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atharina Kwon Dec 16. 2021

질문과 토론

독일 유학 생활 에세이

 독일에서 어학을 하면서 독일인들에게 종종 들었던 말이 있다.


'틀린 질문은 없다. 틀린 대답만 있을 뿐이다.'


 독일인들은 아마 한국인들이 대체로 질문에 소극적이고 수줍어하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실제로 한국인 학생들은 궁금하거나 모르는 것을 수업 진행 중에 공개적으로 물어보기 보다는, 수업이 끝나고 개인적으로 묻는 경우가 더 많다. 이것은 아마도 학교 교육의 영향이 없지 않을 것이다. 현재 초중고를 포함한 학교 수업 분위기는 꽤 달라져 있을 수도 있지만, 내 세대(지금의 30대)만 하더라도 수업 중 자발적인 참여와 토론, 자유로운 발언 등은 익숙치 않은 것이고 그래서 어려운 일이다. 그 때문에 질문을 잘 할 줄 모르는 것이기도 하다.


 나 역시 질문하기를 어려워하는데, 이는 주목받는 것을 싫어하는 탓도 있지만, 성격상 정리되지 않은 질문들을 마구 내뱉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틀린 질문이란 있을 수 없다. 무언가가 맞고 틀림을 이미 잘 알고 있다면, 애초에 질문을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좋은 질문과 좋지 않은(부적합한/무의미한) 질문은 있다. 나는 다양한 구성원들이 모인 공적인 자리(강의, 세미나 등)에서 질문을 할 때, 질문자 스스로가 어느 정도 질문들을 걸러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즉흥적으로 내뱉기 보다는, 스스로 묻고 답하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 자리에는 나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신의 개인적인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자리에 있는 다른 사람들도 귀기울일 만한 질문을 던진다면 모두에게 유의미한 시간이 되지 않겠는가


-라고 여전히 생각하고는 있지만, 사실 이런 마인드는 유학생 입장에서 보면 손해다. 학교에서 세미나를 듣다보면 순수하게 '언어적인 문제'로 인해 맥락을 쫒아가기에 바쁘고, 또 항상 긴장되어 있으므로 스스로 (명확한 문장으로) 좋은 질문을 만들어낼 여유가 주어지지 않는다. 게다가 독일인 학생들은 생각보다 더 거침없이 자유롭게 발언을 하는 편이라, 교수님 측에서 개입하거나 제지를 하지 않으면 계속 손가락을 치켜 세우고 있는 경우도 꽤 있다(특이하게도 독일 학생들은 발언 의사를 표시할 때, 검지 손가락을 많이 든다). 솔직히 말하면, '대체 저런 질문을 여기서 왜 하는 걸까?' 싶은 경우도 종종 있고, '저 친구는 그냥 자기 지식을 뽐내기 위해서 저렇게 묻는 것 같은데...' 싶은 경우도 있다. 누군가의 질문이 흥미진진하고 생산적인 토론으로 확장될 수도 있지만, 때론 부적합하고 무의미한 질문으로 인해 그저 시간만 빼앗길 수도 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좋은 질문을 하려면 일단 질문을 많이 해 봐야 할 것이 아닌가.' 어차피 찬반토론이 아닌 다음에야 명확한 답변도, 또 결론도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철학 세미나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그렇다면 결국 중요한 것은, 상대방과 묻고 답하면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주고 받는 것, 자유로운 토론 분위기 그 자체가 아닐까. 경청에만 익숙해져있는 전형적인 한국인의 경우(=나)에는 아주 단순한 질문을 하는 것 조차 쉽지 않은 일이긴 하다. 그러나 독일 학생들이 생각보다 서슴없이 발언을 하는 것을 보니 부럽기도 한 한편, 그렇게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다만 우리에겐 그 독일어 대화의 맥락을 이해하면서 발언의 타이밍을 잡아야 하는 커다란 극복 과제가 있기에, 오늘도 조용히 '당신의 말을 잘 듣고 있음'을 리액션을 통해 알리며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뿐이다.





이전 05화 눈인사와 미소 그리고 여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