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경주를 지나 <무진기행> 김승옥 작가를 만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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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우울한 편지를 쓰게 됐습니다. 미안한 마음입니다.
나는 무진으로 떠납니다. 주말에는 비가 내린다고 합니다. 그러니 다음 날 비가 개는 대로 떠납니다. 무엇으로부터 떠나는지 묻는다면 그리 할 말은 많지 않습니다. 나조차도 무엇에서 떠나는 것 인지, 아니 내가 떠나려는 것이 맞는지도 희미한 상태입니다. 다만 머릿속에 처음 떠오르는 것은 '식었다'라는 단어입니다. 식었다. 솔직히 그 말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저로 하여금 미지근한 국물 요리의 온도라든지, 침묵하는 연인의 사이를 떠오르게 합니다. 분명 유쾌한 맛과 표정은 아닙니다. 게다가 단어가 과거형인 점이 걸립니다. 식었다는 건 이전에는 따뜻했거나 활활 타올랐었다는 사실을 기저에 깔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식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긴 시간과 강렬한 사건이 필요합니다. 그 과정을 멀리서 보면 아날로그적이고, 또 가까이서 볼 때면 디지털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마음이 식는다는 건 계단을 타고 내려가는 모양입니다. 그것이 사람이든, 환경이든, 삶이나 실존 그 자체 든 간에 한번 식어버리면 다시 오르기 힘듭니다. 새롭게 바뀌지 않는 이상 말입니다. 저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비유하자면 촛불입니다. 어쩌면 그 불씨는 바람을 살살 불어주면 다시 타오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훅'하고 누군가 날숨을 질러버린 것이 희미한 불씨마저 꺼뜨립니다. 회색 연기가 피어오를 때쯤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시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가까운 친구는 내게 3일 정도 여행을 다녀오라고 조언합니다. 해외여행이 정 부담스러우면 국내 어디든 떠나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마음이 가라앉을 것이라고요. 내 생각에 내 마음은 이미 무겁게 가라앉아 있습니다. 하지만 밖에서 볼 때는 더 가라앉혀야 할 마음이 남아 보이나 봅니다. 그래서 나는 무진으로 잠깐 떠나기로 합니다. 그곳에서 새로운 용기라든가 계획이 나오리라는 기대는 없습니다. 다만 떠나는 이유는, 일상과 떨어진 도시에 나 자신을 두고 어떤 위로를 얻기 위함입니다. 참고로 소설 <무진기행>에 나오는 무진은 가상의 장소입니다. 그렇다면 나의 무진은 어디인가. 그 대답에서 떠나는 길이 시작될 참입니다.
2019년 6월과 7월 사이
무진으로 가는 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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