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테이트 미술관 특별전
어제는 두 달 정도 전에 '얼리버드'로 예매한 <빛: 영국 테이트 미술관 특별전>을 보러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으로 향했다. 미술관은 7호선 하계역 근처에 있는데, 생각보다 집에서 멀어서 가는 내내 졸면서 갔다. 이 전시를 보려고 마음을 먹은 이유는 사실 이 전시가 영국 테이트 미술관에서 전시했던 것들을 전시하는 특별전이기 때문이다. 해외여행이라는 것을 안 간지 꽤 오래된 지금, 영국에서 여행하던 때가 그립고, 미술관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 전시를 보러 가는 것이 테이트 미술관의 향기를 맡으러 가는 것과 비슷했다.
이 전시는 최근 갔던 전시와는 다르게 내부에서 사진 촬영이 불가하다고 했다. 요즈음에 갔던 전시들에서는 대부분 사진 촬영이 가능해서 전시를 보러 간다기보다 사진을 찍으러 오는 사람도 많은 것 같았고, 사실 나도 그중에 하나였다. 멋진 작품이 있으면 나도 모르게 핸드폰부터 들어버리는 그런 감상 방법이 익숙해진 때에 사진 촬영 금지는 생각보다 내 전시 관람 방식에 영향을 주었다.
좋아 보이는 작품을 보고도 핸드폰을 들지 못하니 오히려 더욱 열심히 보게 되었다. 왜 이 그림이, 이 설치 미술이 좋아 보이는지, 그때의 느낌을 최대한 오래 기억하고자 자세히 살펴보고 깊게 생각했다. 감명 깊게 본 작가의 그림은 작품명이나 작가명을 메모장에 적기도 하고, 왜 마음에 드는지 함께 간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이렇게 전시를 관람하니까 작가의 이름이나 작품명이 온전히 기억에 남지는 않지만 좋았던 부분들은 꽤나 생생하게 간직할 수 있었다.
좋아 보였던 그림들은 다음과 같다.
The Destruction of Pompeii and Herculaneum
The British Channel Seen from the Dorsetshire Cliffs
The Path to the Old Ferry at By
전시를 보면서 여러 설명들이 있었는데, 그중에서 기억에 남는 문구는 아래와 같다.
"색은 반사된 빛이 있기에 인지될 수 있으며, 빛의 파장이 색깔을 결정한다."
대부분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말이지만, 전시에서 본 설치 미술을 통해 실제로 경험하니 또 새롭게 다가왔다. 무색으로 보이던 물체가 빛을 받으니 다른 색으로 보이고, 또 다른 빛을 받아 다른 색으로 변하는 것을 눈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이런 경험을 오랜만에 하고 나니 눈으로 보는 색이 정말 그 색일지, 내 눈이 보고 싶은 색을 보고 있는 건 아닌지 싶었다. 예전에도 엄청난 논란이 있었던 어떤 드레스 색의 조합 논란을 생각하면 우리도 모두 경험해 본 괴리감인 것 같다.
어떤 빛을 비추느냐에 색이 달라지듯이 우리 삶도 어떤 마음으로 보는지에 따라 그 색이 달라지지 않을까 싶다. 너무나 힘들었던 과거도 기억들도 시간이 지나면 미화되어서 보이는 때도 있고, 힘들었던 일이 지나면 오히려 그 일들이 나를 크게 해 준 밑거름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비단 삶의 경험이나 기억들뿐만 아니라 사람도 그렇다. 어떤 마음으로 그 사람을 보는지에 따라 호감이 가기도 하고, 멀어지고 싶기도 하다. 오늘 왠지 달라 보이는 그 사람을 볼 때도 그 사람이 달라졌다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오늘, 지금 이 순간의 내 마음이 달라졌을 수도 있다.
눈(目)에서 시작되는 편견(偏見), 선입견(先入見)처럼, 어쩌면 내가 보는 세상을 바꾸려면 나부터 달라져야 할지도 모른다. 그 따뜻함에 힘입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3월, 올해를 나는 어떻게 볼지, 어떤 마음으로 볼지 나중에 떠올리면 보기 좋았던 해라고 생각할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