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가수 이름을 어떻게 읽어야할지 몰라서 당황스러운 Fran Vasilic의 Japanese pancakes를 들으며 이 글을 쓰고 있다. 재패니즈 팬케이크가 오코노미야끼를 말하는 것인지, 일본식 수플레를 말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노래는 좋다. 약간 촌스러운 것 같으면서도 세련된 느낌이다. 요즘 날씨가 약간 추운 것 같으면서도 덥기도 한 것과 비슷한 느낌이랄까.
지난 주 금요일에는 봄비가 내렸다. 봄비라하면 어딘가 힘이 약해보여서 만만하게 생각했지만 태풍급 바람을 동반하고 나타나 고생했다. 봄비 주제에 싸움 잘하는 동네 형을 데려온 느낌이랄까. 이 글은 느낌적인 느낌이 가득한 느낌적인 글이 될 것만 같은 느낌이 느껴진다. 비오는 날에는 뭐니뭐니해도 삽겹살만한게 없다고 느꼈기에 삼겹살의 느끼함을 잡아줄 소주를 넘겼다. 비가 내리고 기름이 흐르면 난 김치를 생각해요. 삼겹살과 김치는 한국인 최고의 발명품이 아닐까. 버거패티와 양상추 보다 훌륭한 느낌을 준다.
(지금까지 느낌을 총 10번 썼지만 왠지 더 쓴 느낌적인 느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커피 한잔을 주문하려고 맥도날드 키오스크 앞에 섰는데, 바로 옆에서 나이가 지긋하신 한 외국인이 키오스크에서 주문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뜻대로 잘 되지 않는지, 자꾸만 첫 화면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그는 키오스크가 첫 화면으로 전환될 때 마다 화면을 한대씩 쳤다. 주문을 마친 나는 그와 살짝 거리를 두고 커피를 기다렸다. 결국 그는 키오스크를 몇 대 더 치고는 직접 주문하기 위해 카운터 앞에서 점원을 기다렸다. 그러나 대부분의 점원은 인수인계에 한창이었다.
"이건 칠러 머신이구요. 아뇨, 아뇨 필러 아니구 칠러!칠러!"
"아아..넵 선배님 칠..러..칠러 (소리질러~ 할 때 칠러)"
한국식 인수인계에서는 두번 되묻다가는 혼나기 일쑤다. 그런 그들 눈 앞에 외국인이 키오스크를 세방 때리고 카운터에 서 있다고 해도 눈에 쉽게 들어올리 없었을 것이다. 결국 그는 양손을 들어 올리며 답답함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결국 소주 한병을 마신 내가 나설 차례라는 것을 필연적으로 느끼는 순간이기도 했다. 물론 소주가 없었다면 나서지 않았을 것이다. 머릿속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뭐라고 말해야 하더라.' '메아이 헬퓨~?', '아니야 너무 교과서적이야. 다른 표현이 뭐가 있지?' 이미 내 발걸음은 그에게 향하고 있었고, 그와 눈이 마주치기 전에 내 머릿속의 영어모드가 작동해야 했다. 그러나 내 속의 세포들이 '야 쟤가 영어를 할 리가 없어. 영어모드 켜지마. 저거 가짜야!'라고 말하는게 전해질 때 결국 나는 그와 눈이 마주치고야 말았다.
"아..음.. 위..캔 헬프 유"
"오우 땡큐, 간사함미다. 아이 원트 쿼러 파운덜 치이-즈 벅 앤 후렌취 후라위"
사실 그는 메뉴를 말하기 전에 키오스크에 대한 욕을 좀 한 것 같았는데, 듣지 못했다. 역시 욕은 언어를 불문하고 못 듣는게 가장 좋다는 느낌을 준다. 그가 원하는 메뉴를 키오스크를 보고 하나씩 담기 시작했다. 실수로 '더블'쿼터 파운드를 담았는데, 그는 매우 단호한 말투로 내게 말했다. "노.더.블". "아 오케이! 오케이! 씽글! 씽글! 오케이! 오케이!" 그리고는 나도 모르게 세트로 담아버리는 실수를 또 했다. 그는 다시 한번 내게 말했다. "노.세.트". "아 오케이! 오케이! 노쎄트 노쎄트! 노코크? 노코크?" 왜 영어로 말하면 두번씩 말하게 되는지는 모르겠으나, 실수가 계속되면 실력이라 했던가. 나의 키오스크 실력은 초보라는 느낌을 준다.
그렇게 그의 신용카드까지 전해받아 결제를 완료하고 영수증을 챙겨주었는데, 그가 캐나다에 놀러오면 자신이 도와주겠다며 농담을 던졌다. 역시 서양인들의 농담은 실없지만 타이밍 만큼은 결코 놓치지 않는다는 느낌을 준다. 내가 주문한 커피가 나왔고, 나는 그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떠나고 싶었다. 주문할 때의 실수를 만회하고, 뭔가 한국 맥도날드의 키오스크에게 화난 마음을 풀어주고도 싶었고, 캐나다로 돌아가 손주들을 데려온 아들 가족 앞에서 "아버지, 한국은 어떠셨어요?" 라는 질문에, "아! 그 영등포 맥도날드 청년 정말 재밌었지." 하는 식의 농담을 남기고 싶었다.
예를 들자면
"디스 이즈 코리아, 웰컴 투 코리아~ 낫 놀쓰(North)~"
"굿 치즈 벅~ 잇츠 레이니 데이~ 할렐루야"
-버블시스터즈의 It's raining men에서는 It's raining men-Hallejulah라는 가사가 있다. 그리고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설명이 길다는 것은 이미 농담으로서 자격이 없다지.)
그러나 나의 영어세포들은 여전히 작동하고 있지 않았기에 내가 그에게 남긴 한 마디는 아래와 같다.
"Have a nice day."
초등 영어교육만 13년을 받은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구절이 이게 전부 였던걸까. 결국 '하와유'에는 '아임파인 땡큐앤유?'가 붙을 수 밖에 없는 우리 모두의 폐해는 아니었을까. 그에게 웃긴 영등포 맥도날드 청년이고 싶었던 나의 계획은 그렇게 실패했다.
'좋은 하루 되세요.' 는 회사에서나 쓰는 말인데. 13년 초등영어의 결과물이라기 보다는 어쩔 수 없는 K-직장인이어서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