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같은 시간들
1월부터 에세이를 쓰기 시작했으니 벌써 4개월째다. 글 쓰는 것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항상 여러 가지 핑계로 미뤄뒀었는데, 4개월째 한 플랫폼에 꾸준히 글을 쓰고 있다니 왠지 뿌듯하다. 4개월째 쓰다 보니 드는 고민은 글감에 대한 것이다. 글감을 이곳저곳에 적어두기는 하지만 때로는 글감을 요리조리 살펴봐도 도통 아무 문장도 떠오르지 않을 때가 있다. 글쓰기를 위한 긴장을 늦추지 않기 위해 2월부터 꾸준히 매주 한두 바닥씩 쓰는 에세이 모임에서 주는 글감들이 특히 그렇다. 내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서 '아 이걸 글감으로?' 싶은 글감들이 자꾸 던져져서 받는 나는 '별거 아니지'하고 쓰면 되는데 자꾸 주춤거리게 된다. 도전 정신이 들면서도 일주일 내내 그 글감이 문득문득 생각나면 막막하다. 그래서 내 맘대로 써도 되는 브런치에 쓰는 글감들은 내가 쓰기 쉬운, 그러니까 대부분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진다. 그 이유 때문인지 이 공간에 오면 왠지 마음이 편해지고 따스워진다.
마음이 편해지기 위해 하는 것 중에 하나가 산책이다. 워낙 새로운 곳을 탐방하는 것을 좋아해서 처음으로 어떤 동네에 가면 그 근처를 산책하듯이 둘러본다. 예를 들어 머리카락을 자르러 갔을 때도 그 동네에서 맛있는 집은 어디인지, 괜찮은 카페는 어디인지, 어떤 건물들이 주로 있는지를 살펴본다. 그 동네와 친해지는 시간을 갖는 것이기도 하고, 구석구석 다니다가 새로운 곳을 발견하면 왠지 신나기 때문이다. 우리 동네에 처음 이사 왔을 때도 이곳저곳을 걸으러 다녔다. 그러다 보니 맛있는 빵집이 많은 동네라는 것을 알았고, 맛집은 많이 없지만 오랫동안 한 자리를 지켜온 식당은 꽤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주변에 대학교가 있어서 갑작스럽게 힙한 카페가 있다는 것도 알았다.
글 쓰는 것을 포함해서 무슨 일이든 '산책하듯이'하고 싶을 때가 있다. 뛰지도 않고, 너무 빠른 걸음으로 주변의 모든 것을 스쳐 지나가지도 않으면서, 하나하나 감상하고 내 걸음의 속도와 폭을 느끼면서 말이다. 그렇지만 주어지는 일들이나 해야 할 일들은 산책하듯이 하면 안 될 것 같은 투성이다. 마구 뛰어다녀야 하고, 중요해 보이지 않는 것들은 빠르게 스쳐 지나가 목표를 향해서만 나아가야 한다. 걸어 다니는 것도 사실은 안되고, 버스를 타거나, 지하철을 타고 빠르게 가야 한다. 산책하듯이 시작한 일도 거의 메달을 목표로 하는 급의 일이 되어 버리는 요즘, 내 일상에 산책을 위한 여유 공간은 조금은 남겨두면서 살고 싶다. 팽팽하게 당긴 도착지의 피니시 라인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닌 구불구불해도 조금은 오래 걸려도 나만 아는, 기억에 남을만한 일들이 가득한 산책 같은 시간들이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