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유학 생활 에세이
예전부터 궁금한 것이 한 가지 있었다. 바로 독일어에 의태어라는 개념이 있는지에 관한 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음성 상징어, 즉 의성 의태어 표현들을 일상적으로 흔하게 사용한다. 우리말은 의성어와 마찬가지로 음절이 반복되는 의태어 표현들도 매우 발달되어 있다. 소리를 흉내내는 말인 '의성어'와는 달리, '의태어'는 상태‧ 모양‧ 움직임을 흉내내는 말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재료의 질감을 묘사하는 경우만 하더라도 '말랑말랑, 물렁물렁, 꾸덕꾸덕, 쫀득쫀득, 찐득찐득, 끈적끈적, 까끌까끌, 폭신폭신' 등 다양한 표현들이 존재한다. 그런데 독일어로는 의태어를 말이나 글로 한 번도 접해보지 못했던 것이다. 나의 부족한 독일어 탓일까, 아니면 원래 잘 사용되지 않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없는 것일까?
나는 몇 년 간 일주일에 한 번 씩 티타임을 가지며 대화를 나누던 독일인 할머니께 이 오래 묵은 궁금증을 꺼내 놓았다. 할머니께서 최근 독일의 유명한 고전시 몇 편을 소개해 주신 적이 있는데, 나 역시 한국 시를 소개해 드릴까 하다가 문득 이 질문이 떠오른 것이었다(김소월의 진달래꽃에 '사뿐히'가 있었던 것). 물론 학문적 개념상으로는 존재할 수 있겠지만, 독일인들에게는 의태어라는 것 자체가 생소한 것 같았다. 의성어의 경우에도 한국인들은 자주 사용하는 반면, 독일에서는 어린 아이들이 무언가를 가리킬 때나 아동용 책 또는 만화책에서나 자주 볼 수 있다고 하셨다. 그러니 할머니께 의태어를 설명하는 것이 더욱 어려울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의태어가 문장 안에서 '시냇물이 졸졸 흐른다' 이런 식으로 쓰인다고 말하고, 어떤 경우에 이렇게 표현하는지를 설명해 드렸다. 그런데 할머니께서 생각지도 못한 질문을 하셨다. 그냥 '시냇물이 가늘게 천천히 흐른다.' 이런 식으로 말하면 되는데 왜 구지 '졸졸'이라고 하는지, 그리고 시적인 표현이 아니더라도 일상적으로 자주 그런 표현들을 사용하느냐는 것이었다. 그 순간 나는 '가늘게 천천히와 졸졸이 같을 수는 없지 않나...? 어감이 많이 다른데....'라는 생각을 했다. 또한 '사뿐히'라는 표현도 설명이 어려워 내가 직접 행동 모사를 곁들여야만 했다.
우리에게는 사물의 어떤 모양새나 움직임들을 보고, 머릿속에서 그림이 그려질 수 있게끔 묘사하는 것이 매우 익숙한 표현 방식이다. 또한 음성 상징어를 통해 섬세한 차이들을 묘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이 주는 느낌까지도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다. 물론 할머니께서 반문하신 것처럼 그런 표현들 없이 설명해도 내용을 이해하는 데에는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다. 오히려 '반짝반짝'과 '번쩍번쩍'의 차이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빛이 어떻게 깜빡이는지를 직접 보여주거나 상세히 설명해주는 것이 음성 상징어보다 더 명확하게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의성 의태어가 명료함과는 거리가 멀다 해도, 이러한 표현들이 말과 글에 맛을 더하며 다채로운 언어 표현의 발달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우리말의 수많은 음성 상징어들이 사라져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