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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성용 Mar 09. 2023

혼자 뜬구름 속을 걷고 있는 것 같아


"사람들을 만나면 온통 부동산과 주식 이야기뿐이고, 그 모든 흐름을 놓치면 시대에 뒤처진 루저가 될까 봐 불안한 마음도 든다. (중략) 그런 말들 속에서, 삶을 다른 측면으로 사랑할 수 있는 가능성은 점점 더 줄어드는 것만 같다. 가끔은 누구를 만나서 내가 좋아하는 영화나 문학 이야기, 좋은 풍경이 있던 여행 이야기, 사랑이 있던 옛 추억을 말하기도 어딘지 민망하기만 하다. 혼자 뜬구름 속을 걷고 있는 것 같아서다."


- 정지우 <내가 잘못 산다고 말하는 세상에게>




어떤 문장은 읽다 보면 내가 언젠가 느끼고 있던 모호한 감정을 분명하게 이해하게 된다. 오늘은 '혼자 뜬구름 속을 걷고 있는 것 같아서'라는 정지우 작가의 문장이 그랬다. 


나는 사람을 그리 자주 만나는 편은 아니지만, 요즘 들어 유난히 대화 주제나 관심사가 달라졌다는 걸 체감한다. 10대에는 게임이나 연예인, 20대에는 연애와 진로, 30대에는 결혼과 육아로, 이렇게 시기에 따라 관심사가 옮겨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생각한다. 그때만 경험할 수 있는 가장 큰 고민이기도 하고 모두가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 그 속에서도 어떻게든 웃을 일을 찾아내는 것이 그 시절에 나누었던 대화였다.


그러나 요즘은 이야기를 나누면 나이를 막론하고 '돈이 삶의 목표이자 전부'라는 뉘앙스를 자주 느낀다.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것뿐만 아니라 '당신도 당연히 그럴 것'이라는 전제가 자연스럽게 묻어 나와서 가끔은 당혹스럽기도 하다. 주식 투자나 부동산, 연봉과 같은 이야기로 시작해서 결국 부러움이나 은근한 자랑, 부자가 되자는 다짐과 바람이 한데 섞이며 대화가 끝날 때가 있다. 그런 자리에서 일의 의미라든지, 소명의식이라든지, 소소한 기쁨이라든지, 에세이 쓰고 있다고 말하는 나 자신이 어쩐지 세상 물정 모르는 어수룩한 사람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너는 사정이 나아서 그래.', '여유가 있으니까 그런 소리를 하지.'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다. 물론 그 말에 악의는 없었고 진심으로 그렇게 믿는 듯했다. 내게도 돈과 부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삶 전반을 안정적으로 지지해 주는 것이고 새로운 용기와 스스로에 대한 관대함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어느 시절이든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5평짜리 반지하 원룸에서 매일 글을 쓰고 돈 안 되는 독립출판물을 만들었던 이유는 분명 주머니 사정이 여유로워서가 아니었다. 


가치관이란 내가 처한 환경과 상황에 따라 임시로 조정될 뿐, 되도록 자기 자리를 지키고 서 있는 것이 아니었던가. 한 가지의 가치만을 전적으로 추구하는 삶은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불안정하다고 미약하다고 생각된다. 마치 한 발로 서 있는 것처럼 넘어지기 쉬워 보인다.


여러모로 어려운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여러 재해가 휩쓸고 간 폐허 같은 사회 속에서 삶의 의미나 꿈이나 여유는 사치품처럼 여겨지는 듯하다. 이제는 '낭만'이라는 단어조차 생소하게 느껴진다. 일상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소소한 기쁨이라든지, 계절의 변화나 풍경이라든지, 삶에서 마주하는 감정선과 고유함을 말하고 쓰는 내가, 요즘은 홀로 뜬구름 속을 걷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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