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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성용 Apr 11. 2019

목에 걸린 가시처럼


이십 년도 더 되었을까요. 목에 생선 가시가 걸린 적이 있어요. 온 가족이 저녁식사를 하고 있을 때습니다. 평소에 좋아하지도 않던 생선을 발라먹다가 그렇게 됐어요. 저는 아프다고 울음을 터뜨렸어요. 식도와 편도선 사이에서 뾰족하고 단단한 것이 느껴졌거든요.


가족들은 저마다 방법을 내놓았어요. 할머니 말대로 날달걀을 꿀떡 삼켜보기도 했고요. 고모부 말대로 밥덩이를 뭉쳐서 삼켜보기도 했어요. 그래도 가시는 그대로였어요. 저는 더 크게 울음을 터뜨렸죠.


결국 응급실에 갔어요. 한바탕 난리가 난 거죠.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요. 목에 가시가 없대요. 의사 선생님이 그래요. 목에 걸린 가시가 없다고. 그저 가시가 긁고 간 자리만 있대요. 그래서 편도선이 부었대요. 그러니 이만 가보셔도 된다고 하네요. 저는 그제야 울음을 그쳤어요. 없는 가시에 아파할 순 없으니까요. 그렇게 해프닝은 싱겁게 마무리됐습니다.


그런데 살다 보니까, 목에 가시가 걸린 것처럼 아픈 순간이 있더라고요. 이미 한차례 훑고 지나갔는데도, 계속 목에 걸려있는 것처럼 아파했던 순간이 더러 있었습니다. 실은 지나간 자국만 남은 건데 말이에요. 저는 날달걀을 마시듯 술도 퍼마셔 보고 밥덩이를 넘기듯 이것저것 집어먹어서, 슬픔을 삼켜버리려고 애썼던 것 같아요. 아무래도 소용은 없었고요.


이제는 그러려니 하고 우습게 넘길 만큼 무뎌졌습니다. 겪어보니 자연스레 알게 된 거겠죠. 아프고 부은 건, 그저 가라앉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다행히도 저는 아픔을 쉬이 보낼 줄 아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목에 가시가 걸려도 모르고 지나가버릴 사람이 되었습니다. 저는 그것이 퍽 슬프고 섭섭하기도 합니다만, 결국 그렇게 되어버렸습니다.


살다 보니 몇 번쯤 자두 맛 사탕을 삼킨 것처럼 슬픈 순간이 찾아왔다. 앞으로도 몇 번쯤 나는 그렇게 슬퍼질 것이다. 그런 슬픔은 어찌할 방법이 없다. 눈물을 흘리며 견딜 수밖에. 녹아내리길 기다릴 수밖에.

- 고수리 '우리는 이렇게 사랑하고야 만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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