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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성용 Jun 17. 2019

나는 하루를 일기로 시작한다


나의 하루는 일기로 시작된다. 주로 출근하는 지하철에서 핸드폰으로 쓴다. 그렇다고 그리 대단한 내용 아니다. 그저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 가벼운 낙서처럼 적는다.


이를테면

'오늘은 하와이안 셔츠를 입고 출근한다.

세계일주를 할 적에 항상 입 옷이다.
그래서 이 셔츠를 입으면 여행하는 느낌이 든다.

창 밖 서울 풍경이 새로워 보인다.'

라든지.


또는

'뒤편에 있는 남자의 통화소리가 너무 크다.
한 마디 해줄 요량으로 뒤를 돌아봤는데 그는 통화 중이 아니었다.
그는 큰소리로 자신과 대화하고 있었다.
나는 무서워서 못 본 척 고개를 돌렸다.'

라든지.


아니면

'다시 태어난다면 혼자 일하는 직업을 갖고 싶다.

가령 작가, 화가, 사진가, 곡가, 성악가... 아, 모두 '가'로 끝나는구나.

아버지 죄송해요. 다시 태어나도 '사'자는 될 수 없겠습니다.'

라든지.


얼핏 사소해 보이는 이 일기들은 내게 큰 원동력이 된다. '일기 쓰기'란 세계를 지각하고 나의 마음을 관찰하는 일이다. 사진이 이미지를 포착하여 시간을 기록하는 도구라면, 일기는 보이지 않는 마음을 기록한다. 이런 기록이 쌓이면, 나의 이야기들이 가진 공통적인 특성이나 모순된 영역을 발견하게 된다. 그 지점을 발견하여 정리하면 곧 내 생각이 되고 글이 된다. 나의 모든 글은 이런 일기 같은 기록이 모인 결과다.


글쓰기를 처음 시작한다면, 이런 사소한 일기부터 접근해보면 어떨까. 글쓰기를 시작하기 어려운 이유는 소재가 없어서 인데, 소재는 주어지기보다는 오히려 발굴하고 발견하는 쪽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러니 일기는 모래 속에서 금싸라기를 찾기 위해 뜰채로 휘휘 젓는 일 셈이다.


이 글도 출근길에 쓰고 있다. 지하철은 을지로 3가 역에 도착하기 직전이다. 오늘도 지각이다. 이제부터 뛰어야 하므로 오늘 일기는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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