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유학 생활 에세이
2. 성당(교회) 건축물은 하나의 예술 작품이다.
보통 유명 도시의 랜드 마크인 오래된 성당과 교회들은 중세 시대에 몇 백 년에 걸쳐서 완공된 경우가 많다. 우리가 바로크, 로마네스크, 고딕 등 이러한 건축 양식들을 잘 모른다고 해도, 성당의 외관만 보아도 그 위용에 압도 당하거나 고전적인 아름다움에 사로잡히게 된다. 예전엔 건축물의 외관만 보고 그것이 성당인지 교회인지 충분히 구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이 얼마나 한국적인 발상인가), 다른 몇몇 도시를 투어해보고서는 깨달았다. 대체로 들어가봐야지만 구분이 가능하다(!) 과거에는 로마 가톨릭 교회였다가 어느 시기 이후부터는 개신교 교회 건물로 개조해서 사용하고 있는 경우도 있고, 또 생각해 보면 종교개혁으로 구교와 신교가 분리된 것이 16세기인데, 교회 건축에도 변천 과정이 있음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성당(교회) 내부로 들어오면 우리는 절로 경건해지고 숙연해진다. 미사 외 관람 시간에는 보통 관광객들이 많지만, 그들 중에서 큰 소리를 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성당은 기도 공간이지만, 동시에 역사와 의미, 상징들로 가득한 공간이기도 하다. 그러니 교회 미술사를 잘 아는 사람과 함께 투어를 할 수 있다면 참 좋을 것이다. 어느 도시를 가든 성당은 꼭 들어가 보곤 했지만, 내가 지금에 와서 아쉬운 것은 각각의 작품들(공간 구성, 스테인드 글라스에 그려진 그림, 부조, 성물 등)에 담겨 있을 이야기들을 거의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3. 성당(교회)은 과거와 현재의 예술이 만나는,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문화 공간이다.
그러나 나는 성당과 교회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된 것과는 별개로, 독일 교회(가톨릭과 개신교를 통칭해서 교회라고 지칭하겠다.)가 이 거룩한 공간을 문화 공간으로 '활용'하여 대중들과 소통하고 있다는 것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뮌스터는 북부 도시답지 않게 도심 곳곳에 성당들이 많이 있는데(보통 독일 북부 지역은 개신교가 강하다), 나는 부활 또는 성탄 전후로 이 성당에서 저 성당으로 음악회를 들으러 가곤 했다. 한 번은 멘델스존의 '엘리야'를, 또 한 번은 드보르작의 '레퀴엠'을 감상한 적이 있는데, 클래식에 문외한인 나지만 오케스트라가 실연하는 교회음악을 그 공간 안에서 직접 감상한다는 것은 그 어떤 콘서트홀과도 비교할 수 없는 미적 체험을 할 수 있게 해주었다(물론 이 대서사시들을 조금이나마 잘 감상할 수 있기 위해 책자에 적힌 해설과 가사집을 보느라 바쁘기도 했지만 말이다).
또 다른 새로운 경험은 미술 전시회 관람이었다. 2018년 여름, 몇 달에 걸쳐 '가톨릭의 날' 행사가 뮌스터에서 열렸을 때였다. 학교가 돔(뮌스터의 주교좌성당) 근처에 있어서 자주 지나다니는데, 어느 날 돔을 바라보니 두 개의 탑에 눈이 그려져 있는 것이 아닌가? '뭐지?' 싶어서 가까이 가보니, '평화'를 주제로 쿤스트아카데미(미술대학)와의 콜라보 작품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그래서 하루 날을 잡아 성당 곳곳에 설치된 미술 작품들을 관람하기 위해 팸플릿을 들고 곳곳을 둘러 보았다. 그리고 현대 미술 작품의 경우에는 보고도 놓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무엇을 표현하려는 것인지 작품 해설을 꼭 읽어보아야만 했다. 다양한 조명, 설치 미술 작품들이 성당의 내부 외부 공간과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렇게 많이 지나다니고 여러 번 드나들었지만, 돔의 구석구석을 살펴본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그 이후로 다른 성당에서도 종종 소규모의 작품 전시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어, 순전히 작품 감상을 목적으로 성당에 들어간 적도 꽤 있다. 전시회 홍보 포스터를 보고 호기심에 성당에 들어와서, 마치 미술관에 온 것처럼 작품을 감상한 뒤 성당을 한 바퀴 휘 돌아 나온다.
독일 교회가 이렇게 예술을 위해 공간을 내어 주는 것이 단순히 예술을 사랑하는 독일의 문화에서 나온 것일까? 나는 그렇게만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교회가 믿음이 없거나 믿음을 점점 잃어가는 대중들의 마음의 문을 열기 위한 방법, 이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이 어쩌면 '예술'이 아닐까? 예술과 종교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예술은 작품을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우리가 감각할 수 있게끔 표현하며, 종교는 감각 너머의 세계로 우리를 고양시킬 수 있다. 그렇기에 교회는 어쩌면 예술을 매개로 그 공간으로 우리를 초대해 보여주려 시도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교회가 살아숨쉬는, 또 변화하는 공간임을 말이다.
만약 한국의 교회나 성당에서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이런 미술 전시회가 열린다면 어떨까? 아마 상당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