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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피플 Oct 17. 2024

라디오 아저씨

마당에서 자고있는 고양이


빵둥까랑뚱땅쑹깍, 외계인과 대화를 할 수 있다는 빵상 아줌마를 기억하나요? 진지한 표정으로 이상한 외계어를 하는 사람이 내가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병원에서 퇴원하고 부모님의 간병이 필요해 본가로 들어갔다. 본가는 편의점이 도보 1시간 거리에 있는 화성시 비봉면의 깡시골이다. 앙칼진 성격에 귀여운 고양이는 10마리나 있었지만, 내가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부모님 밖에 없었다. 처음엔 회의 지옥에서 갇혀 살던 일상에서 벗어나 조용히 사는 게 참 편했다. 그러다, 엄마가 "아들, 뭐 먹고 싶은 거 없어?"라고 물었는데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뭐가 있는지 도통 떠오르지가 않았다.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어떻게 발음을 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웠다.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아니, 없어."라고 대답을 했다. 말을 하지 않고 보내는 시간이 지날수록 말을 할 수 없게 될 것이라는 공포는 더욱 커졌다. 무슨 말이라도 좀 하고 싶은데, 도대체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답답함이 목구멍에 걸려서 숨이 막히는 날에는 화장실에 숨어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외계어를 뱉어냈다. 빵뚱까랑뚱딱쑥깍, 뇌에서 정보를 처리하는 속도가 말하고 싶어 하는 욕망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말하기를 연습하기 위해 라디오를 듣기 시작했다. 라디오는 24시간 언제 어디서든 나를 기다려주는 한결같은 친구였다. 라디오 속 DJ가 "안녕하세요, 오늘은 가을바람이 반가운 아침입니다."라고 인사를 하면, 나도 소리 내어 "맞아요, 가을바람이 너무 시원하고 좋아요."라고 답하는 식으로 대화를 나눴다. 종종, 라디오 게스트가 나오면 내가 대답을 하는 도중에 다른 사람의 오디오가 물리기도 했다. 라디오는 대부분 청취자의 사연으로 진행된다. 하루에도 수십, 수백 명의 사람들이 라디오로 편지를 보낸다. 친구, 동료, 가족들에게 말하는 대신 라디오에 사연을 보내는 사람들은 무슨 마음일까? 아마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은 마음일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살고 있는 사회와는 계속해서 연결되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라디오는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안도감과 나의 감정을 나눌 사람이 있다는 연대감을 주파수로 연주하는 악기다. 나는 그런 라디오의 따뜻한 마음에 보답이라도 하듯 라디오에서 나오는 광고를 줄줄 외워버렸다. 


매일 오전 10시, 김창완 아저씨의 라디오 오프닝이 흘러나왔다. 라디오 출근길에 발견한 풍경과 상념을 담담한 목소리로 읽어주시면 나는 그제야 하루가 시작되는 느낌이 들었다.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라는 프로그램으로 같은 자리에서 23년간 라디오를 진행한 김창완 DJ는 청취자들에게 아저씨로 통했다. 음악 페스티벌에서는 음악가로, TV 드라마에서는 배우로, 미술 전시회에서는 화가로 인정받는 김창완이지만 라디오에서는 그냥 아저씨였다. 심지어, 김창완투쓰리포 아저씨, 김창완전소중한 아저씨라고 부르는 청취자들도 있었다.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
주말 아침에 지나온 한 주를 돌아볼 때가 있어요.
그렇게 시간을 되감다 보면 시간이란 게 그릇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떤 장면이 담겨있고, 이야기가 담겨있는 그릇말이죠.
뭐, 라디오만 해도 '이건 전파야'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래도 사람 사는 냄새도 나고 뭔가 말동무 같은 뭐 그런 느낌이 있잖아요.
눈으로 보는 세상하고 마음으로 다가가는 세상이 다르다는 말씀입니다.
오늘도 아침창 들으시면서 가슴이 따뜻해지는 시간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침창, 23.10.14 오프닝


107.7 SBS 파워 FM으로 고정된 라디오


매일 아침 청취자를 위해 정성스러운 오프닝을 준비하는 사람, 그래서 매일 아침 10시를 하루 중 가장 설레는 시간으로 만드는 사람, 내가 무슨 고민을 털어놓든 능청스럽게 별거 아닌 일로 만들어줄 사람을 '아저씨' 말고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있을까? 라디오를 듣기만 하다가 용기를 내서 사연을 보낸 적이 있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사연을 보내니 당연히 내 사연을 읽어줄 것이라는 기대는 안 했다. 그런데, 김창완 아저씨 입에서 '라디오광'이라는 내 닉네임이 튀어 나온 것이다! 김창완 아저씨가 내 사연을 읽어주는 순간, "나, 지금 많이 아파."라고 말하고 싶은데 말하지 못해서 답답했던 감정이 자유롭게 해방되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남이 대신해줄 때 느껴지는 쾌감은 생전 처음 느껴보듯 생경했다. 그 후로, 나는 아침에 눈을 뜨고 저녁에 눈을 감을 때까지 라디오를 들었다.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

아침창 여러분의 영원한 집사이고 싶었다는 마음으로,
오늘 아침 집사 설정으로 이렇게 옷을 챙겨 입었는데요.

아, 진짜 마지막이구나 끝이구나 싶은 거예요.
마지막이나 끝이라는 말을 안 쓰고 싶어서,
뭐 다른 말 없을까 궁리를 했는데, 없어요.

마지막이고 끝이에요.
심하게 말하면 죽음이에요.
근데 죽음을 떠올리니까 비로소 눈이 떠져요.

그래, 죽음이다.

내가 죽어서 이 세상에 생명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사랑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지 하니까,
아, 그것처럼 큰 희망이 또 없는 거예요.

바람이 이쪽에서 저쪽으로 불었다 치자,
꿈속 같고 동화 속 같았던 모든 날에 경배를 올리자고,
힘차게 집을 나섰습니다.

이침창, 24.03.14 오프닝


24년 03월 14일, 김창완 아저씨가 마지막 생방송을 했다. 나는 고작 1년 차 <아침창> 청취자지만, 김창완 아저씨를 잃었다는 상실감은 10년 차 연인과 이별을 하듯 크게 느껴졌다. 이 상실감을 느낀 것은 나 하나가 아니었다. 영국, 미국, 호주, 일본, 인도, 태국 등 수많은 나라에서 김창완 아저씨를 보낼 수 없다고 사연을 보냈다. "지금 이거 드라마 촬영하는 거 아니죠? 차라리 촬영 중이라고 해주세요." 같은 사연이 속출했다. 그럼에도, 김창완 아저씨는 누구보다 침착하고 차분했다. 담담하게 사연을 읽어 내려가는 목소리만 들으면 누구도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는 것을 모를 정도였다. 그래도 2시간 내내 김창완 아저씨의 연주를 들을 수 있었던 건 마지막 방송에서 내가 유일하게 좋았던 점이다. 방송이 끝나기 5분 전, 마지막 연주곡인 <이 말을 꼭 하고 싶었어요>를 앞두고 "이 곡은 몇 분이나 되는지는 알고 올 걸. 그래도 이별은 준비 없이 하는 거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어요." 라며 처음으로 아쉬움을 띄웠다. 곧이어 23년의 세월의 묻은 듯 뭉툭한 손가락으로 기타 반주를 치는 소리가 났다. 그러나, 김창완 아저씨는 무던한 이별을 담은 가사를 한 소절 부르고는 이어 부르지 못했다. 기타 반주 소리는 점점 약해지고, 숨이 껄떡껄떡 넘어가는 소리만 들렸다. 그렇게, 마지막 이별 노래는 미완성으로 끝이 나고 얄궂은 광고가 흘러나왔다.


이 말을 꼭 하고 싶었어요, 사랑한다고
당신이 잠든 밤에 혼자서, 기도했어요
이 말을 꼭 하고 싶었어요, 행복했다고
헤어지는 날까지 우리는, 하나였다고

김창완 _ 이 말을 꼭 하고 싶었어요


라디오 덕분에 나도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매일 확인했다.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아직 살아있다는 증거이자, 자존감을 높이는 도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라디오를 1년 정도 꾸준히 들으면서, 다시 사람들을 만나서 대화를 해보자는 용기가 조금씩 자라났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바로 독서모임이다. 독서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이고, 도서를 주제로 대화를 나누는 일은 나름대로 자신이 있었다. 독서모임의 이름을 OPEN BOOK이라고 짓고, 사람이 책을 펼쳐서 보는 모습을 로고로 만들었다. 브랜드 철학에 운영 정책까지 정리해서 카카오톡 오픈채팅에 홍보를 시작했다. 일주일 만에 사람들이 3명이나 모였고, 첫 번째 독서모임을 진행했다.


안락한 카페에서 진행한 독서모임


부모님이 아닌 다른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고 대화를 나누는 게 얼마만인지. 독서 토론을 나누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믿기지 않기도 했다. 마주 않은 사람들과 평범한 이야기를 나눈다는 사실이 문득 감사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의 눈을 바라보고 대화를 나누는 일은 힘들었다. 눈을 보고 있으면 대화에 집중이 안되고, 대화에 집중을 하면 눈이 땅을 향했다. 중간엔 창문이 모두 닫혀 있어서 그런지 갑자기 숨이 막히기도 했다. 대화를 하다가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져 화장실에 가서 세수를 하고 숨을 고르기도 했다. 그럼에도, 책을 핑계로 각자의 아픔과 통증을 나누는 일은 치유의 시간이 되었다. 일면식이 없는 사이라 더 솔직해질 수 있고, 서로에게 계산 없이 위로를 나눌 수 있다. 3명으로 단출하게 시작한 독서모임은 벌써 20명이 되었다. 독서모임은 2시간 동안 진행되는데, 항상 시간이 부족하다. 다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중간에 진행자가 자르지 않으면, 자기 이야기를 20~30분 동안 하는 사람들도 있다. 독서모임을 진행하면서 사람은 말을 하면서 자존감을 채우는 존재라는 사실을 더욱 분명하게 실감했다. 내 안에 있는 걱정, 불안, 통증 등 부정적인 감정은 마음속에 담아두면 나를 잡아먹을 듯이 성장하지만 말하고 나면 연기처럼 사라진다. 어쩌면, 우리는 그래서 쉬지도 않고 말을 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요즘 독서모임을 왜 그렇게 열심히 하냐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 동네 독서모임인 주제에 브랜드 디자인도 하고, SNS도 운영해서 활동 보고서도 쓰고, 최근에는 글쓰기 프로그램까지 운영하고 있으니 당연한 질문 같기도 하다. 그러게, 나 독서모임 왜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냥 좋아서는 아닌 것 같다. 독서모임은 내게 사회로 다시 점프하기 위한 디딤발 같은 것이다. 디딤발 없이 갑자기 점프를 하면 멀리 뛰기는커녕 중심을 잃고 넘어지기 딱 좋다! 2년이 넘는 회복기를 보내고 있는 나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지금 당장 내가 사회에서 일을 시작하면 분명히 넘어질 것이다. 사회의 구성원으로 일을 하기 전에, 지금의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고, 어느 정도 회복을 했는지 디딤발을 딛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 디딤발을 대충 딛고 싶지 않을 뿐이고, 최대한 야무지게 디뎌서 높게 비상하고 싶은 것이다. 


독서모임이 끝나고 집에 가는데 오늘 독서모임에서 미처 완성되지 못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우리는 그곳에서 괴로울 거야, 하지만 그보다 많이 행복할 거야." 김초엽의 소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 나오는 이 문장을 두고 30분간 이야기를 나눴지만, 결론이 나지 않았다. 한 사람은 이 문장이 꼭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고 했고, 다른 사람은 이 문장이 꼭 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같다고 했다. 사랑과 일, 모두 괴롭지만 우리에게 큰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점이 공감이 되어 고개를 끄덕였다.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나는 이 문장이 꼭 내 인생 같다고 생각했다. 내일도 지겨운 통증을 달고 살아가야 할 테지만, 그보다 더 큰 즐거움이 있다는 걸 매일 느끼고 있으니까. 그리고, 언젠가는 찬란하도록 건강한 나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고 믿고 있으니까. 그런 상념에 젖어 라디오를 틀었는데, 김창완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랜만에 듣는 아저씨의 목소리엔 오랜 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사람처럼 생기가 가득했다. 저녁바람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라디오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저녁에 듣는 아저씨의 목소리는 하루종일 고군분투 했던 나의 노력을 따뜻하게 안아주는 것만 같다. 저녁바람 속 아저씨의 목소리에는 이별의 상처가 아물어 새살이 돋아난 치유의 에너지가 흘러넘쳤다. 김창완 아저씨의 미완성된 노래가 새로운 시작으로 돌아왔듯, 해가지면 달이 뜨고 가을이 지나면 겨울이 올 것이다. 그러니 나의 평범한 일상도 인생의 계절처럼 당연히 돌아올 수밖에 없다. 나는 이 말이 꼭 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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