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버티게 할 동력
이르면 5시를 넘기고도 6시가 되지는 못한 시간이기도 했다. 밤으로 시작했다가 아침으로 끝나는 시간 속에서 그 아이는 계속 노래를 불렀다. 녹음 파일을 내게 보낸 다음 밝은 잠에 든다.
다소 엉성하게 짜인 후렴구에 얹힌 목소리가 거칠다. 그래도 보내는 이는 개의치 않는 것 같다. 얼마나 잘 하느냐보다 해내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오던 나는 그 아이가 첫걸음을 내딛을 때 담임이 되었다. 그 우연이 맺어준 관계로부터 계속 응원을 받고 싶은 마음이려나. 자신의 목소리가 낯설고, 노래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서툴게 느껴져서 차오르는 부끄러움이 모든 소절에 깃든 미완의 상태일지라도, 어쨌든 해낸 거니까 지지와 칭찬을 충분히 받고 싶었을 것이다. 그 아이는 내가 파일을 확인해주기를 기다렸다가 묻는다. 쌤, 어때요.
건조해서 잘 떠지지도 않는 눈에 힘을 주고 화면을 응시한 채 파일을 누른다. 음악이 다운되는 동안 블루투스 스피커를 켜 연결하다 보면 어느정도 잠이 달아난다. 그렇게 그 아이가 부르는 노래에 걸터 앉아 아침을 열면 그렇게 좋았다. 그 아이 마음 안에 가득한 불안 뿐만 아니라 나의 불안도 천천히 하늘로 올라갔다. 답장을 한다. 좋다, 정말로. 쌤, 좋은 실력은 아닐지라도 전 증명했어요.
결국 너 자신을 세우기 위함이었나. 잘 하는 것 아니지만, 아주 잘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한 발씩 나아가고 있다고. 그렇게 자신은 뱉어 놓은 말에 책임을 지려고 노력 하고 있다고, 사실 애쓰고 있다고. 나는 나란 사람으로 오늘도 이렇게 버젓이 살아서는, 모든 것을 퍼렇게 물들여 버리는 새벽 속에서 버텨 보다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그 아이는 축구를 잘 하는 편에 속했다. 초등학교, 중학교를 지나는 동안 정식으로 팀에 소속되어 훈련을 받아보라는 권유를 받길 여러 번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아주 확실하지는 않은 애매한 재능만으로 선뜻 그 길을 갈 수 있을 만큼의 넉넉한 사정이 그 아이에게 주어지지는 않았다. 지금 그 아이 즈음의 내가 붓을 놓고 돌아설 때처럼.
어설프게 들어본 잘 한다는 말은 이후에도 계속 남아 내 귓속을 맴돌았다. 내가 제대로 했으면 정말 잘 했을지도 모르는데, 그렇게 맴맴 거리는 걸 나 역시도 떨쳐낸 지 얼마 안 되었다. 그 아이 귓속에서도 맴맴, 내가 진짜 그때 축구를 했더라면, 맴맴, 계속 그 소리가 들렸을 터였다. 그럼에도, 살아야 했다. 불안하면 눈동자가 잔뜩 흔들리는 걸 감추지도 못하는 그 아이는 맴맴 소리를 자신이 좋아하는 리듬으로 지워내고, 그 리듬에 하고 싶었던 말들을 얹었다. 누군가 날 밀어 준다면, 날아갈 것 같아.
그래서 나는 오늘도 그저 버텨줘서 고마운 이에게 ‘좋다’는 말을 하며 엄지를 들어 보인다. 영영 이해가 되지 않을 말들이 내 안에 계속 쌓이지만, 그것은 그 말을 담아둔 나의 세계가 감당할 몫이다. 어느 날 풀썩 힘이 빠져 쳐진 그 아이 어깨에 붙은 먼지를 가만 있어봐, 하고 떼어낸다. 괜찮다고, 뒤에 있다고. 경로는 달라도 같은 방향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좀 더 선명해졌다. 나도, 너도 그저 각자의 방식으로 존재를 증명하고 싶을 뿐이다. 비록 가장 아껴온 방식으로 그것을 해낼 수는 없을지라도, 어쨌든 나아가고픈 마음이다.
가는 길은 달라도 서로의 존재가 작고도 확실한 안심이 되어 주길 바란다. 너는 너대로 그렇게 충분 히 자유롭게, 나는 나대로 충분히 안정되게. 그렇게 건너편에서 걷고 있는 이를 보면서 버텨내는 일이 삶을 견인해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언젠가 그 아이에 대한, 삶에 대한 이 믿음이 반전되는 날이 올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도 일단 지금은 이 믿음이 있어야 그 시간에 다다를 수 있다. 그러니, 이따 찾아올 새벽에는 너를 더 믿어 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