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체

레터링 수업을 듣고

by 조세핀


오랫동안 짝사랑해 온 것이 있다면 바로 '디자인'이다. '디자인'... 단어만 들으면 너무나 포괄적이어서 도대체 어떤 디자인?이라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나는 디자인에는 통용되는 하나의 진리 같은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그 진리를 좋아한다. 길거리를 다니거나, 전시회를 가거나, 어떤 제품을 볼 때, 왠지 마음에 들거나 마음이 편해지거나 좋아 보이는 것들이 있다. 그런 것들에는 어떤 원리와 규칙들이 존재하는데 (아직까지도) 명확하게 알 수 없지만 그것들이 좋다.


이런 짝사랑이 시작된 것은 대학교에서 디자인 수업을 들으면서였을 것이다. 잠깐 가졌던 PD라는 꿈 때문에 영상학과 수업까지 듣게 되었는데, 시나리오 수업을 들으러 갔으나, 내가 마주한 것은 원리와 규칙을 가진 디자인 수업이었다. 흥미를 가지고 수강 신청을 하면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영어영문학과 학생이 영어회화 1을 듣는 이유가 뭘까? 점수를 받을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듣는 것이다. 대학생 때는 실리주의가 좀 부족했었던지,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디자인 수업을 신청했다.


다행히 기초 수업이었다. 대부분의 시간을 원과 선을 그리면서 보냈다. (컴퓨터로) 그렇지만 나는 무엇이든지 열심히 하는 편이다. 그냥 선을 그려오는 과제였지만 분명히 좋아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타고나는 것일까? 저런 감각과 표현은?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공부했기에 저게 좋아 보일까? (물론 교수님께서 설명해주셨으나, 바로 응용하는 것은 쉽지 않다.) 마지막 과제로 아마 잡지의 한 페이지를 디자인했어야 할 것인데, 나는 아직 한참이나 모자란 것 같았다.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자 안 되겠다 싶어서 그날부터 도서관에 가서 외국 디자인 잡지를 모두 가져다가 읽었다. 왜 이 레이아웃이 괜찮지? 이 서체는 뭘까? 왜 이 폰트는 이 크기로 사용되었는가? 별의별 고민을 하다가 여러 가지 책들도 찾아보기 시작했다. '안그라픽스'에서 나온 책들을 주로 탐독했는데, 도서관에 가서 '디자인', '그리드', '타이포그래피'로 검색해서 나오는 책들은 대부분 본 것 같다. 그때는 핀터레스트도 활성화되지 않았을 때인데, 수많은 디자인 포트폴리오 사이트를 돌아다니면서 뒤처진 이 감각을 깨워보고자 했다. (가지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중에서도 서체 디자인이 흥미로웠다. 글꼴들이 주는 느낌이 모두 다르다는 것이 놀라웠다. 분명히 같은 폰트 사이즈로 글을 썼는데, 어떤 글자는 크기가 커 보이고 어떤 글자는 작아 보이고, 매일 쓰는 서체에도 진리가 숨어있었다. 글자 하나하나를 디자인하는 타이포그래피 디자이너에 대해서 알게 된 후로는 곳곳에 보이는 서체들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특징을 살펴보고, 그 특징들이 주는 느낌이나 사용되는 곳에 대해서도 신경 쓰게 되었다.


한 학기 동안 공부해서 될 일인지 모르겠을 것들을 공부하고 살펴보면서 즐거웠다. 물론 강의 시간에는 혹독한 평가로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지만, 매주 능력도 안 되는 과제를 해내가느라 힘들었지만, 즐거웠다. 그 이유는 다시 생각해보면 좋아 보이는 것들을 보면 행복하기 때문인 것 같다. 좋아 보이는 것들은 아름답다. 아름다운 것들을 보고 불쾌한 사람이 있을까? 아마도 없을 것이다.


시간이 꽤나 많이 흘렀지만 여전히 디자인을 좋아하고 있다. 디자인을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이 보면 코웃음 칠 수도 있지만, 업으로 삼지 않아서, 보기만 하는 사람이라서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틈틈이 생각한다. 최근에는 서체에 관심이 다시 생겨서 '레터링 디자인' 수업을 듣고 있다. 외부 클래스 수업이지만 그곳에도 디자인학과 학생들이 몇 명 있어서 이 어르신이 듣기에는 실력이 한참이나 부족하지만 뭐, 단순한 이유다. 좋아하니까 한 번 들어 보는 것이다. 좋아하는 일을 만들어 보는 것이다.



공부했던 키워드

솔 바스

폴 랜드

얀 치홀트

허브 루발린

디자인

그리드

타이포그래피

레이아웃



살펴봤던 책들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 외에도 몇 권 있으나 잘 기억이 안 난다...)


이 책은 졸업하고 한참 지나 샀지만 직관적이어서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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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빌려만 보다가 돈 벌고 집에 한 권 모셔둘 수 있게 되었을 때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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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페어 등에 가서 도서관에서만 읽었던 잡지를 몇 권(할인함) 모셔왔을 때의 기쁨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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