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유학 생활 에세이
독일 사람들은 꽃과 나무, 자연을 사랑한다. 그도 그럴 것이 장이 서는 날에는 꽃집들이 항상 북적이며, 주택가의 앞마당과 화단은 다양한 꽃과 나무들로 부지런히 가꾸어 진다. 또한 도시마다 시나 대학에서 운영하는 식물원(Botanischer Garten)이 하나 쯤은 있는데, 모든 시민들에게 열려있어 쉽게 드나들 수 있다. 물론 꽃과 나무를 싫어할 사람은 별로 없겠지만, 나는 독일 사람들이 유독 일상에서 식물을 가까이 하고 좋아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독일 문화 가운데 ‘클라인가텐’(Kleingarten)이라는 것도 있는데(또는 슈레버가텐 Schrebergarten이라고도 부른다), '작은 정원'이라는 뜻이다. 꽤 많은 도시에 이 작은 정원들이 존재한다. 완전히 같다고 볼 수는 없지만, 우리 나라의 주말 농장과 비슷한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정원 부지 전체를 관리하는 하나의 조합이 있고, 그 조합에 가입한 구성원들이 일정 크기로 나누어진 부지를 임대한다. 우연히 한 조합의 작은 정원들을 구경한 적이 있었는데, 구획마다 작은 오두막집이 있다. 특별히 무언가를 수확하는 것이 목적이라기 보다는, 이곳에서 각자 자기만의 스타일로 정원도 가꾸고 파티도 하는 등 자연 속에서 여가를 즐기는 것이다.
내가 사는 도시 뮌스터는 공원, 숲길, 산책로 등 곳곳에 녹지 공간이 잘 조성되어 있는 중소도시다. 나는 걸으면서 이것저것 구경하는 것을 좋아해 평소에도 산책을 자주 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코로나 이후에는 정말 ‘살기 위해서’ 의무적으로 산책을 나섰다. 한창 락다운이 심할 때에는 마트에 장을 보러 가거나 잠깐 산책을 나서거나 둘 중 하나 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동네 산책이라 산책 루트는 거의 비슷하므로, 자연스레 꽃과 식물들의 변화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특히 봄에는 꽃 사진도 다양하게 많이 찍고, 그 이름을 알고 싶어 식물들을 검색할 수 있는 독일 앱도 깔았다. 쪼그려 앉아 아주 가까이에 대고 열중해서 사진을 찍다가, 갑자기 ‘내가 야생화 사진 작가도 아닌데 뭐하는 거지?’하는 생각이 들어 피식 웃음이 나기도 했다.
작년 봄부터 시작된 나의 꽃 관찰은, 올해 들어 ‘아하, 이 꽃이 지는 무렵에 저 꽃이 피어나는구나.’ 하는 꽃들의 개화 시기를 인지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이 지역에서 이른 봄에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꽃은 설강화(스노우드롭)와 크로커스다. 대략 2월 중순부터 피기 시작한다. 조금 더 날이 따뜻해지면 번식력이 강한 민들레와 데이지도 흔히 볼 수가 있는데, 처음에 이곳에서 민들레를 보고 깜짝 놀랐다. 민들레의 키가 무릎 위까지 올라오는 것이다. 민들레꽃은 한국인들에게 조금은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기 때문에, 나 역시 이 꽃에 대해 개인적인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민들레는 독일어로 '사자 이빨'(Löwenzahn)이라고 불리운다. 날카로운 꽃잎의 모양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여진 것 같다. 같은 대상에 이름을 붙일 때에도 이렇게 차이가 나다니... 이것이 동양과 서양의 사고방식의 차이일까? 어쨌든 사자이빨이라는 이름을 듣고 '민들레'라는 한국 이름에 대한 내 안의 낭만은 사라져 버리고 말았지만, 이곳의 우람한 민들레들을 보자니 상당히 어울리는 이름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생소한 꽃들도 많아서 이름을 다 외울 수는 없었지만, 꽃들을 알아가며 깨닫게 된 것이 하나 있다. 식물의 세계도 동물의 세계만큼 치열하다는 것. 우리는 보통 꽃을 보고 그냥 지나치거나 혹은 ‘아름답다’, ‘예쁘다’와 같은 미적 판단을 내린 뒤 시선을 거둘 뿐이지만, 정작 꽃들은 기후 조건과 주변 환경에 따라 치열한 생존 투쟁을 벌인다. 우리가 돌보지 않는 들꽃, 풀꽃이라면 더더욱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