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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세핀 Jul 06. 2022

의심과 호기심

사랑이 뭐길래!


 얼마 전 영화 <헤어질 결심>을 보았다. 이제 막 개봉한 영화이니 스포일러 등을 피하기 위해 한 줄로 정리한다면 '산꼭대기에서 떨어져 죽은 것으로 보이는 시체가 발견되고, 이를 조사하는 형사 장해준(박해일)이 죽은 사람의 아내이자 피의자 송서래(탕웨이)를 만나서 일어나는 일을 그린 영화'로 정리할 수 있겠다.


 처음에는 혹시 살인자가 아닐까라는 의심에서 시작되었지만 그것이 호기심으로 나아가고, 그녀를 지켜보면서 관심까지 갖게 된다. 감독의 명성에 부응하듯이 다양한 미장센을 보는 재미가 있었고, 의미를 담은 시선들 중에서도 몇 가지 의미 있게 다가온 부분들이 있다. 먼저 '눈'이다. 주인공이 '눈'으로 본모습을 의심하고, '눈'으로 호기심을 충족해나가는 만큼 '눈'이라는 신체의 일부도 화면에서 지속적으로 주목한다.


 이외에도 영화의 주요 소재로 '안개'가 나온다. 정훈희의 노래 <안개>에 이어, 안개 낀 곳에 사는 아내를 만나러 가는 주인공까지, 화면이 뿌옇진 않지만, 모호한 느낌들이 영화 전반에 이어진다. 게다가 불면증을 겪고 있는 형사는 잠이 부족하니 항상 몽롱하고 안개 같은 시간을 보낼 것이다.

 

 안개처럼 뭐라 정의 내리기 어려운 모호한 상황도 이어진다. 형사는 미결 사건들을 벽 한쪽에 장식해 두고 음미한다. 과연 해결하고 싶어서일까? 의문이 들었다. 그는 아마도 피의자 신분으로 만난 여자에 대해 느끼는 감정 또한 무엇인가 한 마디로 정의 내리지 않고 애매하게 두고 싶었을 것 같다. 확실한 점이라도 찍으면 아내에 대한 죄책감 또한 느끼게 될 테니까. 애매함에 익숙해져 있는 그는 어쩌면 결심을 내린 사람보다 앞서 나가지는 못했을 것 같다.


 날카롭지는 않지만 오히려 세련된 화법과 화면을 갖춘 영화였던 것 같다. 화면은 세련됐으나 등장인물들이 오히려 인간적이어서 일상적이고 디테일한, 그 사람만이 가능한 대사들도 있었고, 어 저 사람? 어 이 사람? 할 정도로 역할에 젖어든 요즘 얼굴들에 웃으면서 볼 수 있기도 했었던 유머러스한 영화였다.


<헤어질 결심> 예고편


 영화를 보고 나니 의심과 호기심을 넘나드는 두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두 편의 영화가 떠올랐다. 두 영화 모두 너무나 유명한 영화이니 이 영화들에서는 의심과 호기심을 어찌 다루었는지 살펴봐도 좋을 것 같다. 먼저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현기증(Vertigo)>이다.


 이 영화를 참 좋아해서 CGV에서 히치콕 전을 할 때도 굳이 큰 화면으로 보겠다고 간 적도 있다. 이 영화는 오프닝 시퀀스부터 참 좋다. 그래픽 디자이너인 솔 바스(Saul Bass)가 만든 이 시퀀스는 아래 영상에서 볼 수 있다.


 

 이 영화는 동료를 잃고 고소공포증이 생긴 형사 퍼거슨이 친구의 부탁으로 친구의 아내인 매들린을 미행하면서 시작된다. 친구는 아내가 유령에 홀린 것 같다고 말한다. 매들린을 미행하면서 퍼거슨은 그녀가 실제로 유령에 홀려있는 듯한 상황들을 만나게 되고, 그녀를 도와주려다가 사랑에 빠지지만, 결국 그녀는 교회 종탑에서 뛰어내려 자살한다. 물론 퍼거슨은 고소공포증 때문에 올라가지 못하고 사랑하는 그녀를 구하지 못한다.


 매들린을 잃은 상처로 힘겨워하던 어느 날, 퍼거슨은 매들린과 똑같이 생긴 여인을 만나게 되는데...


 <현기증> 또한 의구심에서 시작된 둘의 관계가 호기심에 이어 끌림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마지막에 모든 진실이 밝혀지고, 퍼거슨은 고소공포증을 극복하게 되지만, 사랑하는 여인을 다시 의심하면서 완전히 그녀를 잃게 된다. '혼란', '배신감' 등으로 붕괴되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과연 보이는 것, 알고 있는 것이 전부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영화에서도 그런 의미에서 '눈'이 강조된다. 솔 바스의 오프닝 시퀀스에서부터 장면 장면들까지, 마치 보는 사람에게 '제대로 보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


 또 다른 영화로는 <원초적 본능>이 있다. 유명한 그 장면으로만 기억할 수 있겠지만, 보는 내내 어쩐지 긴장감으로 집중해서 보았던 영화다. 여기도 형사가 나오는데, 얼음 깨는 송곳에 찔려 죽은 한 남자의 시체가 발견되고, 그의 피의자로 지목된 소설가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렸다. 이 소설가는 엄청나게 아름다웠고, 그렇기에(?) 그녀를 감시하던 형사는 또 사랑에 빠지어 버리고, 그를 걱정하던 주변의 친구들도 위험에 빠뜨리게 되지만, 마지막에 형사는 그녀와 함께다. (그리고 바닥에는 얼음송곳이 있다!)


<원초적 본능> 예고편

 

 사실 <원초적 본능>은 한 번밖에 안 봤지만, 처음 봤을 때 그 긴장감은 스릴러 영화를 보면서 오랜만에 느낀 것 같았다. 한 번 더 보면 그 느낌을 덮어쓸 것 같아서 우선 지금 인상으로 남겨두려 한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데, 반대로 가까워지면 마음에서도 엄청나게 가까워지나 보다. 주시하고, 관찰하고, 미행하던 그들은 어찌 보면 의심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거리감을 유지하지 못하고 다들 무너져 내렸다. 인간의 미약한 마음과 믿고 싶은 마음, 아니겠지 싶은 마음들에 대해서 예리하게 살펴보고, 나라면? 어떨지까지 의심해 보았다.


 세 영화들을 보면 한 마디가 튀어나온다.


참, 사랑이 뭐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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