간 만에 영업을 당해버렸다. 실은 적극적으로 영업하지도 않으셨다. 자신의 워크플로위를 쓱 보여주셨을 뿐이었다. 슬쩍 보니, 생각보다 활용도가 높아 보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긴가민가 했다. '음, 한번 써볼까?'정도의 느낌이었다.
워크플로위(WorkFlowy)의 첫 화면
워크플로위를 설치하고 회원가입을 했다. 곧이어 흰색 화면이 펼쳐졌다. 점 하나가 찍혀 있었다. 막막해졌다. 나는 까만 점을 한동안 응시했다. 아직 준비가 덜 되었는데, 저 까만 점은 무언가를 기대하는 듯했다. 어디서 부터 시작해야 할까. 먼저 생각나는 키워드를 적어내려 갔다. 목표, 습관, 일상 기록, 독후감, 아이디어, 글쓰기... 욕심부리지 않고 내게 필요한 구조를 만들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가지 카테고리를 세웠다. 그리고 그 밑으로 내용들을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마치 하나의 세계관을 만들어 나가는 듯했다. 즐거웠다. 그날 밤을 새 가며 나만의 구조를 단단하게 채워나갔다.
그 후로 한 달이 지났다. 나는 매일매일 하루의 일을 기록한다. 지하철에서, 회사에서, 집에서, 친구와 대화하고 나서, 그리고 자기 전에도 워크플로위를 켜고 생각과 감정을 기록한다. 한 달 동안 브런치에 10개가 넘는 글을 썼다. 예전에는 무엇을 써야 할지 고민하곤 했다. 지금은 글을 쓰고 싶어 안달이 난 사람처럼 글감이 떠올랐다.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글감이 20개를 넘어섰다. 워크플로위는 Bullet Point 하나만으로 사고를 확장시킨다. 언뜻 떠오르는 생각을 아이디어로 남기고, 아이디어를 프로젝트로 발전시킨다. '발산적 사고'와 '수렴적 사고'. 이 두 가지를 Bullet point와 Hierarchy만으로 이끌어낸다.
우리의 삶이 기억이고 기록이라면, 워크플로위는 이미 내게 없어서는 안 될 도구가 되었다.단순한 점에서 시작해 무한정으로 퍼져나가는 사고. 가히 빅뱅이라고 부를 만한다. 과학자들은 말한다. 세포 단위로 들어가면 또 다른 우주가 있다고. 거시 세계와 다른 물리법칙이 존재하는 미시세계는 또 하나의 우주다. 이 모든 게 점 하나에서 시작되었다. 기록 도구는 그저 '도구'에만 그치지 않는다. 그것이 반대로 나의 사고와 세계의 한계를 규정한다. 언어가 그렇듯 말이다. 그것을 몸소 경험한 것 같아 기분이 좋다. 나는 비트겐슈타인의 말을 다시 한번 되새긴다.
"나의 언어의 한계는 나의 세계의 한계다." 비트겐슈타인 The limits of my language mean the limit of the wor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