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사 Mar 19. 2022

호구와 매너의 차이

지하철에서 자리를 뺏겼을 때

 사람이 가득 찬 출근길 지하철 안. 어느 때와 다름없이 '앉아가면 좀 편하겠다'라는 마음으로 앞사람이 빨리 자리에서 일어나길 바라고 있었다. 그렇게 꽤 긴 시간을 서있을 무렵, 아직 도착까지는 1/3 정도의 길이가 남았건만 내 앞에 앉아있던 사람이 일어났다. 그렇게 내가 앉으려고 하는 그때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난 아주머니가 주변 모든 사람들을 밀치더니 거기에 기어코 앉는 것이 아니겠는가! 밀린 사람들도 정말 어이가 없었겠지만 눈 뜨고 내 앞의 자리를 강탈당한 나 또한 정말 어이가 없었다.


 순간 어이가 없었지만 내 앞에 있던 자리를 결국은 포기했다. 지하철 자리는 누구의 소유도 아닐뿐더러 이런 사소한 걸로 하기도 좀 뭐해서였다. 뻔뻔한 사람들이 얼마나 강한지 이미 소음의 사례를 통해 알고 있었기에 미리 포기했다는 것도 맞다. 대신 조금 이상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앉아 있는 사람 바로 앞에 서 있는 사람이 그 자리에 앉는 건 암묵적인 룰 같은 거 아니었나? 단순히 내가 호구여서 자리를 뺏긴 건가?' 나는 양보할 마음이 없었기에 양보할 마음도 없이 강탈당한 건 일종의 호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오죽하면 출근 후 인터넷에 호구 구분법을 검색하며 내가 한 행동과 맞춰보기 시작했다. 결론은.. 좀 호구였던 것 같다. 그 사람은 흔히 노약자석에 앉아야 될 사람은 아니었고 그저 앉고 싶었던 한 명의 예의가 부족하거나 매우 급박한 사람이었을 뿐이다. 단지 이런 걸로 말하기는 좀 치사하다는 생각으로 자리를 포기한 것은 어쩌면 호구인 나 자신을 위안하는 말이 아니었을까.


 자기 자신보다 남을 기쁘게 하는 데 초점을 두는 호구 행위는 착취나 학대를 향해 자신을 열어놓는 것이라고 한다. 남에게 이득을 주고 기쁘게 하는 일을 할 때 그 자신에게도 이득이나 기쁨이 있어야 호구가 아닌 것이다. 저 측면만 봤을 때 그때의 난 호구가 맞았다. 


 호구를 끊어주는 것은 단호함이다. '내가 이걸 거절하면 상대방이 날 싫어하겠지?'라는 생각에 부담스러운 부탁까지도 다 들어주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다 도와주는 동안에는 상대방이 날 싫어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깔보고 호구로 볼뿐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어떤 것을 선택하던 상대방에게 있어 나의 이미지는 마이너스의 이미지인 것이다. 상대방에게 노예의 이미지로 끌려다니느니 단호함으로 상대방과 같은 위치에 서거나 그 관계를 끊어내는 것이 맞다.


 당시의 나에게는 단호함과 판단력이 부족했었다. 밀치고 들어오는 그 사람을 막아서라도 내 앞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 맞았던 것인지 아니면 괜히 지저분하게 얽히지 말고 처음부터 포기하는 것이 맞았던 것인지 고민하는 사이 그 사람이 자리에 앉아버렸던 것이다. 다음부터는 이런 일을 겪었을 때 상대방이 자리가 필요해 보이는 노약자 같은 경우가 아닌 이상은 단호하게 끊고 내 앞자리를 지키는 편이 차라리 낫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가끔 '이거 하면 난 호구인가?'라는 생각이 뜰 때면 이 일로 인해 나에게 떨어지는 이득이 뭔지 한 번 살펴보곤 한다. 무슨 일을 겪던 억지로 이득과 연관 짓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때는 마음속을 좀 더 들여다보기를 추천한다. 정말 마음속에서 이득이라고 외치는 건지, 머릿속에서 억지로 이득이라고 생각하는 건지를 말이다. 우리 모두 최소한 자기 자신한 테만큼은 호구라는 소리를 안 듣는 인생을 살기를 바라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공모전 탈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