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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사 Jun 27. 2022

회사에서 하는 랩이라는 수치플

랩에서 이불 킥까지

회사에서 하루 일과를 끝내는 방법은 각 팀마다 다르다. 어떤 팀은 팀장님이 10분 동안 혼자 말하시고 끝내는 팀이 있는 반면 우리 팀은 10분 동안 팀원 전부가 모여서 잡담을 떠들며 종례를 맞이한다. 이 잡담은 여러 종류가 있는데 앞으로의 일정을 말해주실 때도 있고, 주제를 하나 잡고 잡담할 때도 있다. 어느 날은 팀장님께서 1박 2일(?)에서 재미있는 것을 봤다며 릴레이 소설을 주제로 가지고 오셨다.


릴레이 소설의 시작은 나부터 했고 나는 새로 오신 신입분을 목표로 잡았다. 회사에 신입으로 들어왔으면 사회생활의 쓴 맛을 보여줘야 되지 않겠는가. 나는 새로 오신 신입 분을 엄청 오만한 사람으로 설정하여 릴레이 소설을 만들어나갔다. 여러 사람이 이어나가는 소설인만큼 소설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졸지에 그분은 입사한 지 2주밖에 안 됐음에도 불구하고 대표님 책상 위에서 탭댄스를 추며 랩을 하는 인간 언저리 그 어딘가로 변해 있었다.


문제는 팀장님 차례에서 발생했다. 팀장님은 내 바로 앞의 소설을 이어나가셨는데 "김 칼슘(신입분 가명)이 갑자기 랩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라며 내게 주제를 옮기셨고 나를 보며 "랩을 반드시 하셔야 돼요. 아시죠?"라는 말을 같이 남기셨다. 나 자신은 랩의 재능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부담이 컸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내 업무를 직접적으로 피드백해주시는 팀장님의 명령 아닌 명령을 어길 정도의 깡은 불행히도 없었다. 나는 왼손으로 입을 살짝 가리고 말에 박자를 태워 큰 소리로 랩을 했다. 'YO-! 내 이!!↑ 름은 킴↑칼→쓤↓~' 영혼을 태운 랩이었지만 주위의 반응은 싸늘하다 못해 날카로웠다.

너네가.. 시켰잖아...!!


내 랩 한 번에 공격 대상은 신입 분으로부터 나에게로 옮겨왔다. 쇼미에 나가게 되면 꼭 불러달라던가, 이 랩은 못 들은 걸로 해준다던가, 오늘 밤 이불 킥 하시겠네요 ㅋㅋ? 같은 조롱이 종례 시간이 끝날 때까지 이어졌다. 오죽하면 신입 분마저 "불쌍한 역할은 OO님이 다 맡으시는 것 같아요 호호~" 라며 나를 건조기 돌리듯 돌렸고 갖은 모욕 끝에 종례 시간은 끝이 났었다.


사실 회사가 끝나면 회사 일은 거의 잊는 편이기에 오후 생활을 잘 끝마쳤건만 자기 전에 틀었던 유튜브로 내 하루의 마무리는 최악으로 끝나버렸다. 옛날 특집으로 무한도전이 나왔는데 거기서 유재석 씨가 되게 어색한 랩을 하시는 것이 아닌가!? 그 많고 많은 시리즈 중에서 하필 오늘 이 장면을?? 순간 수치심을 못 이겨 이불 킥을 여러 번 갈겨버렸다.


사회생활이라는 것은 이렇게나 험난한 것이다. 언제 어떤 이유로 갖은 모욕과 고통이 당신을 찾아갈지 모른다. 단, 살다 보니 어른이라는 것은 기쁘고 영광스러운 일로만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는 걸 느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의 앞길에도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길지는 잘 모르겠다. 한 가지 소망이 있다면 여러분은 앞 길에 있는 그 모욕과 고통들을 가벼운 마음으로 사뿐히 지르밟고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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