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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성용 Jul 30. 2019

오늘은 바다가 보고 싶다


나는 강원도 강릉에 살았다. 바다가 가까운 도시다. 학교에서 신호등을 몇 번 건너면 바다를 볼 수 있었다. 나는 사람이 없는 안목을 특별히 좋아했다. 안목 해변에는 내가 지정석으로 삼은 벤치가 있었다. 새로 생긴 편의점 맞은편이었다. 나는 성인이 돼서도 종종 안목을 찾았다. 그 벤치에 앉아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들으면서 하루를 보내곤 했다.


바다는 훌륭한 영상이다. 한 차례도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법이 없다. 드라마보다 변화무쌍하다. 다큐멘터리보다 생생하다. 코 끝에서 찝찔한 바다 냄새가 나고 고운 물보라가 얼굴에 날린다. 파도는 나를 향해 달려들고 미끄러지기를 끝없이 반복한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괜한 서글픔이 느껴졌다. 파도소리가 질릴 때면, 이어폰을 귀에 꽂고 음악을 들었다. 내가 트는 음악에 따라 바다는 좋은 영화가 됐다. 어떤 장르든, 어느 가수의 노래든 잘 어울렸다.


몸이 차갑게 식을 때면 해변을 따라 걸었다. 그때마다 나는 혹시 사연이 있는 여자와 마주치지 않을까 기대하곤 했다. 검은색 코트를 입고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발자국을 찍는 여자. 그러다 문득 먼 수평선을 그리운 눈길로 주시하는 여자. 만약 그런 여자를 만난다면 나는 인사 한 마디 건네지 못하겠지만, 왠지 눈만 마주치더라도 서로의 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건 아마도, 우리를 둘러싼 파도소리가 매질이 되어 충동이나 감정 따위가 파동으로 전해지기 때문일 것이다.


바다는 그런 힘을 가진 공간이다. 친구가 말했다. 바다 앞에 살면 좋을 것 같지만, 결국 우울증에 걸리고 만다고. 바다의 푸른색과 출렁이는 파도는 삶에 대한 회의와 인간의 유한함을 떠올리게 한다고. 나는 바다 앞에서 무엇을 생각했는지를 다시 기억했다. 지금에 비하면 날 것의 고민들이었다. 바다는 우리의 본질적인 면을 바라보게 만드는 허무주의와 비슷한 힘이 있다. 파도의 무한한 반복성과 역동성, 바다의 헤아릴 수 없는 크기와 깊이에 대한 경외감은 우리가 아주 작은 존재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이 복잡하거나 외롭거나 자신의 삶이 부정당한다고 느낄 때마다, 본능적으로 바다를 찾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지금 서울에 있다. 바다를 보기 힘든 도시다. 오늘은 바다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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