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유학 생활 에세이
나는 예술을 사랑하는 대중이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대중예술을 소비하고 향유하는 대중이며, 순수예술을 알고 싶어하는 대중이다. 그런데 '순수한' 예술이라는게 대체 뭘까? 순수예술과 대중예술을 구분하는 기준은 장르에 있을까, 예술가의 작품 의도에 있을까, 그것도 아니면 작품의 탄생을 둘러싼 시스템(제도)에 있을까? 만약 그 기준이 '상업성'과 '실용성'에 있다고 말한다면(비상업적이고 비실용적이면 순수예술, 그렇지 않으면 대중예술), 오늘날 이러한 기준을 가지고 순수예술과 대중예술을 확고하게 구분하는 것은 아마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어찌보면 낡은 관점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우리에게는 이미 순수예술과 대중예술을 구분하는 어떠한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그 기준이 무엇인지 분명히 정의내리진 못하더라도 말이다. 우리(일반 대중)는 예술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더라도, (그것이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예술(작품)인 것과 예술이 아닌 것을 직관적으로 판단하고 구분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우리는 미디어를 통해 미술 ∙ 음악 ∙ 공연계 등 다양한 영역의 아티스트들이 '대중성'과 '예술성'을 구분해서 말하는 것을 자주 듣게 된다. 그렇다면 순수예술도 '대중적'일 수 있고, 대중예술도 '순수하게 예술적'일 수 있다는 것일까?
나 같은 문외한이 보기엔 여전히 '예술', 특히 '순수예술'은 특별한 지위가 부여되어 있어 진입장벽이 높은 것처럼 느껴진다. 소위 순수예술이라 칭해지는 것들은 엘리트들이 즐기는 고급문화이며, 어렵고 난해해 그에 대한 배경지식이 있어야 즐길 수 있다는 인식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술적인 것'과 대척점에 서있는 '대중적인 것'이란 항상 통속적이고 저급한 것인가? 이렇게 묻는다면 오늘날 많은 대중들은 격하게 고개를 저을 것이다. 대중예술도 '예술'이다.
나는 대중가요를 좋아하고, 평소 음악 ∙ 예능프로그램과 TV 드라마 보는 것을 즐기며, 그림도 만화 ∙ 일러스트 ∙ 삽화를 좋아한다. 나의 취향은 말하자면 매우 대중적이다. 그리고 미디어를 중심으로 확산되는 한국의 엔터테이닝한 문화 컨텐츠에 익숙해져 있는 터라, 독일에 온 초반에는 상당히 난감했다. 독일어 공부를 위해 재미있는 TV프로그램을 찾아보려고 했지만, 독일의 TV프로그램에서 그나마 재미있고 흥미로운 것은 다큐멘터리나 토론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다는 못 알아듣는다는 커다란 단점이 있다). 어쩌면 방송 환경과 시스템이 다르기 때문일 수도 있고, 대중문화에 대한 인식의 차이일지도 모르지만, 한국인의 시각에서 볼 때 독일은 트렌드를 주도하는 독일만의 대중문화 컨텐츠라는 것이 특별히 눈에 띄지 않는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왜 독일의 젊은 세대들이 K-culture에 그토록 열광하는지도 이해가 된다.
대신 독일에는 고전 예술이 있다. 확실히 한국에서는 멀게만 느껴졌던 서양의 고전예술 또는 순수예술의 영역들이, 독일에서는 비교적 가깝게 느껴진다. 물론 클래식음악과 서양미술의 본고장이니 이들에게 순수예술의 향유가 어느 정도 친숙한 것도 당연할 것이다. 어찌 됐든 이러한 문화의 차이 때문인지, 예전에는 막연했던 나의 예술에 대한 인식이 이곳 독일에서 대중예술과 순수예술에 대한 궁금증으로 이어졌다.
오늘날 순수예술과 대중예술의 경계는 점점 더 허물어지고 있다. 그런데 내 눈에는 한국과 독일의 양상이 조금 다른 것처럼 보인다. 한국에서는 기존의 대중문화를 기반으로 대중예술과 순수예술이 결합을 시도하는 것처럼 보이는 반면, 독일에서는 순수예술이 한정된 공간을 벗어남으로써 대중들에게 일상적으로 다가가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