왠지 모르게 우울한 3월
오늘은 아침부터 사전투표를 하고 동네 뒷산에 다녀왔다. 바쁜 스케줄이었지만 모두 해내고 나면 꽤나 뿌듯하다. 동네 뒷산은 겨우 ‘뒷산’으로 취급할만한 산은 아니다. 관악산, 아차산, 북한산 등 서울에 있는 굴곡 있는 산들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아무리 봐도 겨우 ‘뒷산’은 아니다. 오르막 내리막이 꽤나 있고, 코스도 생각보다 길어서 평소 걷는 속도로 걸으면 왕복 두 시간은 걸린다. 아침을 먹고 열 시 정도에 출발하면 이제 점심 먹을 때쯤 딱 맞게 내려올 수 있다.
뒷산에 가끔 가고는 했지만 이렇게 시간이 날 때마다, 주말마다 올라가게 된 건 얼마 안 되었다. 겨우내 웅크리고 있던 몸을 이제 좀 풀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본능적으로 들었는지 3월이 다가오니 산에 자주 가는 아버지를 아주 자연스럽게 따라다니게 된 것이다. 가족 모두가 함께 갈 때도 있고 아버지와 둘이 갈 때도 있는데 같이 가는 사람에 따라 소요 시간도 대화 주제도 조금 달라지지만 나중에 돌아보면 분명 소중한 시간일 것 같다.
이제 3월이고 하니 산에 가면 봄기운을 조금 느낄 수 있겠다 싶었는데, 봄기운은 차가 좀 밀려 아직 오지 않았는지 여전히 그곳은 겨울이었다. 떨어진 낙엽들이 바스락 거리고, 새싹이 난 나무들도 없었다. 봄을 느끼지 못해 아쉬운 마음도 들었지만, 동시에 안도감도 들었다. 나는 사실 봄을 조금 무서워하기 때문이다.
한국인은 매해를 겨울로 시작한다. 그것도 아주 추운. 그리고 우리는 연초에 1년 목표를 생각한다. 올해는 살을 빼야지, 올해는 자격증을 따야지, 올해는 영어 공부를 해야지. 연초에는 회사에서도 바쁘다. 연간 플랜에 분기 플랜에 연말 리포트도 만들어야 하고, 연초에 제품을 발표하는 회사들도 많다. 그렇게 정신없이 1월, 2월을 보내고 나면 갑자기 어디선가 따스한 바람이 불어온다. 그럼 이제 봄이라는 뜻이다. 뭐했다고 벌써 3월이지? 1월에 세운 목표들은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싶다. 2개월이나 지났는데 나는 2021년의 나와 다를 바가 없다. 올해는 꼭 달라지고자 했는데, 달라지겠다고 했는데 3월의 나는 여전하다. 그런 불안감이 갑작스럽게 나를 잠식하면 실낱같은 의지도 사라지고 올해도 그냥 이렇게 가나보다 라는 생각이 지배해버린다.
그래서 나는 3월이 무서웠다. 3월에 왠지 모르게 우울한 것도 내가 기대했던 3월의 내 모습과 괴리감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나이가 들수록 이게 심해져서 2020년의 3월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할 정도로 겨우 걸어 다녔다. 걷는 게 체력적으로 힘들다기보다 세상의 모든 짐을 내 등에 얹고 걸어 다니는 기분이었다. 내가 하는 일이 모두 잘못될 것 같아서 부적처럼 같은 신발을 한 달 내내 신고 다녔고, 링거처럼 같은 노래만 한 달 동안 들었다. 그렇게 3월이 지나고 4월이 오자 신기하게도 서서히 괜찮아졌다. 3월에 하고 있었던 프로젝트가 끝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나니 어쨌든 조금 나아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3월에 겪은 것이 우울증에 가까운 것 같다. 이 글을 쓰면서 ‘3월 우울증’을 검색해봤는데, 3월에 실제로 우울증을 겪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보고 좀 놀랐다. 입학, 취업, 승진, 이직 등 변화가 시작되는 달이어서 불안과 스트레스 등이 함께 오고, 기온과 일조량의 변화가 호르몬 불균형을 유발해서 기분 변화도 심해진다는 것이다. 나만 겪었던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위로도 받았지만 세상에 이유도 모르고 나처럼 이런 기분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아 걱정도 됐다.
원인도 몰랐고 무슨 마음이었는지 지금도 정의 내리기 어렵지만, 내 2020년 3월은 그렇게 갔다. 그렇게 1년이 가고, 작년 3월은 2020년같이 보내고 싶지 않아서 무언가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매일매일 글을 썼다. 반드시 해야 할 일이 매일 있고, 하다 보니 그 어떤 일보다 이 일을 하는 시간이 중요해져서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무엇보다 정말 매일 같은 일을 꾸준히 해내니 성취감도 생겼다.
올해 3월도 갑자기 그런 기분이 들까 봐 바쁘게 움직여 보려고 한다. 산에도 가고, 글도 매일은 아니지만 일주일에 3일은 각 잡고 앉아서 쓴다. 무엇이든 해보고, 가보고, 행동의 크기와 반경을 조금씩 넓혀 가려고 한다. 이렇게 하다 보면, 살다 보면, 3월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도 사라지지 않을까 싶다. 아니, 사라지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