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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tharina Kwon Sep 13. 2021

한국어 낯설게 보기-2

독일 유학 생활 에세이

 수업을 준비하면서 새삼 깨닫게 된 것은, 우리말에서는 대화의 맥락, 상대방과의 관계, 주변 상황 등과 같은 컨텍스트가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한국인들은 맥락과 관계를 바탕으로 대화를 해나간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무슨 내용을 전달할지 만큼이나, 누구에게 어떻게 전달하느냐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우리말은 조사와 어미들이 세분화되어 있고, 그 중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말의 뉘앙스가 달라지게 된다. 


1.

 내가 처음으로 맞닥뜨린 것은 바로 ‘은/는/이/가’의 늪이었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평소 말할 때에는 상황에 맞는 조사를 거의 직관적으로 사용하지만, 글을 쓸 때에는 단어 뒤에 붙는 조사 하나를 가지고 꽤 오랜 시간을 고민하기도 한다. 그런데 주어 뒤에 붙는 가장 기본적인 조사 ‘은/는’과 이/가’의 차이에 대해서 어릴 때 내가 상세하게 배운 적이 있었던가? 우리는 말할 때 거의 직관적으로 ‘은/는’과 ‘이/가’를 구분한다.  


 가장 단순한 예로는, 


저는 학생입니다.’와 ‘제가 학생입니다.’ 

‘시간 있어요’와 ‘시간 있어요’


 첫 번째의 경우, 조사만 다른 두 개의 문장을 영어나 독일어로 작문하면 똑같은 문장이 될 것이다. 전달되는 내용이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는 ---입니다’와 ‘제가 ---입니다’를 말할 때의 상황은 분명히 다르다. 거의 무의식적으로 문맥과 상황에 따라서 다른 조사를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두 번째의 경우, 시간'' 있는 것과 시간'' 있는 것은 서로 조금 다른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경우에 ‘은/는’ 또는 '이/가'를 사용하는 걸까? 원어민으로서 나의 언어 감각을 믿고 경험적 사례를 되짚어 봄으로써 어느 정도 구분해 낼 수는 있겠지만,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한단 말인가? 비전공자인 나는 결국 명확한 설명을 위해 문법을 공부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든 생각은, 한국어가 모국어라서 참 다행이라는 사실이었다.  


2.

 두번째로 내가 설명하기 어려웠던 것은 바로 경어 표현이었다. 먼저 위의 예문 ‘저는 학생입니다.’를 다시 활용하면, 사실 같은 문장도 누구에게 말하는지에 따라서 ‘나는 학생이야’, ‘저는 학생이에요’, ‘저는 학생입니다'와 같이 다르게 변화할 수 있다. 한국어 교재에서 표현의 단계, 즉 반말과 존댓말(존댓말은 다시 비공식과 공식으로 나뉨)을 구분해서 설명하고 있긴 하지만, 존댓말을 할 때 언제 ‘-요’를 쓰고, 언제 ‘-니다’를 쓰는지를 명확하게 구분짓기는 사실 쉽지 않다. 실제로는 그때그때 섞어서 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막 걸음마를 떼는 아이에게 달리기를 강요할 수는 없듯이, 어학 공부에 있어서도 일단은 초급 레벨에 맞게 명확한 원칙을 세워주는 것이 중요하겠구나-하는 생각이 스쳤다. 아마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교사들 모두 그런 고민을 하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이 든 순간 교재의 구성을 다시 한번 살펴보게 되었고, 집필자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를 표했다. 


3.

 한국어 감사 표현과 관련해서도 재미있는 사실을 하나 알게 되었다. 교재에 '감사를 표현할 때 유용한 표현들'로 “감사합니다 – 네” 와 “고마워요 – 아니에요” 가 적혀 있었던 것이다. 매우 실용적이긴 하지만, 무언가 이상했다. 상대방이 고맙다고 말할 때에 대한 반응으로, '네(긍정)'와 '아니에요(부정)'가 둘 다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이전 단원에서 '네(ja), 아니요(nein)'를 이미 배웠으므로, 학생들에게 틀림없이 이 표현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수업 중 이 부분에 대해서 물어보는 것이었다. 


 교재의 설명을 읽어보니, 낯선 사람에게 말할 때나 공식적인 상황에서는 보통 '네'라고 반응하고, 일상적으로는 '아니에요'라고 대답한다고 적혀 있다. 이 점에 대해서 '정말 그런가?'하고 곰곰 생각해보니, 과연 그렇다. 나는 여태껏 살면서 이 부분에 대해 단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감사 표현에 대한 반응으로 어떨 때는 긍정을 하고, 어떨 때는 부정을 한다? 위와 같이 짝 지어 제시된 것만 보면 뭔가 모순적이고 이상하게 느껴지지만, 이때 우리는 다시금 저 표현들 뒤에 숨어있는 상황과 맥락들을 고려해야 한다. 


 우리가 분명 어떤 경우에는 ‘네’, 또 어떤 경우에는 ‘아니에요’로 대답하지만, 이 둘에 공통점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적극적인 표현이 아니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 우리에게 감사 인사를 하는 상황을 떠올려 보면, 우리는 대체로 그 인사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물론 '고맙긴요, 천만에요'와 같은 표현들이 간혹 교재에 써 있긴 하지만, 이 표현들은 그리 잘 쓰이지도 않을 뿐더러, 결국 ‘아니에요’라는 말로 수렴될 수 있다.) 

 

 한국 사람들은 보통 감사함에 대해 매우 겸손하게, 달리 말하자면 수줍게 반응한다. 너스레를 떠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영어의 'My pleasure!'나 독일어의 'Sehr gerne!'같은 표현들과 비교한다면 더 잘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네'는 사실 긍정적인 표현이라기 보다는, 솔직히 말해 딱히 받을 말이 없어서 예의상으로 반응하는 것에 가깝다. 물론 목례나 미소 짓기와 같은 비언어적 요소만을 사용해서 반응할 수도 있지만, 그냥 침묵하는 것보다는 뭐라도 짧게 대답을 같이 하는게 나은 것이다. 이에 반해서 '아니에요'는 부정이지만, 어떻게 보면 '네'라고 반응하는 것 보다는 조금 더 적극적인 표현이다. '아니에요'라는 표현 속에는 사실 '고마워 할 필요 없어요/제가 할 일을 한 것 뿐인데요/도움이 되어서 다행이네요'와 같은 말들이 함축되어 있는 것이다. 내 스스로 익숙하게 사용하는 표현이기 때문에 몰랐지만, 교재에 활자로 적혀있는 표현들을 보니 어쩐지 새롭게 느껴졌다. 우리가 때로는 긍정적 표현으로, 또 때로는 부정적 표현으로 고마움을 애매하게(?) 받아내고 있었다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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