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낯선 사람과 대화하는 일에 종종 힘들다고 느낄 때가 있다. 특히 미용실에서의 스몰토크가 가장 힘든데, 그간 잘 지내셨냐는 기본적인 인사부터 지난밤 야구 경기는 봤는지, 날씨가 많이 더워졌지 않느냐는 등의 질문을 받게 되는 그 순간이 내게는 쉽지 않은 순간이다.
내가 이러한 대화를 힘들어하는 것은, 그 상대와 가까워지고 싶지 않겠다는 의지는 결코 아니다. 단지 나는 낯선 사람일수록 내 대답을 조금 더 검열하게 되는데, 그러다 보니 나의 대답이 곧바로 나오지 않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지난밤 야구 경기를 봤는지에 대한 질문에 나는 예, 아니오로만 대답하면 되는 건지, 어디서 누구와 봤는지까지 말해야 할지, 어떤 기분이었는지도 말해야 하는지, 대답이 끝나면 반대로 되물어야 하는지, 되묻는다면 상대는 대답할 의향이 있을지. 이 짧은 순간에 내 머릿속은 복잡해진다. 더군다나 미용실이라는 곳은 내 머리를 낯선 상대에게 맡기러 온 어쩔 수 없는 손님이기에 대부분은 내게 호의적이다. 나 역시 상냥하게 대화를 이어가고 싶다만 대부분 짧은 대답으로만 일관하는 내 대화방식이 되려 상대에게는 부정적으로 비칠지 모른다는 생각에 힘들다 못해 고통스러울 때도 있다는 것이다.
미용실 스몰토크의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은 따로 있다. 흔히 샴푸실로 불리는 머리를 감는 공간이다. 다 그렇진 않지만, 내가 가는 미용실은 갓 이곳에 발을 들인 듯한 신입 직원이 머리를 감겨주는데, 그들의 스몰토크 방식은 어딘가 매우 잘 학습된 기계와 같다. 물론 나도 그들이 준비한 질문을 시작하기 전에 내가 먼저 이렇게 말하는 상상을 자주 한다.
“아, 선생님! 물 온도는 너무 차갑거나 뜨겁지만 않으면 괜찮고요. 아마 적절히 잘 헹궈주시리라 믿기 때문에 더 헹구고 싶은 곳은 없을 거예요. 그리고 혹시 두피 마사지를 해주신다면, 그 압은 매우 적절할 것 같으니 걱정 마셔요. 아 참 그리고 뒷목을 잡으실 때는 저도 모르게 목에 힘들이 들어갈지도 모르니 최대한 힘을 빼보도록 할게요. 참고해 주세요. 그럼 이만 눕도록 하겠습니다.”
샴푸실에서 듣게 될 질문을 모두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다. 나와 같이 이런 대화가 힘든 사람들에게는 머리를 감는 동안 눈을 가려줄 아이마스크가 아니라 대답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로 입에 제갈을 물려주었으면 좋겠다. 예약할 때 합의를 하는 것이다. 최소한의 스몰토크만을 이용하기로. 머리를 감는 동안 입에 제갈을 물린 뒤, 어딘가 불편할 때마다 치과처럼 왼손을 드는 것으로 합의 보자는 것이다. 닭을 튀겨도 될 정도의 온수가 아닌 이상 왼손조차 들 일은 없겠다만, 서로 힘든 질문과 대답을 해야만 하는 상황은 그래도 피할 수 있으니 꽤 괜찮은 방법은 아닐까?
그리고 합의를 하는 김에 하나만 더 했으면 한다. 샴푸가 끝나고 수건으로 머리를 감싸주면서 일으켜 세울 거면 확실히 일으켜주고, 아니면 일으켜주지 말기로 했으면 좋겠다. 매번 낯선 이에게 몸을 맡겨 스르륵 일어나다가 어느 순간 혼자 일어나 앉는데, 그 도와준 것도, 그렇다고 스스로 일어난 것도 아닌 그 어색한 상황을 만들지 말자는 것이다. 내 두 손을 잡고 확실하게 끝까지 번쩍 일으켜 앉혀주거나, 그렇지 않다면 “선생님 이제 하나 둘 셋! 하면 일어나시겠습니다. 하나, 두울~ 셋!” 이렇게 말이다.
예상했겠지만, 이쯤에서 다시 한번 짚고 넘어가야만 할 것 같다. 나는 낯선 이와 대화조차 못하는 사회 부적응자가 아니고 모든 낯선 이의 호의적인 태도를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대답조차 하기 싫어하는 아주 이기적이고 무례한 사람도 아니다. 그 점만은 꼭 명심해 주었으면 한다. 단지, 낯선 이와의 대화를 이어가는 것이 아주 아주 조금 힘들 뿐이다. 그것도 때때로.
아무튼 이번 미용실에서도 수많은 질문에 대답을 했는데, 계산을 하고 나갈 때마다 늘 궁금한 것이 하나 있었다. 한동안 결제를 마친 카드를 건네받으면서 매번 ‘마실 것 좀 드릴까요?’라는 질문을 받았다. 나는 괜찮다고 말하면서도 매번 궁금했다. 도착했을 때가 아닌 이제 나가는 사람에게 왜 마실 것을 주려는 걸까? 대체 어떤 게 있느냐고나 한번 물어볼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든 찰나 이번에도 똑같은 질문을 받았다.
“아, 주환님 마실 것 좀 드릴까요?”
그런데 이번에는 그 질문의 정확한 뜻을 알게 되었다. 나가려는 내게 그가 건넨 질문은 머리카락으로 지저분해진 ‘마스크 좀 드릴까요?’였다.
어떤 게 있느냐고 묻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흰색과 검은색, 또는 부리형 정도..라는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