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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피플 Sep 26. 2024

프롤로그


소리가 지겹게 느껴진 적이 있나요? 자동차가 시끄럽게 울려대는 경적소리, 공장에서 발생하는 날카로운 기계소리, 늦은 새벽까지 멈출 줄 모르는 이웃집의 층간소음까지. 우리는 일상을 방해하는 불편한 소리를 소음으로 인지한다. 싱그러운 여름밤을 노래하는 풀벌레 소리는 어떤가요?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소리다. 그런데, 어느 날 소리에 대한 공포가 생겼다. 아름답던 풀벌레 소리가 출구가 없는 동굴에 갇힌 듯 머리를 윙윙 울렸고, 평생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시계 초침 소리가 코끼리 발걸음처럼 머리를 쿵쿵 때렸다. 심지어 집에서 부모님이 소곤소곤 대화를 하는 소리마저 칠판을 긁는 불쾌한 소음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자연의 소리는 물론이고 일상의 소리까지 모두 소음으로 인지한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자연스러운 일 같기도 하다. 1년을 넘게 침대에 누워서 지냈으니까. 나는 23년 4월에 허리 수술을 했다. 수술을 하면 바로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회복의 시간은 아주 길어졌다. 수술 후유증으로 몸의 모든 신경이 망가졌고, 불면증까지 더해져 건강은 계속 악화됐다. 시간이 지날수록 근력과 체력은 약해지고 침대에 누워서 지내는 시간이 늘어났다. 당시 내 삶의 목표는 하루 1시간 걷는 것이 전부였고, 그 마저도 녹록지 않았다. 침대에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는 일상이 지속되니 무기력이 찾아왔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나를 집어삼켰다. 그러다, 삐이이이- 귀에서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종종 체력이 떨어지면 나던 소리라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한 달이 지나도 없어지질 않았다. 병원에선 '이명'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불안과 스트레스가 원인이라고 했고 현대 의학으론 고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했다.


나는 다를 것이라고 믿었다. 병원에선 방법이 없다고 했지만 나는 기적처럼 나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수시로 이명이 들리는지 확인했다. 지금은 들리나? 밖으로 나가볼까? 창문을 열어볼까? 움직이는 자동차 안에서도 들릴까? 조용한 작은방에선 어떨까? 소리에 대한 신경을 1초도 놓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아주 작은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시계 초침 소리였다. 잠을 자려고 누웠는데, 초침 소리가 머리통을 울렸다. 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시계의 배터리를 빼버렸지만 계속해서 초침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나는 모든 소리를 거부했다.


눈이 나쁜 사람들이 안경을 쓰듯, 나는 항상 귀마개를 하고 다녔다. 물론, 귀마개를 하면 이명소리가 크게 들리지만 외부 소음은 나를 죽일 듯이 날카로웠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동네 병원부터, 종합 병원, 대학 병원을 모두 돌아봐도 특별한 원인이 없다고 했다. 그저 불안과 스트레스가 원인 같다는 말을 반복할 뿐이었다. 나는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뇌 MRI를 찍기로 결정했다. 분명히 뇌에 문제가 있다고, 그렇지 않은 이상 내가 이렇게 망가질 순 없다고 믿었다. 결과는 내 예상과 달랐다. 의사는 MRI 사진을 보여주며 나의 뇌가 얼마나 깨끗하고 건강한지 설명했다. 물론 내 예상을 빗나간 결과이긴 했지만 내가 건강하다는 객관적 사실을 확인하니 묘한 희망이 피어올랐다.


집으로 돌아와 귀마개를 휴지통에 버렸다. 수술을 하고 내가 스스로 나를 아프게 만들고 있었던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도 허리가 아프고, 이명소리가 들리며, 생활소음이 머리를 울린다. 그럼에도 정상인처럼 살아보자는 다짐을 했다. 변화가 있어야 발전이 있다고 지겹게 말하고 다닌 게 바로 나 아닌가. 그래서 수영을 시작했고, 독서를 시작했고, 모임을 시작했고, 자취를 시작했다. 일상에서 스스로 해야 할 일이 늘어나니 느긋하게 침대에 누워서 천장을 볼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 몸이 불편해도 몸을 움직이니 죽어있던 감각들이 살아났고, 근력과 체력이 붙어 이명소리도 많이 줄어들었다. 무엇보다 귀마개를 끼지 않고도 어디든 갈 수 있으니 자유가 느껴졌다.



백예린 물고기 앨범사진 (출처: 블루바이닐)



"넌 잠시 땅에서 쉬고 있는 자유롭게 나는 새였을지 몰라."


1년 만에 처음 들은 음악은 백예린의 물고기였다. 물고기는 풍부한 밴드 사운드 위에서 파도를 타듯 유연하게 흘러가는 백예린의 목소리에 반해, 22년 5월 처음 발매가 되었을 때부터 줄곧 들었던 음악이다. 그런데, 이날은 가사 한 줄이 내 마음에 낚시 바늘처럼 탁 걸렸다. "넌 잠시 땅에서 쉬고 있는 자유롭게 나는 새였을지 몰라." 일부러 마음이 약해질까 두려워 누구에게도 힘들다고 말하지 않았다. 절대로 힘들다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을 물고기에게 들켰다. 어쩌면, 나는 누구보다 위로받고 싶었던 사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물고기를 들으며 정말로 다시 자유롭게 나는 새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으니 말이다. 그 순간, 음악이 앞으로 나의 일상을 아름답게 만들어 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우리는 음악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모른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잊고 있다. 학창 시절 내게 응원이 되었던 음악. 대학시절 내게 위로가 되었던 음악. 사회생활에서 내게 평온함을 가져다준 음악. 음악에 대한 추억이 없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요즘은 사용자의 음악 취향을 분석해 자동으로 재생하는 알고리즘 덕분에 제목도 모르고 음악을 듣고 있다. 음악이 음악 자체가 아닌 배경 음악으로 소비되고 있는 것이다. 음악의 제곱은 음악의 가치를 신선하게 상기시키고자 새롭게 만든 개념이다. 음악의 제곱, 누가 봐도 엉뚱한 조합이지만 재미있는 사실이 숨겨져 있다. 양수의 제곱은 수를 배가시키고, 음수의 제곱은 양수로 변한다는 특징을 가진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긍정적인 감정은 크게 부풀리고, 부정적 감정은 긍정으로 바꾸는 게 음악이다.


• 니체 : 음악이 없는 삶은 잘못된 것이다.

• 플라톤 : 음악은 영혼의 비밀 장소로 파고든다.

• 모차르트 : 언어가 끝나는 곳에서 음악은 시작된다.


음악의 제곱에 힘을 조금 더 싣고자 위인들의 찬사를 찾아봤다. 특히 니체, 플라톤, 모차르트의 찬사는 음악의 제곱에 대한 추천사라고 말해도 믿을 정도였다. 내가 음악의 제곱을 연재하기 시작한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시지프스의 형벌처럼 반복되는 일상 지옥에서 나를 해방시켜 준 음악의 힘을 알리고 싶었다. 음악으로 받은 위로와 기쁨을 독자에게 나누고 싶었다. 음악의 가사를 음미하고, 음악의 선율에 몰입하며, 음악의 리듬에 몸을 맡기는 일은 단순히 음악을 즐기는 것 이상의 가치가 숨어있다고. 그것은 일상 속 제곱의 기적을 만드는 음악의 비밀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자, 그럼 서랍 속에 묵혀둔 mp3 플레이어를 꺼내 제곱의 기적을 만들어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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