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가기 싫은데......

by 홍반장

"일어나!!!! 늦었어!!! 빨리 씻고 출근해야지! 그리고 아들!! 너도 빨리 일어나! 학교 가야지!"

아침부터 울 사모님이 수마(睡魔)에 빠져 취해있는 나와 초등학생인 아들을 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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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그랬듯이 이놈의 학교는 너무 가기 싫다. ㅜㅜ

솔직히 학생들을 만나면 반갑고, 학교 생활도 나름 재미있긴 하지만 그래도 가기 싫은 건 어쩔 수 없다.


나의 불평에 주변 사람들은 "넌 방학이라도 있지! 그게 어디냐?"라고 핀잔을 준다. 나도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는 하지만 그래도 가기 싫은 건 어쩔 수 없다!


'쳇, 어릴 때도 학교 가는 게 정말 싫었는데, 이건 머 평생 학교를 다니게 생겼으니.....'라는 혼잣말과 함께

헛 웃음을 지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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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오늘은 평소와는 조금 다르다!

그리고 오늘 학교에서 수업시간에 어제 친구가 나에게 했던 질문을 학생들에게 되물어보려 한다.

가볍게 느껴지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아니 오히려 무겁다 못해 숭고할 수도 있는 그런 이야기를 말이다.

그리고 이야기가 학교를 오고 가는 나와 학생들에게 조금이나마 사명감과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원래 이 편에서는 학교의 역사에 대해 소개하려고 했었다.

역사상 최초의 학교인 고구려의 제17대 소수림왕 2년(372년)에 세웠다고 전해지는 태학을 비롯하여, 장수왕 때 세워진 경당 그리고 통일신라의 국자감과 발해의 주자감, 머.... 조선시대의 향교와 성균관 그리고 근대적 학교까지.....!


글을 이미 많이 적어놓았는데,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의 식사 중 나눈 대화에서 느낀 바가 많아 쓰고자 하는 글의 방향을 돌렸다.



"어이, 역사 선생 혹시 그거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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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데?" 나는 입에 물었던 수저를 내려놓으며 반문했다.


"우리나라가 문맹률이 매우 낮대! 그리고 그게 웬만한 선진국보다도 훨씬 낮다는 거야! 예를 들어 나이가 많이 드신 어르신들도 거의 대부분이 글자를 읽고 쓴다는 거지! 맞춤법은 조금 틀릴지 모르지만! 안 그래?"


"그... 그렇지! 우리 할머니도 곧잘 글자를 쓰시고 읽기도 하시고..... 그랬지!"


"그렇지! 그럼 왜 우리나라는 이렇게 왜 문맹률이 낮을까 하는 거야? 알고 있어? 너는 역사를 가르치니 혹시 알고 있지 않나 해서? 그런데...... 표정을 보니 잘 모르는 거 같네!"


"왜 그런데? 우리나라만의 문자를 가지고 있어서 그런가? 아님 한글이 쉬워서?"

나는' 한글날이 지난 지 며칠 되지 않아서 이런 질문을 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과 함께

나름 합리적으로 추측해서 대답했다.


"머! 전혀 틀리진 않네! 네가 말한 것도 답이 될 순 있지만 말이야,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우리나라가 일제 식민지하에 있었다는 거야! 일본인들의 핍박과 수탈 속에서도 배워야 독립한다! 배우고 익히는 것 그것이 애국이고 독립이다. 그렇게 생각한 거지! 어떻게 생각해? 내 말이 맞지 않아?"


나는 먼가 확 느껴지면서 "맞네! 정말 그러네! 그래서 문맹률이 낮은 거였네!"라고 녀석의 말에 정말 공감하며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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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가 우리나라를 지배하며, 1911년 8월 발표한 제1차 조선 교육령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어 버린 일제는 조선인도 교육을 받을 기회를 제공하겠다.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내용은 기초, 기본 지식만을 습득하게 하여 식민지 운영을 위한 노동력 착취를 위한 정책이었으며, ( 물을 가져오라고 하는데 모래를 가져오면 안 되지 않는가!) 이 정책의 일환으로 초등교육이었던 당시의 보통교육을 조선인에 대해서만 6년제가 아닌 4년 제로 운영하였다.


1920년대, 일제에 의한 교육적 핍박과 고등교육 기회의 확대를 요구하던 우리 민족은 1920년대 민립대학 기성회를 조직하여, 민립대학을 (당시 구호 - 일천만이 일원씩) 설립하려는 노력을 했으나, 이마저도 일제에 의하여 무산되고, 일제는 회유책의 일환으로 경성제국대학(지금의 서울대)을 만들었다.


또한, 당시의 학교는 보통 조선인에게는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하는 곳이었고, 그나마 어렵게 어렵게 학교를 다니게 된 당시 조선 학생들은 일본 학생들과의 엄청난 차별과 핍박을 겪으면서 학교에 다녀야만 했다.


그리고 1940년대 일제는 우리의 글(심지어 이름까지)과 역사를 완전히 사용하지 못하게 하여 우리 민족의 혼을 말살하려 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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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가혹한 수탈과 핍박 속에서, 하루하루가 너무나 고단한 생활 속에서도 어떻게든 배워야겠다는 생각에 야학을 찾아다니고, 배움을 게을리하지 않았던 당시의 사람들!

그리고 그것이 나라를 위한 길이자 민족을 위해 힘없는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가장 소중한 무언가로 여겼기 때문에 그리고 그 간절함이 우리의 글과 우리의 혼을 지켜낸 것이라고 생각된다.


우리의 역사 속에서 학교는 누구나 쉽게 다닐 수 있는 그런 곳이 아녔음을 결코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암흑과도 같았던 일제시대를 지났지만, 여전히 학교는 누구에게나 개방된 곳이 될 수 없었다.

그리고, 먹고살기 위해 학업을 포기했던 수많은 사람들에게는 학교는 부러움과 더불어 한(恨)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그토록 부러움과 간절함의 대상인 학교가 언제부터인지 마지못해 가는 곳으로 전락해 버린 거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소중한 것이 평범해져 버려 더 이상 소중한 것이 아닌 것처럼 되어버린 지금!

아침마다 '가고 싶은 않다'라고 생각하며 다니고 있는 이 학교에 다닐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큰 혜택인지 한 번쯤은 돌이켜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오늘은 학교에 출근하는 발걸음이 왠지 가볍다.

그리고 '학교를 다닐 수 있어서 행복하고,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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