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유학 생활 에세이
독일은 종교의 자유가 있는 나라지만, 오랜 기독교적 역사와 전통을 간직한 나라이기도 하다. 독일 (어쩌면 유럽 전체) 역사의 많은 부분들은 기독교를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을 것이다. 뮌스터만 하더라도, 30년에 걸친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간의 종교전쟁(1618-1648)을 끝내고 평화 조약(베스트팔렌 조약)이 맺어진 의미있는 도시라 독일인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오는 곳이다. 또한 독일의 도시들을 여행하다 보면 어딜가나 자주 눈에 띄는 풍경이 있다. 1) 구도시의 중심에 오랜 역사를 간직한 성당(교회) 건축물이 자리 잡은 모습과 2) 그 오래된 성당 건축물을 보수 공사하고 있는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성당과 교회는 늘 우리 가까이에 있다.
뿐만 아니라 독일에서는 부활이나 성탄 시기를 비롯해 오순절, 주님승천대축일, 성체성혈대축일 등 기독교의 중요한 기념일이 곧 법정 공휴일로 지정되어 쉬는 날이 많다(물론 주마다 조금 씩 차이가 있긴 하지만, 이러한 휴일들은 유학생인 나에게 소소한 기쁨과 휴식의 시간을 가져다 주었다).
그런데 사실상 독일의 기독교 신자수는 점점 감소하고 있다. 2018년의 통계에 따르면, 독일 전체 인구수 가운데 53.2%가 기독교(가톨릭과 개신교)를 믿는다고 한다. 나도 주일에 독일 성당에 나가서 미사를 드린 적이 몇 번 있지만, 청년들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부모님 손에 이끌려 나온 아이들 정도가 눈에 띈다. 오늘날 신을 믿는 사람들은 점점 줄고 있다. 그런데 독일에 거주하는 다른 종교와 세계관을 가진 이주민과 난민들은 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독일 교회(성당)는 오늘날 자신들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또 다른 종교와 어떻게 화합할 수 있을지를 고민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들이 개방성과 포용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는 기독교 신자라고 하면 '독실한 신앙'을 떠올리고, 성당과 교회는 경건하고 엄숙하며 진지해야만 하는, 믿는 자들만을 위한 공간으로 생각되곤 한다. 그런데 나는 독일에서 '열린 공간'으로서의 교회(성당)를 경험하게 되었다. 단순히 '종교'로서가 아니라, '문화'로서의 기독교를 접하게 된 것이다. 한국이 전통적으로 유불교 문화권인 것처럼, 독일은 기독교 문화권에 속한다. 설사 하느님을 믿지 않더라도, 그들의 생활 · 관습 · 가치관 등을 포함한 모든 삶 속에 이미 기독교 문화가 녹아있는 것이다.
1. 성당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쉼터다.
독일은 오래된 건축물(Altbau)들을 그대로 보존하고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건물들에는 냉방장치가 거의 되어있지 않다(돈이 엄청 들기도 하고, 추측컨대 실외기 설치 등 외관상의 문제도 있을 것이다). 독일이라고 푹 찌는 찜통 더위의 날씨가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럴 땐 그늘로 피신하거나 어디론가 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성당 내부는 냉방장치를 설치했나 싶을 만큼 시원하다(그 비밀을 알고 싶다). 그래서 시내에 나갔다가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배차 간격이 큼)에는 가끔 대성당에 들어가서 한 바퀴 돌아보거나 잠시 머물다 나오기도 했다. 그 외에도 햇빛이 강한 낮에는 스테인드 글라스를 통해서 들어오는 빛을 구경하고, 어둑한 날에는 무겁고 엄숙한 분위기를 느꼈다가, 또 어떤 날에는 '저기에 저 조각상이 있었나?'하고 물끄러미 바라보기도 하고, 내부 정원도 한 번씩 둘러보고, 성탄 시기에는 구유와 트리 장식을 보러 들어가기도 했다. 한마디로 심심하면 들어갔다 나왔다는 이야기다. 또한 어느 도시를 가나 대성당 앞은 대체로 광장과 연결되어 있어서 장이 서거나 종종 이벤트들이 열린다(시위도 열린다). 성당은 굳건히 그 자리를 지키고, 그 주변에서는 끊임없이 다양한 일들이 벌어진다. 광장은 모두의 것이고, 성당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다. 물론 이러한 개방성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고마움으로 연결되고, 또 그 공간의 역사와 의미에 대한 궁금증으로 이어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