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업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형용사는 아마도 '순환'일 것입니다. 가장 쉽게 예로 들 수 있는 것이 팬츠의 핏인데 스키니 핏 팬츠의 시대가 저물고 과거에 유행했던 넓은 핏의 팬츠가 현재 트렌드를 주도하며 패션의 ‘순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패션 디자이너의 작품들이 오르는 런웨이나 길거리 패션을 봐도 과거에 유행했던 트렌드가 다시 재평가되는 것을 자주 목격할 수 있는데 이것이 브랜드의 가치를 높이는 아주 좋은 방법으로 통하고 있습니다.
이번 콘텐츠에서는 나이키 덩크 스니커즈를 중심으로 패션의 순환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1985년 첫 출시된 나이키의 덩크 스니커즈는 처참한 실패를 맛본 작품이었지만, 2002년 3월 나이키 SB 라인(스케이트 보드)에서 새롭게 설계된 덩크 스니커즈를 발매하며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스니커즈 신을 형성하는 것에 큰 기여를 하게 됩니다.
버질 아블로와 트래비스 스캇이 현재 덩크 시리즈의 유행을 선도하고 있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샌디 보데커'라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앞서 말한 두 셀러브리티는 사실 샌디 보데커가 주요 덩크 라인업을 디렉팅 하며 만들어 낸 전략적인 마케팅과 동일한 방식을 사용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샌디 보데커는 1982년 나이키의 프로덕트 테스터로 입사해 유럽 지사의 축구 파트를 지나 2001년 설립된 나이키 SB라인의 디렉터로 임명되었습니다. 보데커는 1985년도에 처음 출시되었던 덩크 스니커즈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그는 농구화로 출시되었던 덩크 스니커즈를 스케이트 보드화로 재설계하며 신발의 혀 부분을 패딩 처리하여 더욱 편안하고 안정적인 착용감을 완성시켰고 질긴 스웨이드를 어퍼에 적용시켜 신발의 찢어짐을 최소화시켰습니다. 또한 지면에 닿을 때의 충격을 완화시켜주기 위해 뒷 굽의 안쪽에는 '줌 에어' 시스템을 삽입했습니다. 이렇게 나이키 SB의 덩크 스니커즈는 완벽히 스케이트 보더들에게 맞춰진 신발로 재탄생되었습니다.
샌디 보데커는 단순히 스케이트 보드화를 만드는 것뿐 아니라 실제 그 신발을 신는 스케이트 보더들과 특별한 유대 관계를 만들었습니다. 그들과 직접 계약을 맺어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해주며 그들의 문화에 대한 신뢰와 존중을 보여줬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기능과 문화에 대한 틀을 만들어 낸 그의 태도는 디자인에도 그대로 녹아들었습니다.
당시 스트리트 패션 씬에서 디렉터로 활동하던 제프 스테이플과 손을 잡고 출시한 'NYC PIGEON' 모델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스니커즈 열풍을 만들어낸 모델이며 동시에 리셀 마켓을 정립시키는 역할까지 하였습니다. 또한, 이례적으로 뉴욕 포스트 일간지의 커버를 장식하며 수많은 화제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그 후로도 수많은 협업 모델들을 발매하며 업계를 선도했지만 점차 업계의 평가는 달라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스니커즈 마니아들은 같은 디자인에 색상만 바뀌어서 출시되는 덩크 시리즈에 아쉬움을 토로했습니다. 덩크 스니커즈의 인기는 갈수록 약해졌으며 사람들의 머리에서 잊혀졌습니다. 나이키의 덩크가 탄생된 지 30년이 되는 해는 물론 나이키의 SB 라인의 설립 15주년에도 아무런 이벤트가 없었습니다. 이로써 덩크의 화려한 부활은 막을 내리는 듯 보였으나 2017년 샌디 보데커가 건강상의 이유로 퇴임 소식을 알린 뒤 새롭게 SB 라인의 헤드로 임명된 제임스 아리즈미가 들어온 뒤 분위기는 반전을 이루게 됩니다.
제임스 아리즈미는 샌디 보데커가 일궈낸 것에 자신만의 새로움을 더했고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나이키의 파트너십 브랜드와 셀러브리티와의 전속 계약에 집중했습니다. 버질 아블로부터 트래비스 스캇 그리고 슈프림과 같은 거대한 기업들과 SB 라인의 협업을 진행시켰으며 단순히 그들의 디자인을 받아들이는 것만이 아닌 ‘샌디 보데커’가 초창기에 보여준 스케이트 보드의 문화에 대한 연관성에도 중점을 두었습니다.
이를 통해 나이키 SB의 덩크 시리즈는 다시금 팬들이 가장 기대하는 스니커즈로 다시금 부활했으며 리셀 마켓에서의 존재감은 다시금 커졌습니다. 샌디 보데커 시절의 아주 오래된 덩크 모델은 구하기 힘들어졌을 뿐만 아니라 엄청난 값을 지불해야만 손에 쥘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 이르게 된 덩크 시리즈는 스포츠 브랜드와는 거리가 멀었던 '아카이브'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있는 몇 없는 시리즈가 된 것입니다.
덩크 시리즈는 버질 아블로의 레이블인 오프 화이트가 파리에서 공개한 2020년 봄·여름 컬렉션 런웨이 무대에도 모습을 드러냈으며, 약 3천만 명의 팔로워를 보유한 트래비스 스캇은 정기적으로 자신의 계정에 발매되지 않은 덩크 모델의 사진을 올리는 등 덩크 시리즈의 부활을 직간접적으로 알렸습니다.
이렇게 스니커즈 시장의 판도를 바꿔놓은 덩크 시리즈의 모태가 되었던 스케이트 보드 문화는 이제 더 이상 비주류 문화가 아닌 주류 문화로 변모하였습니다. 스케이트 보딩은 2021년으로 연기된 도쿄 올림픽을 시작으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며 하나의 스포츠 장르로 분류되었으며 이제 나이키는 전 세계에 알려질 스케이트 보드 문화를 알리는데 선구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 시작으로 지난 2월 네덜란드의 아티스트이자 스케이트 보더로 활동하기도 했던 피엣 파라(Piet Parra)를 게스트 디자이너로 초청해 미국, 프랑스, 브라질 대표팀의 대회 공식 유니폼을 디자인하며 앞으로 알려질 스케이트 보드 문화에 앞장선다는 제스처를 취했습니다.
과연 올림픽이 예정대로 연기된 일정에 진행되며 수십 년간 스케이트 보드 문화의 발전을 바래왔던 나이키의 꿈이 이루어질 수 있을지, 그리고 주류문화로 변모하고 있는 스케이트 보드 문화와 함께 ‘덩크 시리즈’의 인기는 어떻게 이어질지에 대한 기대감은 계속해서 커져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