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유학 생활 에세이
독일에 처음 왔을 때 번화가를 걸으며 조금 어색하게 느꼈던 것은 바로 '시선'이다. 한국에 '얼.죽.아'인 사람이 있는 것처럼, 독일에는 '곧 죽어도 야외 테이블'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다. 눈‧비가 거세게 내린다거나 악천후가 아닌 이상, 독일인들은 웬만하면 카페나 음식점의 노천 테이블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식사하는 것을 좋아한다(날씨가 좋으면 실내는 거의 텅 비어있다). 그리고 보통은 길가를 등지고 앉지 않고 마주보고 앉는다. 여유있게 커피나 맥주를 즐기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이다. 그들의 입장에서 나는 '지나가는 행인1'에 불과하지만, 정작 나는 아주 잠깐이어도 그들의 시선을 받으며 지나가야 했기 때문에 '왜 저렇게 쳐다볼까?'하고 처음엔 불편하게 느꼈던 것이 사실이다. 솔직히 독일인들 입장에선 동양인이 눈에 띌 수 밖에 없다. 그러니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서도 나에게 시선이 조금 더 머무르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고, 또 그게 아니라면 그저 그들의 시선이 닿는 곳에 내가 스쳐지나가는 것일 뿐이니 그렇게 의식할 필요없다. 그렇게 생각하고 익숙해지고 보니, 나중엔 나도 카페에 앉아 물끄러미 사람 구경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간혹 서로 눈이 마주치면 살짝 미소를 지으며 눈인사를 하곤 한다.
일상에서 '서로 눈을 맞추고 미소를 지으며' 인사하는 것은 확실히 여유에서 나오는 매너다. 한국에서는 직장에서 무슨 일이 있어도 상대방의 비위를 맞추고 친절과 미소로 대해야하는 것이 의무가 되어 버렸다. 그러다 보니 정작 일상에서는 타인을 향해 관심을 줄 여유도, 미소도 사라져 버렸다. 반면 독일인들은 일을 할 때 친절과 미소의 강제성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일까? 물론 독일도 대도시•중소도시 또는 지역에 따라 분위기의 차이는 있지만, 일상에서 주변을 둘러보고, 또 서로 눈이 마주치면 미소를 지으며 인사하는 문화가 아직 살아있는 것은 분명하다.
생각해보면, 한국에서는 지나가는 사람과 눈 마주칠 일이 거의 없다. 바쁘디 바쁜 오늘날에는 더욱 그렇다. 여전히 작은 마을 공동체나 농촌에서는 이웃끼리 서로 인사하고 지나치는 모습들이 남아있을 테지만, 보통은 처음보는 사람이 미소를 짓거나 인사를 하면 좀 이상한 사람으로 여겨질지도 모른다. 오늘날 도시에서 낯선 사람과 인사하고 잠깐 멈춰서서 담소를 나누는 경우를 보는 것은, 견주들이 반려견과 산책할 때 말고는 별로 없는 것 같다. 반려견이라는 매개를 통해서 비로소 타인과 눈을 맞추고 인사하는 것이다.
코로나 이후 마스크를 착용하게 되면서, 독일에서도 서로 미소를 머금고 무언의 소통을 하는 경우는 많이 줄어들었지만, 적어도 말로 하는 인사는 여전히 반사적이고 습관적으로 나온다. 한국의 인사 예절과는 다르게, 독일에서 하는 인사는 생각보다 가벼운 것이다(정중히 인사해야 하는 자리가 아니라면 말이다). 때문에 나는 요 몇 년 간 독일에서, 한국에서 지금까지 했던 인사들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인사를 했다. 건물 통로에서 누군가와 마주치면 "Hallo" 하고 인사하고, 마트나 식당에서 "Hallo", "Danke"(감사 인사), "Tschüss"(헤어질 때 인사)를 하고, 또 누군가 나에게 "Danke!"하고 고마움을 표시하면 "Bitte!"라고 거의 반사적으로 화답한다. 그리고 이것은 입에 붙어 습관이 되었으므로, 안 하면 더 어색하다.
그저 가벼운 인사치레면 또 어떤가? 인사를 너무 무겁게, 부담스럽게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서로 가볍게 나눈다'고 생각하게 되면, 누군가와 눈을 맞추고 인사를 하는데엔 그리 큰 여유가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