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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성용 Jul 08. 2019

무진을 찾아서

안동, 경주를 지나 <무진기행> 김승옥 작가를 만나기까지



    내가 좀 나이가 든 뒤로 무진에 간 것은 몇 차례 되지 않았지만 그 몇 차례 되지 않은 무진행이 그러나 그때마다 내게는 서울에서의 실패로부터 도망해야 할 때거나 하여튼 무언가 새 출발이 필요할 때였었다. 새 출발이 필요할 때 무진으로 간다는 그것은 우연이 결코 아니었고 그렇다고 무진에 가면 내게 새로운 용기라든가 새로운 계획이 술술 나오기 때문도 아니었었다. 오히려 무진에서의 나는 항상 처박혀 있는 상태였었다. 더러운 옷차림과 누우런 얼굴로 나는 항상 골방 안에서 뒹굴었다. 내가 깨어 있을 때에는 수없이 많은 시간의 대열이 멍하니 서 있는 나를 비웃으며 흘러가고 있었고, 내가 잠들어 있을 때는 긴 긴 악몽들이 거꾸러져 있는 나에게 혹독한 채찍질을 하였었다.


- 김승옥 <무진기행> 中




1

나는 무진으로 떠납니다


오늘은 우울한 편지를 쓰게 됐습니다. 미안한 마음입니다.

나는 무진으로 떠납니다. 주말에는 비가 내린다고 합니다. 그러니 다음 날 비가 개는 대로 떠납니다. 무엇으로부터 떠나는지 묻는다면 그리 할 말은 많지 않습니다. 나조차도 무엇에서 떠나는 것 인지, 아니 내가 떠나려는 것이 맞는지도 희미한 상태입니다. 다만 머릿속에 처음 떠오르는 것은 '식었다'라는 단어입니다. 식었다. 솔직히 그 말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저로 하여금 미지근한 국물 요리의 온도라든지, 침묵하는 연인의 사이를 떠오르게 합니다. 분명 유쾌한 맛과 표정은 아닙니다. 게다가 단어가 과거형인 점이 걸립니다. 식었다는 건 이전에는 따뜻했거나 활활 타올랐었다는 사실을 기저에 깔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식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긴 시간과 강렬한 사건이 필요합니다. 그 과정을 멀리서 보면 아날로그적이고, 또 가까이서 볼 때면 디지털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마음이 식는다는 건 계단을 타고 내려가는 모양입니다. 그것이 사람이든, 환경이든, 삶이나 실존 그 자체 든 간에 한번 식어버리면 다시 오르기 힘듭니다. 새롭게 바뀌지 않는 이상 말입니다. 저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비유하자면 촛불입니다. 어쩌면 그 불씨는 바람을 살살 불어주면 다시 타오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훅'하고 누군가 날숨을 질러버린 것이 희미한 불씨마저 꺼뜨립니다. 회색 연기가 피어오를 때쯤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시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가까운 친구는 내게 3일 정도 여행을 다녀오라고 조언합니다. 해외여행이 정 부담스러우면 국내 어디든 떠나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마음이 가라앉을 것이라고요. 내 생각에 내 마음은 이미 무겁게 가라앉아 있습니다. 하지만 밖에서 볼 때는 더 가라앉혀야 할 마음이 남아 보이나 봅니다. 그래서 나는 무진으로 잠깐 떠나기로 합니다. 그곳에서 새로운 용기라든가 계획이 나오리라는 기대는 없습니다. 다만 떠나는 이유는, 일상과 떨어진 도시에 나 자신을 두고 어떤 위로를 얻기 위함입니다. 참고로 소설 <무진기행>에 나오는 무진은 가상의 장소입니다. 그렇다면 나의 무진은 어디인가. 그 대답에서 떠나는 길이 시작될 참입니다.


2019년 6월과 7월 사이
무진으로 가는 길에서



2

안동과 경주를 걷다



늦은 저녁, 서울로 가는 버스가 아닌 안동행 버스를 탔다. 나는 버스 티켓을 사기 위해 10분 이상을 망설여야 했다. 결국 안동행 표를 끊은 이유는 출발시간이 가장 가까이 있었기 때문이다. 버스 속에서 나는 짧은 휴가를 떠나겠노라고 회사에 알렸다. 그리고 한참 동안이나 창 밖 풍경을 바라보았다. '이래도 괜찮은 건가.' 하는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이 여행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알 수 없었다. 그날 밤, 맥주를 한 캔 마시고 금방 잠에 들었다.


안동에서 나는 계속 걸었다. 장마가 막 끝났기에 햇볕이 제법 뜨거웠는데도 걸었다. 걷고 있는 상태가 익숙해져서 서있는 것이 오히려 어색했다. 안동에는 서울에선 볼 수 없는 들풀곳곳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나는 정처 없이 걷는 동안 무진기행 오디오북을 들었다. 무진기행은 3일간 무진에서 경험한 일을 다룬 소설이다. 나는 '당신은 무진을 떠나고 있습니다.'라는 부분 들려올 때마다 처음으로 되돌려 들었다. 그러면 주인공이 무진으로 가는 장면부터 다시 시작되었다. 오디오북을 녹음한 가수 장기하의 목소리가 마음에 들었다. 언젠가 내가 책을 내고 오디오북을 제작하게 된다면 이 사람에게 녹음을 맡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물릴 때까지 몇 번을 반복해서 들었다.


안동소주전통음식 박물관을 찾았다. 하회마을까지는 거리가 멀어서였다. 나는 소주를 그리 잘 마시지 못한다. 안동소주는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그 향과 장인의 전통과 역사만은 인정하는 편이다. 전시관에는 아무도 없었고 불이 꺼져 있었다. 나는 관리인을 찾아 전시관을 돌아보고 싶다고 말했다. 불을 켜고 보니 그곳에는 안동소주를 증류하는 법이나 조선시대 술상의 모형이 전시되어 있었다. 전시관 끝에는 간단히 시음을 할 수 있었다. 시음을 해보니 첫 향은 위스키와 같고 중간에는 곡류 특유의 이취와 꿉꿉함이 느껴졌으며 끝 맛은 화한 것이 깔끔하고 개운했다. 나는 소주 한잔으로 약간의 취기를 느꼈다. 더운 날 너무 많이 걸었던 탓이다.


이윽고 나는 경주에 있었다. 터미널에서 숙소까지 가는 길에 수많은 경주 빵집을 지나쳤다. 상가 곳곳에 사원이라든지 능이라든지 유적들이 섞여있었다. 이를테면 오토바이 수리점과 주유소 사이로 경주노서리 고분군이 드러나 있었다. 이런 위화감이 이 도시에서는 당연시되는 것만 같았다.


경주의 능과 능 사이를 걸었다. 어스름한 저녁이었다. 노을이 자줏빛으로 물들어 있어서 모든 사람들이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고층 건물 하나 없이 쭉 펼쳐져 있는 평원에서 하늘을 바라본 적이 있는가. 거대한 기운이 나를 나를 짓누르는 기분이다. 마치 커다란 불상을 바라보듯 아찔한 압도감이 느껴졌다. 그렇게 노을과 어우러진 첨성대, 동궁과 월지를 구경했다. 나는 조상의 혼이 담긴 건축물의 아름다움보다도 하늘에서 더 많은 것을 느꼈다. 어찌 됐든 인간이 만드는 모든 사물은 자연을 닮으려는 시도기 때문이다.


밤이 되니 허전했다. 저녁 8시의 거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허전한 마음을 자꾸만 채우려고 했다. 배가 부른데도 계속해서 위 속에 들이부었다. 토가 나올 정도였지만 꾸역꾸역 삼켰다. 그렇게라도 허한 마음을 달래고 싶었다. 잠은 쉽게 오지 않았다.



3

<무진기행> 김승옥 선생님을 만나다



왕과 여왕이 잠든 능을 뒤로하고 경주를 떠났다. 잠을 설쳤는데도 버스에서 잠이 오질 않았다. 그 이유가 새로운 지역으로 간다는 설렘인지, 여행이 끝나간다는 아쉬움인지 알 수 없었다. 이 곳에서도 아무런 사건 없이 지나가버린다면 나는 엄마의 손을 분실한 아이의 심정이 될 것만 같았다. 그것이 무진이든 뭐든 간에 수확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는 소중한 시간을 허비해 버린 것이다, 와 같은 망상이 자꾸만 나 자신을 괴롭혔다. 나는 잠에 들지 않으려고 애쓰다가 결국 잠깐 눈을 붙였다. 일어나 보니 도착해 있었다. 순천 터미널이었다.


나는 순천 문학관을 가기 위해 마을버스를 탔다. 버스는 나를 외지고 사람이 없는 곳으로 데려갔다. '신석'이라는 정류장에는 나와 할머니 한 분이 내렸다. 나는 허허벌판 한가운데 떨어졌다. 지도에서 찾아보니 조금 걸어야 했다. 나는 물이 찰랑찰랑한 논을 사이에 두고 햇볕 아래를 걸었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바람에 살랑살랑 부딪히는 풀소리만 들렸다. 이곳의 풍경은 너무나 여유로워서 서울에서 겪던 바쁨이 우습게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허'하고 코웃음이 나왔다. 게다가 이렇게 많은 나비를 마주친 것은 처음이었다. 나비는 사람을 무서워할 줄도 모르고 내 셔츠와 머리카락 위에 자꾸만 내려앉았다. 다시 한번 '허'하고 웃음이 튀어나왔다. 3일간의 여행이 모두 이 풍경을 보기 위해서였다는 마음이 들었다. 나는 왠지 모를 안심이 되었다.


순천 문학관은 소박하고도 사치스러웠다. 소박한 이유는 몇 채 안 되는 작은 전시관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고, 사치스러운 이유는 이 좋은 풍경에 둘러싸여 어떠한 속세도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순천 문학관은 '정채봉관'과 '김승옥관' 그리고 작은 책방과 관리소로 이루어져 있었다.


나는 먼저 '정채봉관'에 들렀다. 그는 마흔한 살이 되던 해 <오세암>을 지었다. 불혹의 나이에 훌륭한 아동문학을 써낸 것이다. 전시관에는 그의 노트가 있어서 조금 훔쳐볼 수 있었다. 자세히 보니 '모든 정치가는 시인이어야 한다.'는 문장이 알아보기 힘든 필기체로 적혀있었다. '동화를 쓰면서 촛불처럼 살려고 했습니다.(...) 촛불은 꺼진 뒤에야 꺼지지 않는 촛불이 됩니다'라는 정호승 시인의 <정채봉>이라는 시도 있었다.


그다음엔 '김승옥관'으로 향했다. 얼핏 어느 할아버지가 전시관 옆 문으로 천천히 들어가는 장면을 보았다. 나는 그분이 <무진기행>을 쓴 김승옥 작가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나는 전시관을 쭉 둘러본 뒤에 관리인을 찾았다. 관리인 아저씨에게 13년도판 '무진기행' 책을 구매하고 물었다. "이곳에 김승옥 선생님이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네, 이곳에서 살고 계시지요." "혹시 괜찮다면 선생님께 인사드릴 수 있을까요?" 관리인 아저씨는 조금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요즘 들어 외부인을 잘 만나지 않으셔서..."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일단 한번 선생님께 여쭈어 보겠습니다." 나는 의자에 앉아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무진기행을 펼쳐 읽었다. 나는 언제부터 이토록이나 막무가내에 철면피였는가. 스스로에게 감탄하면서도 한편으론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네, 선생님. 여기 서울에서 왔다는 젊은이가 있는데요. 선생님께 인사를 드리고 싶다고요. 네네.'라는 통화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관리인 아저씨가 말했다. "운이 좋으시네요. 선생님께서도 오늘은 컨디션이 좋은 모양입니다. 함께 가서 인사드리고 오십시다."하고 기분 좋게 몸을 일으켰다.


우리는 전시관 옆 문 앞에서 선생님을 불렀다. 이윽고 김승옥 선생님은 아주 천천히 셔츠 단추를 여미면서 문을 열었다. 선생님의 거동은 조심스러웠으나 외견으론 정정해 보였다. 관리인 아저씨는 셔츠 맨 아래 단추를 함께 잠가 주었다. 선생님은 내게 손짓으로 저기서 함께 사진을 찍자고 말했다. 우리는 전시관 앞에서 다소곳한 모습으로 사진을 몇 장 찍었다. 그리고 소소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김승옥 선생님은 뇌졸중 이후로 말을 하는데에 불편함이 있었다. 신체기관의 문제라기보다는 언어의 문제였다. 그래서 그는 노트에 간단한 단어를 적으며 필담을 나누었다. 내가 "선생님, 몸은 좀 어떠세요? 괜찮으신가요?"라고 묻자 선생님은 "으응"이라고 말했다. 나는 "요즘에도 글을 쓰고 계신가요? 최근엔 그림을 그리신다고는 들었습니다."라고 물었다. 선생님은 일전에 <그림으로 보는 무진기행>이라는 화집을 출간했었다. 선생님은 노트에 '뇌졸중. 글, 말(X)'라고 적었다. 나는 인터뷰 기사를 통해 이미 알고 있노라고 말했다. 선생님은 그 인터뷰 기사를 기억하지 못하셨다. 선생님은 '서울?'이라고 적었다. 나는 "네, 서울에서 왔습니다. 고향은 강릉이고, 서울에서 일을 하면서 틈틈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선생님은 내게 등단을 했는지 물었다. "등단은 아직 못했습니다. 그 정도의 실력은 아닙니다. 다만 작게 여행 산문을 책으로 한 권을 낸 적은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러자 선생님은 손을 내미셨다. 혹시 책을 가져왔냐는 것이었다. 나는 미흡한 책이라 보여드리기 민망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내가 들고 있는 <무진기행>을 펼쳤다. 사인을 해주시려나 했는데 맨 뒷장을 펼쳐 꾹꾹 누르더니 전화번호와 주소, 이메일을 적었다. 이 주소로 책을 보내라는 말씀이었다. 나는 그러겠다고 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한편으로는 엉망인 나의 책을 보낸다는 것이 부끄러워졌다. 나는 부끄러운 마음이 들지 않도록 어서 더 좋은 책을 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 뒤로도 소소한 이야기와 근황을 나누었다.


선생님께서는 조금 피로하셨는지 몸을 일으키셨다. 나는 다시 한번 감사의 악수를 청하고는 연신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그의 뒷모습을 천천히 응시했다. 선생님이 방으로 들어가자, 관리인 아저씨는 다시 한번 내게 운이 좋다고 말했다. "요새 선생님이 저녁에 작업을 많이 하세요. 그래서 낮에는 보통 주무시기 때문에 한동안 외부인을 만나시지 않으셨죠. 게다가 최근까지는 몸이 통 좋질 않으셨어요. 오늘은 컨디션이 정말 좋으신 겁니다." 나는 관리인 아저씨에게도 책을 보내주기로 하고 연락처를 받았다. <무진기행>과 <서울, 1964년 겨울>은 나의 청소년기와 청년기에 큰 감응을 준 소설로, 내가 구사하는 문체와 언어 세계에 어느 정도 일조한 바가 있다. 그렇기에 작품으로만 접했던 당대의 작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했다.  기쁨을 간직하기 위해 - 혹시 한 톨의 기억이라도 사라질까 싶어서 - 떠나기 전에 이 순간을 기록했다. 순천만에서 불어오는 소금기를 머금은 바람이 칠월의 햇빛으로 달구어진 몸을 식혀주고 있었다. 나는 이곳에서 매일 바람을 맞고 싶다고 생각했다.



4

당신은 무진을 떠나고 있습니다.



나는 순천을 떠나고 있다. 순천을 떠나는 차에 탔을 땐 기분이 울적해졌다. 혹시나 내 마음이 급했던 것은 아닌지, 조금 더 머물러도 괜찮았던 것은 아닌지 후회가 되었다. 덜컹거리는 버스 창 밖으로 '당신은 무진을 떠나고 있습니다.'라는 보이지 않는 표지판이 나를 배웅했다. 아니, 자꾸만 반복해서 들었던 장기하의 목소리가 '당신은 무진을 떠나고 있습니다.'라고 담담하게 이야기해주고 있었다. 이곳을 떠나면 나는 다시 서울로 가야 한다. 서울에 가면 다시금 바쁜 나날을 보내고, 다양한 문제를 신경 쓰고, 씁쓸한 자괴감과 나약함을 맛봐야 할 것이다. 타인의 시선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또다시 살피며 살아야 할 것이다. 아니, 그런 걸 다 떠나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복잡한 것들을 신경 쓰며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내 머릿속에 자꾸만 떠올려야 할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 더 크게 울적해졌다. 나는 멀미 기운이 나는 것을 참고 눈을 감았다.


자, 이것으로 된 것인가. 나는 이번 여행을 통째로 곱씹어 봐야 했다. 내가 찾던 무진은 어디인가. 안동인가, 경주인가, 순천인가. 아니면 김승옥 선생인가. 아니다. 그것들은 내가 찾던 것과 다르다. 사실 내가 찾는 무진이란 특정한 지역이나 공간이나 사람이 아니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는 내가 사랑했었던 나의 모습을 되찾고 싶었던 것이었다. 그것은 어느 지역에서 발현된다기보다는 여행하는 마음가짐에서 비롯되었다. 어딘가를 여행하는 나의 모습은 내가 그리워하는 나다. 무언가를 무모하게 쫓고 쓸쓸하더라도 혼자이길 좋아하고 별 것 아닌 풍경이나 일에 감탄하거나 쉽게 벅차오르는 감정을 느끼는 모습 또한 그렇다. 내가 잃어버리고 살았던 그 모습이 내가 그토록 그리워하고 끌어안고 싶고 위로받고자 하는 무진이 아니었는가. 내가 찾으려는 무진은 여행 내내 나와 함께하고 있었다. 아니, 그것은 언제나 나와 함께 하고 있었으므로 찾고자 떠날 필요도 없었다. 나는 나 자신을 악력으로 누르고 있었을 뿐이며, 그것이 서울을 떠날 때면 슬쩍 풀렸을 뿐이었다.


어쩌면 나는 나 자신에게 혹독하게 몰아치고 엄격한 잣대를 내밀었듯, 타인에게도 은근히 요구해왔던 것은 아닐까. 나는 언제부턴가 이성과 합리성, 성장과 개선은 누구에게나 좋은 약이라고 단정 지었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인간이 만든 최고의 발명품이라고, 인간에게 주어진 최후의 과업이자 선물이라고 믿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바보라고 여겼을지도 모른다. 공감능력이 높은 멍청이보다는 편협한 원칙주의자가가 올바르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전파했었을지도 모른다. 이 불완전한 세상을 완전한 것으로 재단할 수 있으며, 그럼으로써 나 또한 완벽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터무니없는 생각을 진실로 받아들였을지도 모른다.


병신 같기는. 내가 걸은 안동의 거리와 경주의 능과 순천만의 바람은 나를 비웃었다. 병신 같기는. 4일간의 시간과 이어져있는 거대한 광음(光陰)의 대열이 내게 말했다. 병신 같기는. <무진기행>을 읊던 장기하의 목소리가 내게 속삭였다. 병신 같기는. 위도 아래도, 좌우도 없는 세계에서 나침반을 들이대는 내게 말했다. 병신 같기는. 그런 줄도 모르고 나는 혼자서 그리도 떳떳했던 건가. 그런 생각이 들자 심한 부끄러움이 들었다.


저 멀리서 강변 터미널이 보였다. 이로서 나의 여행은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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