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마다 문을 여는 악기 박물관은 음악학과 건물 3층에 있다. 1층과 2층은 강의실, 도서관, 교수 연구실으로 사용한다. 악기박물관에서 학생 조교로 일하던 초반에는 3층에 올라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인사했다. 어느 순간 나의 인사가 부담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용히 건물 사진만 찍고 가는 사람도 있으니 말이다. 음악학과 건물은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어 종종 건물만 둘러보는 방문객이 있다. 이제는 누군가 3층으로 올라오면 기다렸다가 악기 박물관 입구로 올 때 인사하기로 했다.
노부부가 3층에 올라와 건물 구석구석을 살펴본다. 그렇게 한참을 둘러보더니 박물관 입구로 온다. 할아버지가 나에게 표가 얼마인지 물어보신다. 은퇴자 할인 티켓은 1,50유로라고 하니 할머니께 프랑스어로 설명하신다. 아! 프랑스 분이셨구나 :-)
먼저 도와줄까 물어보지 않는 것, 쇼핑할 때 먼저 다가와 필요한 것은 없는지 묻지 않았던 것이 독일 사람 나름의 배려였나 보다. 독일 친구와 이야기해보니 그렇단다. 다른 사람이 혼자 할 수 있는 일을 먼저 도와주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단다. 물론 먼저 도와주는 독일 사람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기다리는 사람이 많다. 수줍음이 많은 독일 사람의 성격도 한몫하는 듯 :)
먼저 묻지 않고 물어봐줄 때까지 기다리기. 처음 대학에 와서 그런 부분이 힘들었다. 학교 시스템을 잘 모르는 데다 독일어로 진행되는 수업이 너무 어려웠다. 어딘가에 물어보고 싶었지만 누구에게 물어봐야 할지 모르겠더라. 미국이나 한국은 누군가 먼저 다가와 "도와줄까? 필요한 거 없니?" 묻는 경우가 많은데 독일에서는 먼저 다가와 도움이 필요한지 물어보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생전 처음 보는 옆 학생에게 묻자니 방해될 것 같고. 그러다 시간이 지나고 수업에서 몇 번 눈인사를 했던 학생에게 물어보니 너무나 기뻐하며 알려주는 것이다. 마치 내가 물어보길 기다렸다는 듯.
상대방이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지켜보며 기다리는 것이 그들의 배려가 아닐까. 내가 음악학과 건물 3층에 올라온 모든 사람들에게 먼저 인사하지 않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