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쌓아나갈 것인가
얼마 전 영화관 앱으로 <드라이브 마이 카>를 예매하다가, 작년엔 영화를 몇 개 보았는지 궁금해져서 내 영화 관람 기록들을 살펴보았다. 확실히 2020년에는 영화관에 간 횟수가 확 줄었고, 2021년에는 그래도 조금을 늘었다. 요즈음에는 정말 집중해서 봐야 하거나 꼭 스크린에서 봐야만 하는 영화가 아니면 영화관에 잘 가지 않는 것 같다. 개봉하는 영화들도 얼마 지나지 않아 OTT에 올라오거나 TV를 켜면 얼마를 내고 보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것을 좋아한다. 사실 특별하고 재미있는 취미생활도 없기 때문에 ‘영화를 보는 것’이 어느 새 나의 취미생활이 되었다. 코로나 이전에는 영화관에 꽤 자주 갔다. 나는 자주 갔다고 생각하는데, 영화관 앱에서 매년 발표하는 기록들을 보면 정말 엄청난 영화광들이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누군가와 경쟁하는 것도 아니지만 주눅이 든다. 그런 분들과 비교하면 나는 영화관에 적당히 간다고 할 수 있다.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면 좋은 이유는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변에 그 어떤 것도 신경 쓰지 않고 어둠 속에서 오롯이 영화를 즐길 수 있다. 물론, 가끔 유별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 방해를 받기도 하지만 대체로 그렇다.
처음에 간 영화관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가장 충격적이었던 영화관은 기억난다. 63빌딩에 있는 아이맥스 영화관이다. 지금은 없어졌다고 하지만 비교적 어린 나이에 우주 다큐멘터리 같은 영화를 그곳에서 봤던 나는 그 영화의 장면들이 아직도 생각난다. 그 큰 화면에 펼쳐진 우주가 내게 다가오는 것 같아서 얼마나 겁을 먹었던지, 탈출하고 싶은 기분까지 들었었다. 요즈음에는 아이맥스 영화관이 곳곳에 있지만 그 때 당시에는 그곳밖에 없어서 부모님도 새로운 경험을 해보고 싶으셔서 날 데려간 것이 아닐까 싶다.
다른 나라의 영화관에 가본 적도 있다. 맨체스터에 있는 영화관이었는데, 휘황찬란한 간판도 없어서 여기가 영화관인가 싶을 정도로 작은 영화관이었다. 별일 없던 주말에 사실 난 그렇게 내키지는 않았지만 친구들이 영화를 보자고 했다. 상영작도 많이 없었는데, 친구가 그 중에서도 <보이후드>를 골랐고, 나는 어느 새 처음 가보는 영화관에 앉아 있었다. 내키지 않았던 이유를 생각해보면, 잠깐이나마 타지에서 지내면서 계속 영어로 말하고 들었는데, 또 약 3시간 동안 화면에 나오는 영어에 집중해야한다는 것이 부담스러웠던 것 같다. 게다가 그 때는 <보이후드>가 무슨 내용인지도 몰랐고, 포스터에는 웬 어린 소년만 나와 있었으니 영화 자체에 끌리지도 않았다. 지금은 그 친구가 다 같이 영화보자고 하지 않았으면 너무 아쉬웠겠다 싶을 정도로 그 순간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보이후드>는 주인공인 6살 메이슨이 18살이 될 때까지 12년을 담은 영화로, 그가 커가는 동안 겪는 일들, 가족과 주변인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담았다. 감독인 리처드 링클레이터는 12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같은 배우들로 매년 일정하게 촬영을 해서 영화를 완성했다. 12년의 인생을 약 3시간에 담은 <보이후드>는 다큐멘터리와 영화의 경계를 오묘하게 오가며 영화에 나의 삶도 투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내가 이 영화를 좋다고 생각한 건 물론 담고 있는 내용도 있겠지만, 12년 동안 뭔가를 꾸준하게 쌓아올렸다는 것 때문일 것이다. 나는 이런 것에 희열을 느낀다. 매일, 매주, 매달, 매년, 일정 시간 동안 어떤 것에 투자해서 나중에 결과물을 보여주는 것. 내가 에세이를 일정하게 쓰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도 이렇게 쌓아가는 것의 소중함을 알고, 어찌됐든 나올 그 결과물의 의미를 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올해는 무엇을 쌓을지 고민이 된다. 나 자신이 항상 시작은 거창하게 하지만 끝 마무리가 안되는 사람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도 올해도 분명히 무언가를 시작하고 때때로 또는 자주 쌓아나갈 것이라고 믿는다. 그 결과물을 보여주기까지 12개월이 걸릴지라도, 12년이 걸릴지라도, 나중에 돌아보면 무언가 쌓여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