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말

새로운 시작을 뽀송한 양말과!

by 조세핀


얼마 전 양말을 개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기계가 발달했는데, 왜 양말을 개는 기계는 아직 없을까? 양말을 개는 데는 생각보다 많은 수고가 들어간다. 본디 두 짝이 하나의 양말을 이루지만 세탁기에 들어갈 때는 각자 들어가고, 각자 나온다. 햇볕에 말릴 때도 마찬가지다. 서로 다른 짝들과 엉켜서 말라간다. 그러다가 이제 갤 때가 오면, 짝 맞추기 놀이하듯이 서로의 짝을 찾아주어야 한다. 이 단계에서는 뇌 운동도 조금 필요할 것 같다. 짝을 맞추다 보면 꼭 남는 양말이 있다. 그럼 한쪽에 마련된 양말 산에서 혹시나 짝이 있지 않을지 찾아봐 줘야 한다. 그리고 양말을 개는 것은 단순히 접는 것이 아니라 목 부분을 살짝 묶어주는 것이기 때문에 또 힘이 조금 더 들어간다. 그래서 양말을 개는 기계는 아직 만들어지지 못한 것 같다.


양말을 개는 기계까지 떠올리게 된 이유는 집에 양말이 많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부터 양말을 꽤 좋아했어서 어느새 집에 그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학교 다닐 때는 동대문으로 남대문으로 양말 쇼핑을 다녔었다. 한 켤레에 천 원 정도 하는 양말들을 고르고 골라 검은 봉지에 담아오면 만원 조금 넘는 쇼핑을 했음에도 마음이 든든하고 스트레스가 풀렸다. 요즈음에는 내 기준 양말 치고는 비싼 양말들도 많아서 여러 개를 막 사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선택 폭이 넓어지고, 사람들이 이제 양말 디자인에도 신경을 쓰는구나 싶어서 뭘 살지 고르는 순간이 즐겁다. 양말을 고르는 것을 좋아해서 퇴사하는 친구들에게 양말을 선물해주기도 했다. 양말을 선물 받고 해방된 도비가 외치는 '도비 이즈 프리'의 의미도 담고 있지만 귀여운 양말을 보면 누군가에게 선물해주고 싶은 마음과 신선하고 새로운 시작을 뽀송한 새 양말과 함께 하기를 바라는 마음도 담겨 있다.


옷 입을 때도 양말을 뭘 신을지 꽤나 고민하는 편인데, 이러한 고민의 이유는 그 외의 옷을 무난하고 평범하게 입기 때문인 것 같다. 튀는 색이나 원색, 화려한 장식이 달린 옷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가끔 포인트를 주고 싶을 때 특이한 양말을 신는다. 신발을 벗을 일도 잘 없기 때문에 나 혼자 예쁜 양말을 신었다는 것을 알고, 혼자 기분 좋아하면서 다니긴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좋아하는 양말을 신었을 때는 남모르게 하루 종일 기분이 좋고, 짜증 나는 일이 있어도 나만 알고 있는 귀여운 양말을 생각하면 즐거워진다.


아끼는 양말을 자주 신다가 구멍이라도 나면 마음이 아프기도 하다. 양말은 양말이고, 누가 봐도 소모품이고 언젠간 헤질 것이 분명하지만 옷에 구멍 난 것보다도 더 상심할 때도 있다. 옷은 비슷한 옷을 살 수도 있지만 양말은 유사한 디자인으로 나올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렇지만 다음 최애 양말도 곧 나타날 것이라고 좋게 생각하면서 마음을 달래 보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작년에 가장 잘 신고 다니고 좋아했던 양말을 지금 떠올려보려고 하면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이렇게 쉽게 잊다니!)


올해는 아직 양말을 한 켤레도 사지 않았다. 친구들을 위한 양말은 샀지만 나를 위한 양말은 아직 고민 중이다. 딱 좋아 보이는 양말이 없기도 하고, 집에 아직 쌓여 있는 양말 친구들이 올해는 자신을 신어 달라고, 헤질 때까지 많이 신어 달라고 원하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작년에 사두고 안 신었던 여름 양말을 꺼내야지, 너무 더워지기 전까지 시원하게 신고 다닐 양말을 꺼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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