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유학 생활 에세이
한국인들이 꿈꾸는 자신의 은퇴 이후의 삶, 노후 생활은 어떤 모습일까? 내가 만약 독일에서 독일인 할머니를 알게 되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시니어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보지 못했더라면, 이런 질문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처음 독일인 할머니를 만나게 된 이유는 독일어로 글을 쓰고 말하는 데에 있어서 도움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뮌스터에는 시니어분들이 만든 조합 성격을 띈 단체가 외국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독일 생활 및 독일어에 도움을 주기 위해 만든 프로그램이 있었다. 일명 Begleitung(동행)이라고 해서 대학부설어학원을 통해서 이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고, 신청한지 몇 주만에 할머니와 만나게 되었다. 그 이후 몇 년 간을 할머니와 거의 매주 한 번씩 만나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었다.
처음에는 카페에서, 코로나 이후에는 할머니댁에 직접 방문했다. 물론 우리가 만나는 요일과 시간을 서로 협의해서 정하긴 했지만, 할머니는 매우 바쁜 삶을 살고 계셨다. 그녀의 캘린더에는 거의 항상 빽빽하게 일정이 잡혀 있었다. 따라서 정확히 말하면 할머니는 나에게 시간을 '내어주고' 계신 것이었다. 할머니는 1940년 생으로 과거에는 교사 생활을 하셨고, 최근까지는 노인대학에 등록해 음악대학 세미나를 들으셨다. 난민과 이민자 가족들을 도우시기도 하고, 요양원에 있는 다른 친구를 돌보러 가시기도 했다. 그리고 도시에서 열리는 다양한 문화예술 행사들을 알려 주시면서, 관심 있으면 같이 가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해 주시기도 했다. 할머니 덕분에 나는 철학 카페(카페에서 철학적 주제를 가지고 연사를 초청해 서로 이야기하는 프로그램)에도 참석해 보고, 노인대학의 세미나를 청강하기도 했으며, 전시회나 오페라도 보러가고 산책, 피크닉을 가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놀라운 건 바로 나같은 '한국인 학생'과 매주 대화를 나누신다는 사실이 아니겠는가!(사실 할머니가 돕는 외국인 학생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한국 문화를 궁금해 하시고, 한국 이야기에 관심있게 귀기울여 주셨으며, 간혹 내가 던지는 독일 문화에 관한 1차원적인 질문들을 재미있어 하셨다. 또한 내가 공부하는 텍스트들을 '같이 공부'하고 흥미로운 주제에 대해서 토론하기를 즐기셨다. 언어와 연륜의 한계로 인해 할머니와 나누는 깊이있는 대화들을 전부 다 이해할 수는 없다는 데에 아쉬움을 느낀 적이 많다.
대학 도시이긴 하지만 동시에 시니어분들이 많이 사는 도시여서일까? 뮌스터에서는 여유롭게 산책하고 카페에서 티타임을 즐기는 것뿐만 아니라, 활발하게 다양한 취미 활동을 하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또 대학의 강의나 세미나에서도 청강을 하거나 학생으로서 참석하는 시니어분들도 종종 볼 수 있다. 그저 수업을 듣는 것이 아니라 교수님들에게 질문도 많이 한다. 내가 뮌스터에서 본 시니어들은 지적 욕구가 높아 적극적으로 무언가를 배우고자 하며,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또 타인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가지고 함께 나누려고 한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나중에 할머니가 되어서 이런 멋진 삶을 살 수 있을까? ...... 솔직히 말해 자신이 없다. 한국인의 입장에서 볼 때, 독일 시니어들의 모습은 조금 부럽기도 하지만 생경하다. 아마 한국인들은 보통 '노후'하면 '젊은 시절을 치열하게 보내고 은퇴 후에는 편안하게 '여생'을 즐긴다.'라는 말을 떠올릴 것이다. 그런데 독일의 시니어들은 은퇴 이후 '제2의 인생'을 살며, 또 다른 방식으로 사회에 기여하고 참여하는 것처럼 보인다.
독일도 그렇지만 한국도 점점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현재 한국 청년 세대의 노인 인구에 대한 인식은 어떨까? 그들이 우리였던 시절이 있었고, 우리는 곧 그들이 될텐데 왜 점점 소통하기 어렵다고 느끼는 걸까. 세대 차이, 세대 간의 단절 등은 어쩌면 피해갈 수 없는 현상일 것이다. 하지만 시니어들이 이 사회에서 젊은층과 중장년층에게 단순히 자리를 내어주거나 밀려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새롭게 활동해나갈 수 있도록 영역을 확보하고 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준다면 조금은 그 간격을 좁힐 수 있지 않을까.